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헛짚었던 이유.

정치이야기는 아니고, 그냥 의사로서 이번에 박원순씨 아들의 MRI 와 관련한 소동을 생각해 봅니다.

좃선일보에서 보여준 사진은 딱 두장인데, 하나는 경추, 다른 하나는 허리뼈 부위의 MRI사진이었습니다.

보통 그 영상에서 보이는 것처럼 몸을 가운데로 자른 것처럼 나오는 영상을 시상면영상이라고 하는데, 해당 영상은 모두 한 가운데 부위를 자른 것으로 보이는 영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정말 한 가운데를 자른거라고 단언하려면, 척추뼈 맨 뒷부분에 튀어나오는 돌기부분, 즉 등과 허리부분을 만져보면 튀어나와 있는 곳인 극상돌기가 모두 명확하게 보이고, 극상돌기와 돌기 사이의 인대가 확연하게 구분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그게 딱 명확하게 보이질 않았죠. 한 가운데를 잘랐는데 해상도가 떨어지는 MRI라서 희미하게 보인 것일 수도 있고, 한 가운데에서 조금이지만 떨어진 곳에서 얻어진 시상면영상일 수도 있죠. 이걸 중요하게 생각한 이유는, 모든 사람이 다 그렇지는 않지만, 대게 극상돌기 근처에는 그 주변부위 보다 비곗살, 즉 피하지방층이 얇습니다. 물론, 그 반대로 그 부위가 별 차이가 없는 경우도 있구요.

지금 당장이라도 구글 이미지 검색에다 “abdomen CT”라고 검색해서 단면영상들을 보면 상당경우에서 척추 뒷쪽 정중앙 부위에서 검은색으로 보이는 지방층이 주변보다 얇은 것을 확인하실 수 있을겁니다. 반면 굉장히 두꺼운 피하지방층을 가진 사람들, 즉 비만인 사람들은 대게 이렇게 극상돌기 바로 뒷쪽의 지방층이 그 주변과 별 차이가 없거나, 오히려 더 두껍게 나타나죠.

그런데, 이게 학술적으로 정식 통계가 있다거나, 이걸로 비만여부를 알아보는 잣대라거나 그런 건 아니죠. 그냥 별 생각없이 다른 목적으로 열심히 CT 나 MRI영상을 오랫동안 보면 대게 그렇다는 걸 느끼는 감이라는 건 생기죠.

이번에 소아외과 전문의나 전의총이라는 단체에서 제대로 헛다리를 짚은 이유가 아마, 이런 자신들의 오래 축적되어 왔던 경험을 지나치게 과신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판단을 조금 더 보류했어야 했던 건, 이게 정말로 정중앙 부위에서 얻은 시상면영상이 아닐 경우를 배제할 수 없었던 것도 있고, 오히려, 극상돌기 뒷쪽만 피하지방이 두꺼울 수도 있으며, 허리 부분에서 상당히 윗쪽,,, 그리고, 목 부위쪽의 피하지방층은 그리 두꺼워 보이지 않았던 것도 마냥 확신할 수는 없는 요소었던 거죠.

게다가, 단지 “마른 체형”이라는 것하고 실재 비쩍 마른 건 전혀 다른 겁니다. 마른 체형에서도 얼마든지 비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지방과 근육의 비율이지, 체형 그 자체가 아니죠.

사실, 전문가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헛다리를 짚은 가장 큰 요인은 마지막에 언급한 그 부분이었을 겁니다. 이 사람들 중에 직접 박원순시장의 아들의 몸매, 특히 옷을 벗은 상태에서의 몸매를눈으로 본 사람이 있었다면 그렇게까지 단정적인 표현을 써 가면서 고도비만환자의 영상이라느니, MRI 바꿔치기 가설을 제기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더해서 디스크와 척추뼈의 상태를 가지고, 20대와 30대를 구분할 수 있다는 주장은 더더욱 섯부른 것이었습니다. 십중팔구는 그런 예단이 맞겠지만, 안맞는 경우도 꽤 있습니다. 30대가 20대 같이 생생한 뼈와 디스크를 가지고 있는 수도 있고, 그 반대도 있으니까요. 이건 애초에 근거라고 말하기도 좀 그런 부분이었죠. 그리고, 디스크 부분을 보면 안에 이미 수핵이 빠져나간 것 말곤 모든 디스크에서 수핵 부분이 모두 온전하게 보존이 되어 있더군요. 30대라고 해서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고도비만에 디스크까지 있는데 다른 부분의 디스크가 모두 깨끗하게 성한 상태라면 그 또한 흔한 사례는 아니겠죠.

결론적으로, 이들이 헛다리를 짚은 이유는 “내가 환자를 많이 봐서 잘 안다” 라는 생각에 젖어서 그렇게 자기 자신이 쌓아온 경험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컨센서스를 바탕으로 정형화된 스탠다드와 얼추 비슷한 정확도를 보일거라고 착각한 것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강용석 의원과 친분이나 인맥으로 연결된 의사들이 무슨 정치적인 의식을 가지고 거짓말을 고한 건 아닐겁니다. 그렇지만, 전문가라는 공신력을 사회가 인정하는 이유는 전문가로서 최대한 신중함을 기본소양으로 가지고 있을거라 사회가 기대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잠시 망각하고, 자기 자신만의 임상경험을 과신했다는 건 의학적으로 문제가 큽니다.

현대의학이 한의학과 구별되는 가장 큰 차이가 자기자신의 주관이 개입된 경험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특히나, 영상의학이라는 분야는 더더욱 이런 주관의 개입을 금기시 해야만 제대로 된 판독소견을 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판독소견서에는 반드시 객관적으로 부인하기 어려운 근거를 먼저 쓰고, 결론을 낼 때에도 감별해야 하는 다른 예외적인 상황들을 여러개 집어넣게 마련입니다.(물론, 지금처럼 업무가 말도 안되게 늘어난 상황에서는 이런식으로 못하는게 현실이지만,,,) 이번에 헛다리를 짚었던 의사들은 그 철칙을 망각한 거죠. 물론, 이런 실수를 꼭 그런 소수의 의사들만 하는 건 아닙니다. 저도 허구헌날 X선영상에서 늑골골절도 놓치고, 맹장염과 게실염을 착각하기도 하고, 그 외에도 여러가지 실수를 저지르곤 합니다. 임상의사들과의 토론의 과정이 없다면 큰 일이 나도 여러번 났을 거에요. 그러한 한계를 항상 망각하지 않고 마음에 담아두는 자세가 영상의나 의사들에게만 필요한 건 아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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