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참 재미있게 읽고 있는 캘리 맥고니걸이 지은 “왜 나는 항상 결심만 할까”라는 책에 나온 실험 이야기입니다.
브누아 모넹과 데일 밀러라는 학자가 프린스턴 대 남자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는데, 실험모델은 이렇습니다. 성차별과 관련한 지문을 설문에 집어넣는데, 처음에는 “대부분의 여성은 똑똑하지 않다”, “대부분의 여성은 집에서 자녀를 돌보는 게 낫다”는 식의 설문에 답을 쓸 걸 요구합니다.
성차별이라는 건 미국에서는 대단히 터부시 되는 주제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대상자들은 화를 내거나 아예 답변을 하기를 거부했다고 합니다.
그 다음에는 좀 더 완화된 수준의 설문,,, 즉 “대부분의 여성”이라는 말 대신 “일부 여성의 경우”로 대체해서 설문을 했습니다. 이런 완화된 설문의 경우에는 상당수가 거부하거나 단호한 입장을 취하지 않고 일단 응답을 하거나 중립적, 또는 일부 호응하는 의견을 낸 대상자가 있었다고 합니다. 실험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고, 이들을 금융계나 건설계 고위직 같이 남성주도적 성향이 있는 산업계에 지원하는 지원자들의 적합성을 평가하고 조언하는 임무를 부여해서,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를 확인하는 걸로 마쳤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대부분의 여성”으로 시작하는 노골적 성차별 지문이나 “어떤 여성의 경우”로 시작하는 완화된 성차별 지문에 모두 강하게 거부하는 반응을 보였던 사람들이 건설,금융계에서 여성 지원자들의 적합도평가에 더 호의적이든지, 최소한 중립적인 입장을 보였으리라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애초에 그런 사람들의 성차별에 대한 도덕적 관념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도덕관념,,, 즉 완화된 지문에서는 단호하게 대처하지 않은 이들의 도덕관념보다 더 엄격하고 성차별에 단호한 입장을 보이는게 당연할 거라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험은 놀랍게도 정 반대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두 설문 모두에서 단호하게 성차별에 대해 반대하던 사람들이 정작 금융, 건설업계 여성지원자들을 더 많이 배제했다고 합니다. 오히려, 완화된 입장의 설문에서 성차별적 진술에 대해 긍정적, 또는 중립적 입장을 보였던 사람들이 여성지원자에 대해 더 나은 호감도를 보였다고 합니다.
이 실험결과가 말해주는 것은 도덕적 자제심, 내지는 우리가 무의식에서 충동적으로 내비칠 수 있는 욕구에 대한 절제능력은 단기간에 많이 사용하면 할수록 고갈되는 에너지와 같다는 겁니다. 오늘 아침에 내가 착한일을 많이 했다면, 오후에는 “나는 착한 일을 아주 많이 했으니까 쬐금은 대접을 받아도 괜찮아” 하는 마음이 그만큼 더 강하게 일어난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일어나는 사소하고 작은 특권의식이 도덕심이나 자기절제로 무장한 사람을 가끔씩은 180도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돌변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는 겁니다.
이러한 절제력이나 도덕관념의 일시적 고갈에 의해 일어나는 충동성향이 결혼한 복음전도사가 비서와 부정을 저지르게 만들거나, 도덕적으로 칭송받아온 정치인이나 관료가 공금을 유용하게 만들 수 있다는 거죠.
이렇게 순간적인 충동에 무방비가 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자기 스스로를 고결하다고 인식하거나 도덕적인 수준이 높다고 지속적으로 인식하고, 또 실재로 항상 높은 수준의 절제력이나 도덕적 수준의 유지를 요구받는 위치에 있다는 점입니다.
재미있는 건, 이런 자기절제력의 고갈이 전혀 엉뚱한 방향의 충동을 일으키기도 한다는 겁니다. 착한 일을 실재로 하지도 않았고, 단지 한다는 상상이나 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기만 해도 값비싼 청바지를 사고 싶은 욕구가 그 순간 증가한다는 실험결과도 있다고 하네요.
결국 이런 실험결과를 통해 우리가 절제심이나 도덕적 수준을 꾸준히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자기 자신이 언제든 짐승으로 돌변할 수 있는 보잘것 없는 자아와 도덕적 본능을 가지고 있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장기적으로는 꾸준하고 규칙적인 운동이 근육과 체력을 키우는 것처럼 장기적인 절제력 향상 훈련을 시작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기독교인이 항상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는 것과 같은 자기고백을 연상하게 만드는 대목이죠.
그동안 명확하게 이런 걸 분석하지는 못했지만 어렴풋하게 느끼고 있었던 것들인데, 이렇게 명확하게 실험을 통해 증명을 해 준 심리학자가 있었다는 것 만으로도 느낀 게 많았습니다. 계속 읽어 보면서 재미있는 부분은 또 글로 옮겨 볼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