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슨을 삼성이 인수했더군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벤쳐1세대 기업인 메디슨을 삼성이 인수하기로 확정했다고 하는군요.

메디슨은 초음파장비를 국산화 해서 수출하는 데 성공한 회사로서 욱일승천 성장세를 지속하다가, IMF때 부도가 나서 법정관리에 들었갔던 기업이죠. 그 후 외국계 사모펀드인 칸서스가 이를 인수했다가, 삼성에 팔기로 최종타결이 되었다고 합니다.

매수가가 2천억원이라고 하는데, 예전 메디슨의 위세를 생각하면 어처구니 없는 싼 가격이라는 생각이네요.

국산 초음파장비라고 하지만, 가격대성능비는 세계 어디를 가도 꿀릴 일이 없는 괜찮은 장비를 만들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나라 보다도 동남아 같은 제3세계에서 인지도가 엄청납니다. 한창때에는 매출 순위로 세계 3위였었고 2위를 넘보기도 했었죠. 회사 사원들에 대한 복지혜택이 대단해서 사원들의 자부심도 이만저만 높았던 게 아니었었구요.

그러나, 부도 이후 핵심인력들이 어느정도 기술을 습득할만 하면 열악한 처우 때문에 외국계 회사들로 족족 빠져나가다 보니 “전문인력 연수원”이라는 소리까지 나온 데다, 굴지의 초음파장비 제조사인 HP마저 경영난으로 필립스에 인수되고, GE가 꾸준히 지속되던 달러약세에 힘입어 크게 약진하기 시작하면서 메디슨이 주로 장악하고 있던 저가장비 시장을 마저 장악하려는 형국에 있습니다.

결국 메디슨도 국내시장에서는 GE나 필립스에 시장을 많이 내주고 해외사업부가 매출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데요, 이번에 인수경쟁에 뛰어들었던 다른 회사들이 탈락한 가장 큰 이유가 이 해외사업부 실사를 강력하게 요구했었고, 칸서스가 이를 거부했었기 때문이라는군요. 결국 해외사업부가 메디슨의 핵심이나 마찬가지라는 거죠.

뉴스에서 메디슨을 삼성이 인수했다는 말을 듣고서 검색을 하다 보니, 생전 처음 보는 “메디슨 토론방”이라는 주식게시판도 있더군요. 거기선 아주 난리던데요. 주된 분위기가 “삼성만세”, “메디슨 주식은 이제 오르는 일만 남았다”라는 거더군요.

저는 이런 생각에 부분적으로는 긍정적이지만, 또한 일정부분 회의적입니다.

메디슨이 법정관리에 들어가 있던 시기에 견학초대장이 와서 한 번 방문했던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 초대장은 방사선과 기사분들에게 왔는데, 그걸 저한테 잘못 전달한 거였죠. 그래도 삼차원초음파에 대한 관심이 상당했던 때라 가서 이런저런 대화도 하고, 자료도 가지고 왔었습니다.

거기 사업장에서 초음파장비를 만드는 방식은 일반 공장이 만드는 것하고는 완전히 다르더군요. 컨베이어벨트에 놓여져 있는 조립물품들을 직원들이 각자 분담해서 조립하는 그런 분업방식이 아니라, 하나의 프레임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명의 직원이 100% 책임을 지고 조립을 하는 방식이더군요.

이런 방식의 제조프로세스는 삼성같은 자본집약적인 기업체가 핸드폰이나 컴퓨터를 몇백만대씩 찍어내듯 만드는 기업의 생산방식, 또는 경영방식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삼성이 자기들 하던 방식대로 메디슨에 손을 대면 오히려 기업을 망칠 수도 있다는 말이지요.

초음파장비는 고가장비와 저가장비가 확연히 구별되는 시장을 가집니다. 고가장비는 영상의학과 의사들이 주로 사용하면서 종합병원에서 주로 찾지만, 저가장비는 영상의학과의사들 보다는 일반 의원급에서 주로 구입하고, 요구되는 성능은 많이 평준화 되어있는 편입니다.

GE나 지멘스, 또는 필립스의 고가제품들을 메디슨이 따라가는 건 거의 불가능합니다. 메디슨이 창립된 이래 컬러도플러영상쪽에 대해 집중적인 투자와 연구개발을 지속했지만, 컬러도플러쪽의 기술장벽은 무슨 첨단장비나 대단위시설에 의해 쌓여진 장벽이 아니라, 오랜 경험에 의해 축적되어진 노하우로 만들어진 장벽입니다. 그래서 메디슨이 10년을 넘게 노력해 왔지만 여전히 따라잡지 못한 것이구요. 그나마, 좀 될성부른 기술인력들은 그동안 GE, 지멘스, 필립스등에서 모두 스카웃해가고 남은 핵심인력은 거의 전무한 상황입니다.

이 상태에서 삼성이 자본을 댄다고 해서 고가시장을 공략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또, 고가시장을 막강한 자본력을 가지고 가격으로 승부하는 것도 의미가 없지요. 더우기, 요즘갈은 환율추세에서 달러가치 하락으로 인해 GE장비의 가격하락은 엄청난 메리트입니다. 요즘 GE장비가 CT든 MRI든 할 것 없이 영상장비쪽에서 주름잡는 이유가 바로 환율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해외시장에서도 예전과 같은 판매는 쉬운 일이 아닐 수 있습니다.

삼성이 메디슨을 저가 초음파장비 시장을 메인타겟으로 잡는다 쳐도, 상황이 그리 쉽진 않습니다.

요즘 떠오르는 저가초음파장비가 휴대용초음파장비인데요. 이건 메디슨이 지금 하고 있는 생산방식으로 만들어지는 제품이 아닙니다. 핸드폰, 스마트폰 만들듯이 만드는 제품이라, 삼성에서 이걸 잘 할 수 있는 영역이기는 한데요, 메디슨의 공장은 대대적으로 손을 보거나 구조조정을 해야만 합니다. 게다가, 현재 휴대용 초음파장비의 선두주자가 GE인데요, 이 GE가 현재 국내시장에서는 삼성과 손을 잡고 있는 상태죠. 삼성이 GE와 손을 떼기에는 CT, MRI장비에서 파이가 상당히 큽니다.

결국, 삼성이 초음파장비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메디슨”이라는 틀 안에서는 여의치 못한 점이 한 둘이 아니라는 거죠. 그러므로, 삼성 입장에서는 초음파장비 시장에 진출하는 건 일단 장기적인 관점에서 시작하는 거고, 본격적으로 자신들이 손을 댈 때는 저가장비가 시장의 대세가 되는 시기에 메디슨이라는 틀을 사장시키고 나서가 될거라는 거죠. 즉, 메디슨의 “기업가치”가 “삼성의 인수”로 인해 크게 올라갈 확률은 중장기적인 관점에서는 많아 보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물론, 뉴스에는 나오지 않은 이면의 일들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막연히 삼성의 2세들이 경영일선에 나왔으니까 무조건 삼성주식을 사는 건 아니듯이 말이죠. 어떻게든 후계구도를 탄탄하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주가를 띄우려고 발버둥 칠거라고 생각하니까 주식을 사는 사람들이 많은 것처럼, 삼성이 메디슨을 인수한 후에 주가가 떨어지는 걸 마냥 방관만 하고 있지만은 않을거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겁니다. 어찌 보면, 앞으로 대세가 될 지도 모를 3D 초음파기술에 삼성이 주목하고 있는 건지도 모를 테구요.(메디슨의 3D초음파기술은 상당한 수준입니다.)

애초에 사모펀드에 팔려서 관리받던 신세를 벗어났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주가가 오를 수도 있겠죠.

그러나, 메디슨 같은 첨단의료장비 제조업의 생명은 “핵심인력”이라는 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겁니다. 그 인력이 지난 법정관리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계속 빠져나가 별로 남지 않은 상황이라는 건 분명합니다.

그런 상황을 삼성이 인수를 해서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을까, 아니 그 이전에 그렇게 바꿀 의지는 있을까, 상당히 의문스럽지만 또 흥미롭게 지켜볼만한 대목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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