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은 공부가 아닙니다.

오늘도 차한잔 게시판에서 진화와 창조가 치열한 주제로 떠오를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어쨋든 종교에 관한 문제는 항상 뜨거운 주제인게 분명한 것 같습니다.

저는 개신교인이지만, 그래도 제 나름으로는 성경공부도 치열하게 한다고 자부했던 사람이고, 근본주의적인 쪽으로나 자유주의적인 쪽으로나 많이 고민한 후에 나름의 결론을 내려봤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또한, 정 반대로 과학적인 상식에도 많은 흥미와 관심이 있어서 나름 기본적인 부분의 양자물리학의 성립과 발전에 대해 학자와 연대를 들어가면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나름 조사도 해 봤고, 진화론이 정확히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에 대해 세간의 오해를 불식시킬 수 있을 정도로 정확히 소개할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자료를 섭렵해 보기도 했습니다.

순전히 자기자랑 같겠지만, 덕분에 이런 쪽으로는 어느정도 말빨을 세울 정도가 되긴 했습니다만, 결국에 이런 공부는 딱 어느 수준 이상 해 봐야 제 자신의 갈 길을 정하고 정진하는 데 별다른 소용이 닿지 않는다는 걸 체험하게 되더군요.

아무리 과학적으로 성경속에 나오는 갖가지 이야기들이 아무런 근거가 없는 것이고, 거짓된 것이라 확인하고 주장하더라도, 한 번 제 안의 근본주의적인 맹신을 깬 이후로는 그것이 맨 처음 품었었던 제 마음 속의 신앙에 어떠한 영향이나 변화를 주지 못하더라는 겁니다.

정말로 제 신앙을 무뎌지거나 의심하게 만드는 건 그런 말들이 아니라, 실재 인생을 살면서 겪게 되는 많은 체험들, 나태함이나 돈에 얽매이게 될 수 밖에 없던 일들, 세상 즐거움에 너무 빠져서 제 자신의 중심을 잃어버리게 되는 사건,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겨 기도해도 응답받지 못해 방황하던 일들과 같은 개인적인 체험들이었습니다.

이 세상은 사람들 각자의 이러한 체험과 그 교훈들이 누적되어서 형성된 인생들의 유기적인 연결에 의해 움직이게 되어 있더군요. 무슨무슨 이데올로기가 세상을 진정으로 변화시키는 게 아니더라는 겁니다. 이데올로기로서의 기독교, 이데올로기로서의 합리주의, 이데올로기로서의 회의주의는 이 세상의 피상적인 질서에 간섭할 뿐 정말 사람들 개개인의 본질을 변화시키는 건 아니었습니다.

돌아가신 제 외할머니는 625 때 동네 사찰의 스님이 돌아가시면서 맡기신 절을 운영하면서 그저 부처님께 빌면 복을 주실 거라는 단순한 기복신앙에 머무른 불교를 신앙하셨지만, 얼마나 따뜻한 분이셨고, 너그러운 분이셨는지 지금도 기억에 선합니다. 그러한 변화는 냉철한 이성으로 무장된 누가 보기에는 참으로 치기어린 수준에 불과했을 지라도 그 불교의 감화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거라 감히 확신합니다. 마찬가지로, 고집스럽게 근본주의적인 개신교의 가르침을 고수하시는 우리 교회 목사님의 인생과 인격, 그리고 균형잡힌 정치관은 당신의 종교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성취였음을 보는 이들이 증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종교가 다 거짓말이라느니, 아편에 불과하다느니, 이런 소리를 해 봐야, 그런 소리들은 본질적으로 과학과 이성을 빙자한 또 하나의 이데올로기에 불과한 것이고, 우상에 불과한 것일 겁니다. 그 분들이 그렇게 받아들일 거라는 게 아니라, 그런 주장이 그 분들의 본질적인 부분에 더 나은 영향을 줄 수 없을 거라는 겁니다.

사실, 종교라는 것도 과학적으로 보자면, 엄연히 인간 진화의 훌륭한 공신이자, 아름다운 열매입니다. 게다가 종교의식이라는 행동패턴은 사람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닙니다. 돌고래들도 자기 가족이 죽으면 그 유체가 바다 밑바닥에 묻힐 때 까지 일체의 활동을 중지하고 그 유체 주위에 모여서 “추모”를 연상시키는 행동을 보인다고 합니다.

진화론으로 보자면, 종교는 고등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집단생활을 하는 종의 생존에 필요한 행동패턴이라는 거죠.

다만, 그런 종교가 너무 큰 해악을 끼칠 때는 견제해야 하는게 당연한 것이고, 지금 우리나라의 개신교가 딱 그런 상황이기 때문에, 개신교를 “까대는” 의견이나 주장에 개신교인으로 발끈하는 선택이 아닌, 조용히 침묵하며 지켜보는 선택을 하는 겁니다. 현재 개신교는 내부로부터의 정화를 기대하기가 어렵고, 외부로부터 무언가 강한 압박이 있어야 변화를 시도할 수 있을 정도로 정체되어 있는 조직으로 변질되었습니다. 어찌 보면, 우리의 정치상황도 딱 그 짝이죠? 여야 할 것 없이 답답한 상황, 그들 스스로의 변화가 난망하고 결국 위기상황이 와야만 변화를 시도하는 것이 딱 그 짝이라는 거,,,

세상 일이라는 게 어디나 별반 차이가 없다는 걸 느낍니다. 기본적인 사회구성원의 평균적인 수준을 벗어나는 일은 참 드물다는 거죠.

내용이 갈수록 제목과 많이 벗어나 있는 것 같은데, 잡담 수준으로 써갈기다 보니 두서가 없어서 그런거라 이해해 주시고, 결론적으로 말해서 종교가 되었든, 반종교가 되었든 누가 써 놓은 이야기들을 그대로 답습하고 전파하는 식의 행동 만으로 자신의 의도가 사람에게 전파되지는 않더라는 게 제 경혐입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종교의 출발은 그런 공부에서 시작한 게 아니고, 반종교운동도 마찬가지기 때문입니다.

영혼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체험과 인간성의 측면이 훨씬 더 중요한 관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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