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나 자신을 모르겠어요.

나이가 사십을 훌쩍 넘긴 지금에도 자기 자신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방황한다는 게 흔한 일인지 모르겠어요.

외적인 환경이 나를 괴롭히거나 번민하게 하는 건 아닙니다. 경제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40대라는 건 인생 전체를 봤을 때 전성기라고 봐야 하는 나이죠. 양친 다 살아계시고 가족에 아직까지는 큰 우환이 없으니 고민하는 이유가 내 바깥에서 오는 거라 핑계댈 수 없습니다.

지금은 내가 정말로 무얼 원하고 무얼 즐기고 싶어하고, 무얼 하고 싶은 건지에 대한 확신은 커녕 대충의 감조차 안잡히고 있어요.

지금까지 습관적으로 마셔왔던 커피를 끊은 지 일주일이 넘어가니, 커피에 집착했었던 나 자신이 진짜 내 모습이 아니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결국 나는 내가 진정 원하지도 않았던 커피를 마시기 위해 지금까지 수많은 돈과 시간을 허비해 왔었던 거지요. 굳이 원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일이 힘들어서 어쩔 수 없이 마신다”는 식의 합리화도 분명 진실된 목소리가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내 자신의 커피의존증이 스스로를 속여왔던 거지요.

커피만 그런 게 아니죠. 지금까지 열광하다 시피 읽어왔던 책이나 만화책들, 주변의 친구들에게 유별나다는 이미지를 감수하면서 까지 즐겼었던 수많은 게임들, 디피의 마니아분들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래도 상당한 시간과 돈을 들여가며 빠져들었었던 오디오와 프로젝터, 누구보다도 많이 뜯어고쳤던 조립 컴퓨터, 최근에 거금을 쏟아붓고 있는 사과(?)농장 만들기,,,

이런 것들이 다 지금까지의 나를 규정해 왔다고 해도 될 만큼 빠졌었던 취미입니다만, 커피를 끊듯 이런 것들도 필요한 상황이 된다면 다 끊을 수 있고, 그렇게 끊은 다음에도 나는 여전히 나 자신일 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은 그것들이 나의 본질을 규정하지 못한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된 것이죠.

제 진로문제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공부를 계속 하고 싶다는 열망을 내 운명, 내지는 내 자신의 내면에서 본질적으로 원하는 갈망이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랬기 때문에 박사과정을 밟아가면서 가계에 부담을 감수하면서 까지 나름으론 열심히 박사과정을 다니고, 논문을 준비하면서 딱 한 학기만 더 다니면 수료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직장을 옮기는 과정에서 “이게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니 그 때 까지 정말 그렇게나 하고싶었다 느꼈던 공부라는 거, 논문 쓰고 학계에 공헌하고 싶다는 생각이 정말 부질없고 나랑은 하등 상관없는 일로 느껴지는 거에요.

결국 내가 좋아하고, 원해서 매달렸던 것들 중에 정말 본질적인 갈망으로 끝까지 남아있는 건 하나도 없는 거였습니다. 지금의 나를 규정하는 건 오직 내가 해야만 하는 것들, 내가 감당하고 마쳐야 하는 역할과 임무들 밖에 없더군요. 가족을 먹여살리고, 가정을 유지하고, 직장에서 나를 필요로 하는 직원들과 환자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고, 이런 것들만이 나를 규정한다는 것이 참 서글퍼지더라구요.

젊었을 때에 나 스스로 무언가를 결단하고, 주위의 반대나 만류에 구애받지 않고 내 인생을 결정하는 데에 익숙했더라면 내가 지금에 와서 외부적인 환경은 궁핍하거나 치명적인 관계의 실패 같은 걸로 고통받을지 몰라도, 나 스스로를 알지 못해 방황하는 건 없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 봅니다. 김어준 총수같이 내가 하고 싶은 걸 한다는 좌우명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정말로 나이가 들어서도 자기 스스로를 잘 알고 실존의 방황 속에 번민하는 삶을 살지 않는 걸까요? 이게 참 궁금해 집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면, 이런 고민들은 단순히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미련에 불과할 수도 있겠죠. 스스로의 마음에 충실한 결정을 내렸던 이들도 나중에 가면 결국 후회하게 되는 게 보편적일 수도 있을 거구요. 어찌 보면, 이렇게 현재의 나에게 충실하고 과거의 나에 대해 별다른 집착을 보이지 않는 습관이 적응력으로 보면 오히려 더 긍정적인 것일 수도 있을 겁니다.

다만, 그런 스스로의 위안에만 매몰되어서 이런 고민을 안하고 사는 건 정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결론적으로,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을 선택했던 다른 사람들의 삶에 대한 호기심이 참기 어려울 정도로 커지는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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