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권력층에는 크게 세 가지의 파벌이 있다고 합니다.
주로 혁명원로의 자제들로 이루어진 태자당, 공산당의 청년전위조직인 공청단, 그리고 이제는 세가 많이 약해진 상하이방이 있습니다.
상하이방은 장쩌민 전 주석의 직계라고 보시면 되는데, 등소평이 천안문 학살을 일으킬 때 가장 적극적으로 지지했던 장쩌민을 후계자로 지목합니다. 이 때 장쩌민이 상하이 시장이었다가, 후계자로 낙점되면서 같이 데리고 갔던 인물들이 상하이방의 핵심이죠. 이 상하이방이 권력의 핵심으로 자리잡고 있다가, 후진타오에게 자리를 물려준 다음에도 한 동안 요직을 내주지 않고 장쩌민이 상왕노릇을 하는 데 뒷받침을 합니다.
그렇게 위세를 부르던 상왕세력이 쪼그라들게 된 데에는 장쩌민의 오른팔이랄 수 있는 천량위가 뇌물수수 및 직권남용혐의로 징역18년형을 받게 되면서 부터입니다. 이 천량위가 부패혐의로 징역을 살게 된 것이 무슨 정의롭고 의로운 경찰의 청렴한 고발행위나, 내부고발자의 비분강개에 의해 치부가 드러난 게 아닙니다. 애초부터 조직적인 제거작전이 진행되었죠. 당시 상하이 당서기였던 천량위의 오른팔이자 상하이시 무장경찰의 대장이었던 창신쥐를 먼저 끌어내고 전격적으로 류홍카이 전 산시성 무장경찰총대장으로 교체를 합니다. 정적을 무력화 시키기 위해 그 측근을 잘라내고, 그러기 위해 측근의 측근을 먼저 잘라내는 게 중국에서는 파벌싸움의 전통적인 방식이라고 하네요.
어쨋던, 후진타오 이후까지도 주도권을 잡고 있던 상하이방은 지금은 힘을 잃어 소수파로 전락한 상태이지만, 아직까지도 세가 가장 큰 건 태자당이고, 최근에 왕리쥔의 망명기도 사건은 태자당과 공청당 간의 파벌싸움의 일환으로 이해하는 게 가장 타당한 것 같습니다.
태자당의 시조는 장쩌민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천안문 봉기로 인해 불안에 휩싸였던 중국 공산당 원로들은 믿을 건 역시 핏줄이라 생각해서 혁명원로의 자제였던 장쩌민을 후계자로 낙점한 거죠. 이후 원로들의 자제들 중 싹수가 있는 사람들은 개혁개방의 물결 속에서 미국으로 유학을 가거나 사업을 하는 등 정재계에서 실력을 쌓아가며 권력층 내 최대계파로 자리매김 하죠.
그런데, 파벌이 너무 커지다 보니 장쩌민의 친위세력이랄 수 있는 상하이방과 알력이 상당했습니다. 그 결과가 공청단 출신인 후진타오의 후계자 발탁으로 나온 거지요. 태자당 출신으로 후계자를 삼으면 장쩌민과 상하이방의 미래가 불안했기 때문에, 태자당과 공청단이 균형을 이루며 피터지게 싸워 줘야 장쩌민의 노후를 보장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그것 까지는 좋았는데, 후진타오와 공청단을 너무 얕보다가 천량위의 숙청 이후 힘을 완전히 잃은 상태입니다.
이제 남은 건 태자당과 공청단과의 투쟁이죠. 워낙에 태자당이 권력 핵심을 많이 점하고 있었던 데다가, 장쩌민의 상하이방과도 상당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던 탓에 후진타오의 집권에도 불구하고 처음에는 공청단이 많이 밀렸더군요.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 왕리쥔 충칭시 부시장의 “범죄와의 전쟁”입니다.
원래 왕리쥔은 몽고족 출신의 충칭시 경찰관이었는데, 범죄와의 전쟁을 벌이면서 500개가 넘는 범죄조직을 소탕하는 등 충칭시 내 범죄조직 소탕에 혁혁한 공을 세우며 일약 스타가 됩니다. 충칭의 포청천, 왕청천 이런 말까지 들어가며 승승장구하며 결국 충칭시 부시장의 자리 까지 오르게 되는 데에는 그의 뒤를 봐준 보시라이 충칭시당 서기가 있었기 때문이죠.
한마디로, 왕리쥔은 보시라이의 최측근인데, 보시라이가 다름아닌 태자당의 핵심 중 한 명 입니다. 이 태자당 출신 보시라이가 기획한 “범죄와의 전쟁”을 왕리쥔이 수행하면서 가장 인상깊었던 게 뭐냐면 범죄조직과 연루된 공무원들을 숙청하는 일이었는데, 그렇게 숙청된 고위직 공무원들 중에 다름아닌 공청단 소속 맴버들이 다수 들어있었다고 하네요.
간판은 범죄와의 전쟁인데, 사실은 상대파벌 잘라내는 도구로 활용했던 거지요.
그런데, 이제 난데없이 보시라이의 최측근인 왕리쥔이 갑자기 미국으로 망명기도를 하면서 일급 기밀문서들을 빼돌린 겁니다. 전하는 소식통으로는 그가 망명기도를 했던 미국 영사관 주위를 군병력과 장갑차가 에워싸는 일촉즉발의 상황이 벌어졌다고 하네요. 이미 일을 조용히 수습하는 건 불가능하게 되어버린 거죠.
일설에는 왕리쥔이 보시라이를 배신한 거라는 말도 있지만, 그렇게 배신을 한 거라면 구태여 “미국”을 끌고들어 갈 이유가 없어요. 권력핵심층 전체가 보시라이를 타겟으로 삼았다는 걸 감지했기 때문에 도망갈 데가 중국에는 없었다고 보는 게 더 타당한 추론이겠죠. 이런 추론이 틀렸던 맞았던 간에, 차기 공산당 지도부의 핵심인 상무위원으로 진출하려던 보시라이는 여지없이 뒤통수를 맞게 된 겁니다. 이로 인해 태자당도 크게 타격을 받게 되었죠. 뭐니뭐니 해도 공청단의 반격이 시작된 거라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결론으로 보면, 일당독재를 하면 일인지도체제를 하던 집단지도체제를 하던 이렇게 소모적인 파벌싸움을 피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저런 식으로 할 바에는 차라리 선거를 하고 여당야당을 번갈아 가며 정권교체를 하면서 잘잘못을 국민이 심판하는 민주주의가 백 배는 더 나은 제도라는 생각이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