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가 없다라는 말

임상의사들이 간과하거나, 착각하기 쉬운 선입견 중 하나는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는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영상의학과에서 시행하는 여러가지 영상진단방법들은 두 눈으로 직접 보는 것 만큼의 해상도나 선명도를 제공하지 못하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생각은 주로 내과 의사들이 많이 의존하는 내시경의 우월성에 대한 근거가 되기도 합니다.

분명, 내시경은 매우 장점이 많은 진단방법입니다. 위나 대장같은 위장관 뿐 아니라 기관지나 흉곽, 종격동, 심지어는 등의 병변을 직접 관찰하고, 확인된 병변을 조직검사도 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장점은 기본적으로 내시경이 병변이 있는 곳 까지 접근하였을 때른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여러가지 다양한 이유로 내시경이 병변에까지 접근하지 못한 경우라면 내시경은 섯부른 위음성, 즉 false negativity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연세대학교에서 펴낸 책에서 나온 임상사례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2세 남아가 약 1주일 정도 감기증상이 있어 개인의원에서 통원치료 중, 호전이 없어 종합병원으로 전원, 흡인성 폐렴으로 항생제치료를 받았음에도 증상은 더 심해져 내원한 케이스인데요, 개인의원에서 촬영한 단순흉부영상에서는 좌폐에 폐기종 소견이 보여, 기관내 이물질을 의심, 종합병원에서 기관지내시경을 시행했는데, 이물질은 발견하지 못하고 결핵같은 감염이나 염증에 의해 잘 발생하는 육아종소견만 보여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일주일 동안 다른 병원을 전전한 경우입니다.

환아가 처음 방문한 의원에서는 기본적인 병력청취와 이학적검사, 그리고 단순흉부X선영상을 촬영하고서 분명 기관지 내에 이물질이 들어간 응급상황을 의심하는 게 당연했을 것이고, 그러한 기관지 내 이물질이 들어갔는지를 확실히 확인하고, 그것을 꺼내어 치료하기 위해서 기관지내시경을 시해하는 게 당연한 순서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시행한 기관지내시경에서, 이물질에 의해 주위의 기관지점막이 부어오른 것을 단순한 육아종이라 단정하고, 이런 부종에 의해 기관지내시경이 진입하지 못하게 되자 섯부른 결론을 내린 채 응급한 환자를 방치하게 된 것입니다. 문제는 기관지내시경을 시행한 의사가 “이물질이 없다”고 결론을 내려버린 후에는 단순흉부X선 영상에서 아무리 의심스러운 소견이 있었다 하더라도 내시경소견에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게 된다는 겁니다.

물론, 최근에는 전산화단층촬영의 발달로 인해 단순흉부영상과 기관지 내시경 사이의 간극을 메꿔줄 수 있겠지만, 전산화 단층촬영은 응급으로 시행하는 검사가 아닙니다. 항상 일정이 밀리기 때문에 많이 기다려야만 합니다. 게다가, 아이에게 부담이 많은 기관지내시경을 또다시 시행해야 한다는 것,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난 상태이기 때문에 아이의 몸상태가 훨씬 나빠져 시술의 위험은 분명 더 늘었을 것입니다.

이렇듯, 의사에게 있어서 단정적으로 이상소견이 없다는 말은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금기어에 가까운 말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 보다는 기대하던 소견이 보이지 않으므로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하자는 대안과 계획을 고민하고, 이전에 했던 다른 결과들을 다시 리뷰해서 두번 세번 고민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입니다. 이 사례도 마찬가지입니다. 종합병원에서 기관지내시경을 시행하기 전에 분명히 찍어 두었을 단순 흉부X선영상을 최적의 조건에서 정성스럽게 찍은 뒤, 전문적인 식견을 가지고 자세히 파악해 두었다면 기관지 이물질을 좀 더 확신을 가지고 결론 내렸을 것이고, 기관지내시경이 아무리 힘들고, 기관지 점막이 심하게 부었더라도 끝까지 이물질을 제거하려고 노력했을 것입니다.

기관지 내에 들어간 이물질을 빼내지 않을 경우에 예후는 “almost always die”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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