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최근에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아주 자그마하고 사소한 계기로 평소와 180도 달라지는 걸 경험하고 있습니다. 정말 사람 마음이라는 게 이렇게 간사한 건가 하는 걸 새삼 깨닫게 되네요. 최근에 제가 몰던 차를 바꿔야 하는 일이 생겨서 새로 살 차를 알아보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원래 차에 대해 별다른 관심도 없고, 굴러다니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비싼 차들에는 눈길 한 번 줘 본 적이 없는데, 많은 분들이 차를 고르려면 시승을 해 봐야 한다고 권하시더군요. 그렇게 520d 시승을 한 게 화근이었습니다.
원래 몰던 국산차와는 느낌이 전혀 다르더군요. 시승을 마친 직후에는 그냥 느낌이 다르다 정도의 생각 밖에 안들었습니다. 어차피 고속,, 내지는 과속으로 달릴 일도 없는지라 고속주행 시의 안정성 같은 것에 감동을 먹을 일도 없었거든요. 그런데, 이게 하룻 밤을 자고 나니 계속 주행 시의 그 때의 느낌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 거에요.
결국 부지불식 간에 주행성능이 좋다는 차들에 대해 급 관심이 더해지면서, 폭스바겐 전시장을 들려 뉴cc를 봅니다. 그런데, 시트가 너무 젊은 층에 맞춰져 있더군요. 시트만 교체해 주는 옵션이 불가능하다는 설명에 어정쩡한 파노라마 썬루프까지 눈에 거슬리는게 급실망,,, 그렇게 실망하며 집에 돌아가는 데, 근처에 벤츠 전시장이 있다는 생각이 떠오르네요. 구경만 하고 가는 데 별 일 있을까 하는 생각에 들렀는데, 520d와 동급은 e220cdi 이라며 일단 시승날짜 부터 잡고 나서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네요. 아,,, 이거 가격이 점점 산으로 가고 있네요. 근데, 얼핏 들여다 본 e220, 인테리어가 너무 황송하게 치장이 되어 있네요. 시트도 마음에 들고,,,, 집에 오는 내내 이게 또 머리에서 떠나지를 않으니,,,,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나중에는 집 팔아서 차 산다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제가 될 수도 있겠더군요.
그런데, 주차장에다 제 차를 주차시키고 나서 보니, 저번 장맛비에 자연세차를 하고 나서 모기떼와 흙탕물이 장식되어 있는 걸 보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지금은 차가 나를 주인으로 모시며 열심히 나와 내 가족들을 태워주고 있는데, 내가 저렇게 인테리어 찬란하고 누가 봐도 알아주는 외양의 차를 사게 된다면 과연 그 때에는 지금 내가 차로 인해 누리는 편리함과 자유함을 온전히 누릴 수 있을까, 아니면 날마다 닦아주고 관리해 주느라 내가 차의 종노릇을 하게 될까 이걸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인테리어를 망가트릴때 마다, 사고 한 번 씩 날 때마다 수백만원의 돈이 깨질 때 마다 내가 어떤 스트레스를 받게 될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되니 머리가 다시 차갑게 되더군요.
게다가 요 며칠간 차를 알아보기 시작하면서 부지불식간에 다른 잡다한 씀씀이도 상당히 커지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마실 생각이 전혀 없었던 커피전문점의 3500원짜리 카푸치노를 아무 스스럼 없이 마셔대기 시작했고, 평소에 잘 쓰지도 않는 데세랄 카메라에 망원줌렌즈를 특별히 절박한 필요도 없는 상황에서 별 생각 없이 질렀으며, 이것저것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아무런 거리낌 없이 평소보다 고가의 제품들로 구입하기 시작하고 있더라구요. 게다가, DP에서 공동구매 중인 플젝까지 지르자는 생각이 강하게 밀려오는데,,,, 속된 말로 바람이 난 거지요. 수천만원 짜리 차를 지르는 마당에 그깟 3백만원 짜리가 대수냐는 생각까지 나오는 제 자신이 무서워졌어요.
어쩌면, 이런 게 원래의 제 진정한 모습이었을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평소의 저로서는 너무 낯설고 이질감 가득한 모습이어서 정말 놀랐습니다. 이런 모든 극적인 변화가 기껏 차를 고르기 시작하면서 부터 시작되었다는 건 스스로 생각해도 참 놀랍고 성찰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마음 다스리기가 정말 쉽지 않고, 정말 사소한 것을 계기로 중심을 지키는 데 실패할 수도 있다는 걸 확인하면서, 항상 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 보고 성찰하고 돌아보는 게 중요하다는 걸 절감하게 됩니다.
차를 고르는 일이 결국엔 어떻게 결론이 날 지는 저도 모르겠어요. 시승을 하고 나서는 또다시 말로 표현하기 힘든 열정에 사로잡혀서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 보다 더 비싸고 분수에 맞지 않는 차를 고르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내가 삶의 주도권을 엉뚱한 것에 내어주지 않고 흔들림 없이 마음의 중심을 잡아가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결론적으로,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된다는 게 결코 쉽거나 간단한 건 아닌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