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넥웰즈 신드롬

1992년에 미국에서 크게 유행한 쿠키 이름이 스넥웰즈라고 합니다. 이 스넥웰즈 쿠키 봉지에 쓰인 “무지방”이라는 단어가 다이어트를 하는 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연구한 이들이 붙힌 이름이 스넥웰즈 신드롬인데, 체중관리를 하는 사람들이 “무지방”이라는 문구가 내뿜는 후광에 눈이 멀어 설탕이 과도하게 첨가된 이 쿠키를 평소보다 더 탐닉하면서, 오히려 체중조절을 실패하고 이 무지방 쿠키를 소비한 이들의 체중이 늘어나게 되었다는 일화입니다.

이제는 “무지방”이라는 문구 하나만 가지고선 다이어트에 도가 튼 사람들을 현혹하기 힘들겠지만, 무지방이라는 문구 대신 “유기농”이라는 문구가 들어가면 또 비슷한 효과가 발생한다고 하는군요. 이렇게 그 자체로만 보면 누가 봐도 미덕이 분명한 것들에 현혹되어 도리어 그 미덕에 반대되는 무절제한 행동을 부추기거나 각자가 세워놓은 장기목표를 위협하는 경우를 “후광효과”라고 한답니다.

이런 후광효과를 자극하는 문구는 다양한데, 대표적인 것이 하나를 사면 하나가 공짜(절약이라는 미덕에 호소하며 거꾸로 소비욕구를 자극), 천연원료, 저지방, 공정무역, 유기농, 온실가스 감축, 같은 것들이죠. 이런 후광효과가 장기적인 목표달성을 위해 필요한 자기절제력을 파괴하는 결정적인 매커니즘은 이러한 후광에 참여하는 것이 마치 그 만큼의 악덕을 저지를 수 있는 권리로 치환될 수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다는 겁니다. 예를 들면, 탁아소에서 아이를 늦게 데려가는 부모에게 벌금을 매기는 경우에 오히려 예저보다 부모들이 아이를 더 늦게 데려가는 일이 늘어난다는 거죠. 부모들이 늦어도 되는 권리를 돈으로 산 거라고 생각한다는 겁니다. 벌금이 사회적 책임에 대한 상징이 아닌 죄지을 권리에 대한 댓가로 바뀌어 버리는 거죠.

사회적으로 꼭 필요한 가치들, 이를테면 공해와 자연파괴를 완화하고 환경의 재생을 촉진한다는 가치를 위해 무언가를 하더라도 사람들의 후광효과를 자극하는 방식으로는 오히려 무절제한 선택을 부추겨 소비가 더 늘어나고 환경파괴가 가속화 될 수 있다는 건 사회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기업들이 펼치고 있는 사회참여 행위들이 정말로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는게 아니라, 자사의 매출을 위한 눈속임에 불과한 것인지를 감시해야 할 것이며, 전체적인 소비량의 감소를 목표로 하지 않은 채 제품생산과정에서 덧붙혀지는 친환경이나 건강에, 절약등에 호소하는 구호들이 과연 제대로 된 것인지도 고려해야 하는 거지요. 실재로 건강에 나쁜 패스트푸드를 취급하는 맥도날드에서 칼로리가 적고 건강을 고려한 샐러드 매뉴가 추가되자, 정작 그 샐러드 매뉴의 매출이 늘어난 게 아니라, 맥도날드 매뉴 중에서 가장 칼로리가 높고 건강에 해로운 매뉴들의 매출이 급증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많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건 다 같은 미덕이고, 사회를 위한 진전처럼 보일지라도, 본질을 따지고 보면 오히려 눈속임을 위한 미덕이 있고, 진정한 진전을 위한 미덕이 따로 존재한다는 거죠. 문제는 사람들이 열광하고 선호하는 건 항상 눈속임을 위한 미덕, 자신들에게 면죄부, 충동에 더 충실할 구실을 주는 미덕이라는 것은 진지하게 돌아봐야 할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또, 개인의 입장에서, 장기적인 목표를 위해 최대한 절제력을 발휘해야 하는 경우 이러한 후광효과를 피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가에 대해서도 과학자들이 연구를 했는데, 이런 후광효과에 의한 면죄부라는 덫을 피하기 위해서는 순간순간 벌어지는 개별사안들에서 내가 옳은 선택을 했는지, 그른 선택을 했는지를 따지며 그러한 선택에 대한 즉각적인 보상을 기대하게 만드는 “이벤트”위주의 관점을 버리고, 내 자신의 자아가 무엇을 최선으로 여기며 궁극적으로는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가 하는 “가치관”위주의 관점을 가질 것을 주문합니다. 단기적 목표나 중간목표가 달성되었다는 사실에서 환호하고 나 자신을 대견하게 여기는 사고방식이야 말로 후광효과의 덫에 잡히기 쉬운 성향을 보이기 때문에 그런 순간일수록 경계를 해야 한다는 겁니다.

결론적으로, 자기자신에 대한 자신감이나 낙관주의, 또는 자부심(오히려 스스로를 충동적으로 행동하게 만든다고 합니다)을 억제하고, 내가 되고 싶어하는 최종 지향점인 “가치관”에 집중하며, 내가 그 가치관에 맞게 살고 싶어한다는 걸 항상 되뇌이고 잊지 않는 삶의 태도야 말로 가장 효과적인 자기절제의 필요조건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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