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약 폐암말기라면

사람 일은 모르는 거라, 아무런 증상도 없는 상태로 내일이라도 폐암말기 판정을 받는 일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만약, 폐암말기 판정을 받는다면 어떻게 대처할까에 대해 고민이 되는 건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저로서도 쉽게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말기라는 말을 쓸 때에는 조심스럽게 써야 하는데, 단순히 수술이 불가능한 상태와 더이상 손쓸 수 없을만큼 치명적인 부분에까지 암이 퍼져서 생명연장이 쉽지 않은 상태는 완전히 다르게 구분되어져야 합니다. 전자는 대게 4기라고 말하고, 후자가 말기이지만 4기와 말기를 혼동해서 쓰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4기 환자를 말기라 말하고 나서 시한부다, 이제 곧 죽는다는 선입견으로 지내다가 2년, 3년이 넘어가고 치료를 잘 해서 5년을 넘기는 경우 이걸 “기적”이라고 착각하기도 합니다. 정말로 폐암 말기라고 하면, 항암제로 치료가 너무 잘 되어도 큰 일입니다. 암세포가 죽어가면서 남기는 독성물질에 의해 오히려 치명적인 결과가 도래할 수도 있고, 암세포가 파먹고 들어간 장기에서 암덩어리 줄어들면서 혈관에서 피가 새어나와 출혈로 사망하는 경우도 생길 수가 있습니다.

진짜 말기는 암덩어리가 줄어들어도 큰 일입니다.

여러가지 알아볼 것들은 많겠지만, 제가 단언할 수 있는 한가지는, 정말로 제가 폐암말기 판정을 받는다면 공기가 좋은 시골 요양소로 가서 금식이나 채식을 하며 자연의 힘에 기대는 선택은 절대로 하지 않을거라는 점입니다.

시골은 만약 이런 불의의 사태가 발생했을 경우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의료기관이 전혀 없는 장소입니다. 폐암말기의 합병증에 의해 응급한 사태가 벌어졌을 경우 적절한 대처를 할 수 있는 의료기관은 3차병원 이상의 의료기관 밖에 없습니다. 시골로 가는 건 오히려 환자의 수명을 단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위험이 있습니다.

폐암이라는 건 엄청난 고통을 수반하는 암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고통에도 불구하고 의식은 또렷하게 남아있으며 마지막 순간이 오기 전까지는 거동하는 것 또한 그리 힘들지 않게 유지가 될 수 있는 암입니다. 고 이주일씨가 폐암에 걸린 이후 했던 수많은 사회활동들을 생각해 보십시요. 현대의학의 최신지견들을 참고하고 원칙에 입각한 치료계획을 받는다면, 얼마든지 살아있는 동안 내가 해왔던 사회활동을 계속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죽음에 대한 인식을 한 이후 바뀐 나의 인생관에 입각한 진정 새로운 인생을 살며 가족과 사회에 공헌을 할 수 있는 기회는 매우 소중한 것입니다.

호홉기 계통에서 대표적인 악종이 폐암이라면 소화기 계통, 즉 배 쪽에서 대표적인 악종으로 췌장암이 있습니다만, 애플의 ceo인 스티브 잡스가 지금과 같은 자신의 인생에서 황금기를 맞이할 수 있었던 중요한 계기가 다름아닌 그의 췌장암으로 인한 시한부인생 선고였습니다. 진정 죽음을 인식한 이후 그가 바뀐 겁니다. 그렇게 바뀌고 난 이후의 시간은 1분 1초가 아깝고 소중한 것입니다. 단 하루라도 더 의미있는 일을 할 수 있다면, 거기에 모든 것을 걸 가치가 있는 것이지요.

많은 민간요법이나 심령치료, 종교단체의 행위들이 병을 고치는 기적을 행사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만 거기에 혹해서 “올인”하는 것이 과연 얼마나 승률이 높은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의견이 대다수이고, 제 자신의 체험을 넘어서 축적된 경험으로 봐도 그런 데 어떤 초자연적인 기대를 품고서 올인하는 건 현명한 일이 절대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기독교단체가 운영하는 병원에서 수련을 받았고, 그 병원에서는 많은 기도원들에서 찾아와 암치료를 했다고 주장하며 이를 입증하기 위한 증거사진을 찍기 위해 찾아오고는 합니다. 그 중에서 정말로 암 말기 환자가 완치가 되었다 확실하게 판단되는 사례는 아직까지 “단 한건”도 없었습니다.

물론, 어떤 암이라 하더라도 희박한 확률이지만 “자연치유” 또는 “자연적으로 완화”되는 경우는 있습니다. 대게 그러한 경우들은 환자의 “life style”이 바뀐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그런 라이프스타일이 의미하는 것은 운동과 식생활, 가족과의 관계, 유독성 물질의 노출로부터의 회피 등과 같은 다양한 측면들이 함께 작용하는 것이지 막연히 산좋고 물좋은 곳에서 아무런 사회적 공헌이나 활동 없이 편히 요양하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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