왜 살이 찌면 고혈압에 걸릴까?

뚱뚱한 사람이 여러가지 질환을 일으키기 쉽다는 건 다들 알고 있는 상식일 겁니다. 대표적인 질환이 당뇨와 고혈압인데, 비만이 당뇨를 일으키는 기전은 비교적 잘 알려져 있고 누구나 쉽게 납득할 수 있지만 비만이 어떤 기전으로 고혈압과 관련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일단 비만이 고혈압과 단순히 관련이 있다는 말과 비만이 고혈압을 일으킨다는 말은 전혀 다른 말입니다.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없이 단순한 연관성만 있다면, 고혈압을 관리하기 위해 살을 빼야 할 이유가 없지만 인과관계가 있다면 반드시 다이어트가 필요하게 되니까 말입니다. 현대의학에서는 단순한 연관성이 아니라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있다는 것을 여러 연구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터넷을 보면 비만이 고혈압을 일으키는 이유로 전혀 근거없는 엉뚱한 설명들이 난무하고 있더군요. 몸무게가 늘어나면 심장에서 피를 보내는데 필요한 에너지가 더 많이 필요하니까 혈압이 올라간다던지, 살이 찌면서 지방층이 혈관을 누르면서 좁아지게 만들기 때문에 혈압이 올라간다느니, 심지어는 과학과 아무 관련없는 이론들을 동원한 황당한 설명등이 많은 사람들에게 혼란을 주고 있습니다.

현대의학에서 비만이 고혈압을 일으키는 기전으로 알려진 대표적인 경로들로는 세가지가 있습니다.

1. 렙틴(leptin)
2. 레닌-안지오텐신 시스템
3. atrial natriuretic peptide 반응성의 감소

렙틴은 지방세포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뇌의 시상하부(hypothalamus)를 자극해서 식욕을 떨어뜨리는 호르몬입니다. 지방세포가 일정수준을 넘어가면 식욕을 떨어뜨려 비만을 억제하려는 작용을 하는 호르몬이지만 식욕이 떨어지는 효과 뿐만 아니라 교감신경계를 자극하는 다른 작용도 있어서 이 교감신경에 의해 심장박동수가 증가하고 혈관의 저항이 심해져 혈압이 올라가게 됩니다. 물론, 건강한 사람에서는 이 렙틴이 혈관을 확장시키는 중요한 물질인 산화질소를 증가시키면서 혈압의 상승은 뚜렷하지 않겠지만 비만이 심한 사람들에서는 이 산화질소를 생산하는 혈관내피가 손상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런 효과보다는 교감신경계의 자극으로 인한 혈압상승이 훨씬 강하게 일어나는 겁니다.

레닌-안지오텐신 시스템은 인체의 혈압을 조절하는 가장 강력한 시스템입니다. 신장 내에 존재하는 특수한 세포에서 형성되는 레닌이라는 물질이 안지오텐시노겐을 안지오텐신으로 활성화시키고, 안지오텐신은 폐나 혈관내피세포, 고환등에서 생산되는 안지오텐신변환효소에 의해 안지오텐신2로 변화되는 시스템이죠. 그런데, 이 레닌-안지오텐신 시스템은 예전엔 방금 설명한 것처럼 콩팥과 폐, 그리고 혈관내피세포들을 중심으로 작용하는 것으로만 생각되다가 최근에는 지방세포에서도 레닌과 안지오텐신변환효소 등이 생산되어서 안지오텐신2의 생산을 증가시킬 뿐 아니라, 지방세포 안에 안지오텐신2의 수용체가 상당한 농도로 분포되어 있다고 합니다. 안지오텐신2 수용체는 단지 고혈압을 일으키는 것 뿐 아니라 단백뇨와 신장의 파괴, 심부전증과 같은 혈관질환의 온갖 합병증을 일으키는 데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단순한 고혈압 보다도 훨씬 더 “악종”인 고혈압이 되는 겁니다.

비만은 단순히 지방세포의 크기가 커지거나 수가 늘어나는 변화만 일어나는 게 아니라 지방세포의 유전자발현까지도 변화시키게 됩니다. 그러한 유전형질변화에는 NPr-C라는 유전자 발현이 강하게 일어나는데, 이 유전자가 발현되면 natriuretic peptide라는 혈압감소를 유발하는 호르몬의 효과를 억제시키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소변으로 소금기(정확히 말하면 나트륨)를 배출하는 데 지장을 받게 되면서 혈액 내에 나트륨이 쌓이게 되지요. 이렇게 나트륨이 혈액에 쌓이게 되면 삼투압현상으로 인해 많은 양의 물이 혈관에 쌓이게 되고, 이렇게 순환하는 혈액이 증가하면서 혈압이 올라가는 거지요.

이렇게 생소하면 생소하고, 복잡하다면 복잡한 기전들을 다 알 필요는 없지만,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아무 근거없는 잘못된 설명들은 비만과 고혈압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이런 것들을 확실히 해두는 의미를 찾을 수는 있을 것입니다. 일반적인 고혈압과 비만으로 인한 고혈압은 이렇게 완전히 다른 면이 많기 때문입니다.

또한, 비만으로 인해 생기는 고혈압은 다른 고혈압과는 다른 기전이 작용하기 때문에 관리방법도 다르게 짜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널리 쓰이는 고혈압약은 칼슘통로차단제이지만, 비만에 의한 고혈압은 위에 설명했던 것처럼 레닌-안지오텐신 시스템과 연관이 있기 때문에 이를 차단하는 약제를 쓰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고혈압을 조절하기 위한 가이드라인도 일반적인 고혈압보다 훨씬 엄격하게 잡아야 하지요. 왜냐하면 단순한 고혈압이 문제가 아니라 안지오텐신2와 이것이 유발하는 알도스테론으로 인한 단백뇨나 심부전같은 합병증은 장기적으로 볼 때 아주 약간의 혈압증가로도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레닌-안지오텐신 시스템을 차단하는 약물들은 가격이 상대적으로 비싸기도 할 뿐더러 심한 기침을 유발하거나 고칼륨혈증 같이 치명적인 부작용을 일으킬 수도 있어서 주의해야 합니다. 요즘에는 안지오텐신수용체차단제나 Aliskiren같은 레닌억제제등이 개발되어서 부작용을 줄이고 있지만 아직 널리 보급된 상태는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비만으로 인해 발생하는 고혈압은 조기에 비만을 치료하면 약이 없어도 저절로 좋아질 수 있습니다.

결론은, 살 찌는 거 놔두지 마시고 열심히 운동하자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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