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서 면역이라는 단어

원래 한의학에서 중요하게 다루고 있을 뿐 아니라, 현대의학에서도 주의깊게 고민해 보아야 할 문제가 “병이 아닌 사람을 보자”라는 명제일 겁니다.

병을 일으키는 외부의 원인 인자를 집중하지 않고 병이 나는 사람에게 주목하는 것은 여러모로 쓸모있는 접근방식이 분명합니다. 특히나 감기나 암과 같이 원인을 제거하는 게 불가능하거나 어려운 경우에는 사람의 몸을 건강하게 유지시켜서 설령 병에 걸린 후라 하더라도 불편한 삶을 살지 않아도 되도록 병을 다스린다는 것이 최우선 목표로 상정되어야 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현대의학을 신봉하는 의사임에도 불구하고 병을 “다스린다”라는 단어를 좋아합니다.

WHO에서 정의하는 “건강”이라는 단어의 정의도 이러한 개념이 포함되어 있는 것을 보면 굳이 한의학이나 동양의학에서만 이런 웰빙이라는 개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의 각론으로 들어가서 사람의 어떤 상태를 좋게 해야 하느냐의 문제를 들어가면 한의학과 현대의학 사이에 관점이 달라지면서 많은 혼란을 야기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이 부분이 정말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면역”이라는 단어에 대한 정의인 것 같습니다.

원래 한의학은 면역이라는 개념이나 그에 준하는 용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개념은 면역학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일반인들도 쉽게 이해하고 있는 면역이라는 개념에 기대어 한의학의 개념들을 설명하기 위해 접목되기 시작한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즉 한방에서 말하는 면역이라는 말은 면역세포나 면역반응과는 아무 상관이 없이 한의학적으로 인체가 “균형과 조화”를 이룬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구글로 한방과 면역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검색을 해 보면 한의원에서는 다이어트도 면역요법으로 다이어트를 하고, 암 치료도 면역치료로 시도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감기도 면역치료로 치료(라는 말은 믿지 않지만 어쨋던 호전시킬 수 있다고 하니까요)한다는 글을 많이 봅니다. 사마귀도 면역치료로, 독에 중독된 걸 치료하는 해독도 면역요법으로, 아토피, 자가면역질환, 비염, 간염이나 간경화도 면역치료를 한다고 하는 사이트들이 널려있습니다.

가만 들어보면, 각각의 상황이나 질환들에 들어가는 면역요법들의 치료방법이나 개념도 다를 뿐 아니라, 이런 글들에 들어가는 “면역”이라는 단어가 뜻하고 있는 의미도 서로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감기를 다스리기 위한 면역이라는 건 환절기에 자주 느끼는 증상들과 관련한 개념이지만 사마귀 치료에 인용되는 면역이라는 개념은 또 전혀 다른 개념일 수 밖에 없으며, 비염이나 기관지염은 분명 알레르기반응과 관련이 있는 면역경로를 말하는 게 분명할 겁니다.

이렇게 한 단어에 대해 개념이 달라지면 저같이 한의학에서 말하는 면역이라는 개념을 숙지하지 못한 일반 의사들 입장에서는 이해를 하기가 매우 곤란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문제가 심각한 이유는 환자들 입장에서는 한의사와 일반의사의 말 모두를 듣고 자신의 병에 대처하는 경우가 많고, 한의사의 조언에 대해 일반의사들에게 의견을 구하는 경우도 많은데 뭐라고 정확한 평가를 내려주기가 곤란하게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한의사 입장에서 양의사가 틈만 나면 한의학을 부정하고 무시하려 한다고 감정을 품는 경우가 많은데요, 그게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는 거지요. 좀 전에 어떤 사이트에서 “인삼이 면역력을 강하게 하므로 자가면역질환에서는 인삼을 먹지 마라”는 어떤 이의 충고를 보고 나서, 정말로 자가면역질환에서 인삼을 먹으면 안되는가, 아니면 구태여 가리지 않고 좋을 대로 먹어도 되는 것인가에 대한 충고를 적절하게 내려주는 게 불가능한 이유도, 인삼이 “면역”을 강하게 한다는 주장에서 그 면역이라는 것이 정확히 어떤 면역인지에 대한 판단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한의학은 부정될 수도 없고, 부정되어서도 안되는 실존하는 우리 의료체계의 한 부분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한의사와 일반의사가 서로 소통하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환자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의학에서 말하는 “면역”이라는 단어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고, 또 각각의 다양하고 개별적인 면역치료에서 말하는 면역이라는 의미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저같은 의사들도 배워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야만 자가면역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인삼이 한의학적으로 정말 해로운 것인지, 그렇지 않은 것인지에 대해 간결하게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것이겠지요. 그런 조언을 구태여 한의사만 해야 하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환자를 보는 것에 양의한의가 따로 구분이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니까요.

면역이라는 단어에서 “인삼”의 영향에 대해 논하는 글을 보면서 문득 떠오르는 생각을 두서없이 적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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