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의사고시 합격자 발표가 있었다는데, 들리는 소문에, 서울의대의 합격율이 굉장히 낮아져서 서울의대가 울상이라고 합니다.
재수생을 합쳐서 스물일곱명이 떨어졌다고 하는데, 이 정도면 정말 많은 불합격자 입니다.
이렇게 떨어진 사람들이 많게 된 이유중 하나가 실기시험 불합격자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많은 걸 생각하게 합니다.
서울의대라면, 당연히 전국 의대들 중에서도 톱클래스의 명문의대입니다. 다른 의대도 마찬가지겠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성적이 좋은 수재들이 들어갈 뿐 아니라, 교수들의 수도 많고, 학습환경도 절대 떨어지는 수준이 아니죠.
요즘에는 의사가 되기 위해서 필기시험 뿐만 아니라, 직접 여러 시술들을 하고, 모의환자를 상대로 진찰을 해서 진단을 하는 실기시험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필기시험이야 전통적으로 자주 나오는 문제들, 즉 야마를 중심으로 열심히 공부하면 의사의 자질과는 상관없이 합격하는 게 가능하겠지만, 실기시험은 학교를 다니면서 얼마나 실습을 열심히 뛰고, 많은 걸 직접 해 보았는가를 봅니다. 필기시험은 점수가 나오지만, 실기시험은 합격 불합격만 가립니다. 기본적인 의사로서 “개념”만 탑재 되었다면 그 이상을 가릴 필요가 없으니까요.
의대도 다 같은 의대가 아니고, 서울대 같은 명문대가 있는가 하면 신생의대의 수준은 한참이나 열악하기 때문에 이 실기시험 합격율이 이런 의대의 수준을 보여주는 잣대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서울의대에서 실기시험에 떨어지는 학생들이 많이 나왔다는 걸 보면서 그런 생각을 접게 되었습니다.
왜 서울의대가 이렇게 불합격자가 많이 나왔을까? 서울의대가 별로 좋은 교육을 시키지 못해서 떨어진 건 누가 봐도 아니겠죠. 문제는 서울의대 학생들과 교수들이 자만했기 때문일 겁니다. 세상에 내가 다른 곳도 아니고, 서울의대를 나왔는데 어떻게 기본적인 의사로서의 자질만 확인하는 이런 실기시험에 떨어질 리가 있겠는가 하는 생각 말이죠.
날고 기는 서울의대 교수님들도 본업은 연구쪽에 더 기울어져 있을 겁니다. 논문 한 편이라도 더 내야 재임용 받을 수 있고, 또 연봉이나 인사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을테니까요. 이런 교수님들 생각으로는 학생들은 그저 임상실습기간에 열심히 배우다 보면 실기시험 쯤 신경 쓰지 않아도 다들 합격하게 마련이라고 생각하셨을 테죠. 이런 분위기에서 임상실습을 나온 학생들에게 교수님들이 친절하게 술기를 이렇게 저렇게 한다고 가르치는 모습이나, 실기시험에 대비해서 이런저런 대비를 하는 걸 직접 챙기는 모습을 상상하긴 힘들 겁니다. 그거 한다고 해서 자기 자신에게 인센티브가 나오는 건 아니니까요.
만화책 드래곤사쿠라(꼴지 동경대 들어가다)에도 나오는 이야기인데요, 아무리 수재들만 모아놓은 집단에도 우열이 갈리는 데, 신기하게도 이런 수재가 아닌 범재들이나 둔재들만 모아놓은 집단에서 머리쪽에 해당하는 아이들은 언제나 수재집단의 꼬리쪽 아이들보다 훨씬 더 나은 결과를 내준다고 하더군요. 결국, 들어갔을 때의 자질이 다가 아니라는 거지요.
게다가, 서울대에서는 기회균형선발이라는 제도가 있죠. 굳이 성적이 합격선에 미치지 않은 학생들이라도 여러가지 사정을 고려해서 특별히 입학시키는 학생들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들이 언제나 성적이 낮고 저조하리라는 법은 절대 없지만, 교과과정 중에 뒤쳐지는 학생들을 세심하게 배려하여야 할 필요성은 더 커지겠죠. 그러나, 의대교육이라는 게 그렇게 뒤쳐진 학생들을 위해 별도의 수학과정을 만들거나, 개별적으로 섬세한 배려를 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원래부터도 서울의대의 합격율이 전국 평균을 언제나 밑돌았던 게 요즘의 보편적인 추세긴 하지만, 올해는 이게 너무 기울어져 버린 느낌이 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립대라는 특성 때문에 여기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기가 쉬울지는 저도 잘 모르겠네요. 하지만, 올해의 결과를 보면서 최소한 서울의대라는 자부심이 자만으로 빠지는 건 더이상 이어지진 않겠지요.
이런 걸 보면서, 저 스스로도 제 자신의 인생을 살면서 빠져들었던 자만, 지금 제가 가지고 있는 직업인으로서 가지고 있는 자만을 돌아보게 됩니다. 그게 개인이든 단체든 할 것 없이 자만하는 사람은 언젠가 그 댓가를 보게 된다는 거, 진리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