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을 생각한다. – 스티브 잡스 전기를 읽고

그저께 스티브 잡스의 전기를 아이패드로 다운받아서 오늘 오전에 다 읽었습니다. 천 페이지가 넘는(전자책으로 볼 때) 분량인데 정말 술술 읽어져 내려가더군요.

저는 지금까지 민주주의에 기반하는 리더십만이 성과를 낸다고 믿고 있는 입장이었습니다. 사실, 이건 타협할 수 없는 고집과 다를 바 없는 입장인 셈이죠. 한 사람의 능력으로 이끌려지는 조직은 그 한 사람의 카리스마가 유고상태가 되었을 때 무너질 수 밖에 없을테니까요. 그런 점에서 잡스의 리더십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예외적인 상황으로 이해할 수 밖에 없었지만, 책을 읽고나서 여러가지 정리를 할 수 있게 되더군요.

분명한 것 하나는, 스티브 잡스는 이기주의자이고, 사이코패스라 규정될 수 있는 인격적 결함이 다분한 인간이었다는 점입니다. 그는 그 자신이 열광하는 것 외에는 본능적으로든 의도적으로든 철저하게 무시하는 사람이었고, 그로 인해 수많은 사람과 그 자신마저 상처가 나더라도 눈 하나 깜작하지 않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냥 딱 봐도, 리더의 자격은 없는 사람이었죠. 젊었을 때 부터 열광했던 동양사상, 특히 인도철학이나 선불교(일본 쪽)의 사상에는 인격적인 발전과 정서적인 평안함,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관용과 자비가 강조됨에도 불구하고, 잡스는 선불교나 동양사상의 정신을 자기가 집착하는 어떤 위대함에만 투영했을 뿐 자기완성이나 영적인 발전에는 아무런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어쨋던 그는 제대로 된 리더와는 거리가 먼 “보스”에 불과했죠. 심지어는 그가 애플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입지전적인 성공을 구가하게 된 최근에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리더는 B급인재들도 버리지 않고 통솔해서 위대한 성과를 낼 줄 아는 사람이고, 보스는 끽 해 봐야 A급 인재를 가지고 A급 성과를 내는 정도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실재로, 그가 애플에 복귀하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직원들을 가차없이 해고하고, 프로젝트들을 정리한 거였습니다. B급 직원들, 자기가 집중할 여유가 없는 것들을 돌아보는 건 낭비라고 본 거죠. 게다가 이사회를 자기 자신을 위해 일하는 거수기 정도로 만들어 버렸죠. 저는 그런 것들이 진정 위대한 행위라고 보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끄는 애플이 재기하고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일단 “운”이 좋아서라고 봅니다.

일단, 그가 애플에서 쫓겨난 다음 넥스트와 픽사 시절 이 회사들은 잡스의 고집과 소신으로 인해 언제 문을 닫아도 이상할 게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럴 때 마다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투자자가 나와서 넥스트를 연명할 수 있었고, 픽사도 애초에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사업부문이 죽을 쓰고 있는 상황에서 디즈니와 합작해 영화를 만드는 계약에 실패했다면 잡스는 단순히 벼락부자였다가 자신의 인격적 결함으로 인해 알거지로 추락한 바보로 역사에 기록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후에도 디즈니의 경영진이 바뀌지 않았더라면, 카젠버그가 나와서 드림웍스를 만들어서 디즈니를 위협하지 않았더라면, 결코 잡스와 픽사의 승리는 있을 수 없었을 겁니다.

결국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는 고비와 승부 때 마다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면 그의 애플 복귀는 불가능했죠. 게다가, 애플에 복귀한 이후로도 그는 정말 운이 좋았습니다. 빌게이츠와 협상에 성공한 것, 애플이 아닌 어떤 회사도 미디어산업과 하드웨어 산업을 통합한 제품을 만드는 게 불가능했던 것, 미디어 회사나 출판사들이 애플에 숙이고 들어갈 정도로 상황이 급박했던 것 등,,, 아귀가 닥딱 맞아 떨어지는 상황이 계속 연출되었던 건 누가 봐도 천운이라고 볼 수 밖에 없는 거죠.

그 다음으로는 그가 복귀한 후에는 그나마 자기 자신이 틀렸다는 점을 솔직히 인정할 줄 알게 되었다는 게 없었다면 그가 복귀한 다음에도 애플은 분명히 망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이패드나 아이폰의 가격이 그나마 합리적인 선에서 출하될 수 있도록 부품들에서 타협을 할 수 있었던 것, 특히나 인텔칩이 아닌 암계열 칩을 채택한 것이나, 앱스토어를 통해 개발자들에게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일부분이나마 개방했던 것은 잡스가 처음에는 극렬하게 반대하고 무시했던 겁니다. 결과적으로, 이 결정이 없었다면 예전 매킨토시의 처절한 실패를 그대로 재현할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가 고집을 꺽고 타협했기 때문에 애플이 성공할 수 있었던 거죠.

그나마, 잡스가 가지고 있는 가장 위대한 미덕은 돈을 벌기 위해 경영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겠죠. 그 자신이 열광하고 있는 가치를 위해 돈이 필요할 뿐, 돈을 위해 사업을 하지 않다 보니, 밑에도 그 가치를 이해하고 열정을 쏟는 직원들로 채워지게 되었다는 건 잡스가 쫓겨난 다음 후임이었던 스컬리 이하 CEO들과 확실히 다르게 차별화 될 수 있는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건 잡스와 같은 보스형 리더십일 지언정, 아예 추구하는 가치와 일관된 리더십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던 스컬리나 아멜리오 같은 이들에 비하면 천지차이의 결과를 내주고 있는 건 주목해야 하는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돈에 집착하고, 통솔하는 이가 자신의 개인적인 영달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면 그 밑에는 결국 잡스의 표현대로 “쓰레기”들로 채워질 수 밖에 없는 거죠.

어쨋던, 스티브 잡스는 영속하는 기업에 대한 열망과 열정으로 자신의 삶을 거기에 다 바쳤습니다.막대한 부를 젊은 나이에 거머쥐었음에도, 거기에 취하지 않았고, 서구사회의 광기와 합리주의의 한계를 직시할 수 있었으며, 자신의 인생을 좀 더 위대한 가치에 들이부을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저로 하여금 그의 삶을 항상 기억하고 현재 내 자신의 모습과 비교하면서 돌아볼 가치가 있는 그런 삶을 살다 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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