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이 있는데,,, 사촌은 커녕 생전 처음 보는 사람에게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수도 있더군요.
어제 백화점 지하에서 파는 닭강정이 맛있으니 가서 사자는 마눌님의 제의를 받고 차를 몰고 주차장에 들어서려고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바로 앞 차가 렉서스더군요. 뭐, 렉서스라고 해도 그리 비싼 차는 아니고(IS250) 요즘 외제차 돌아다니는 거야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지만, 백화점 입구에 들어서니 이 차가 주차장쪽으로 줄을 안서고 그냥 1층 입구쪽으로 빠져나가는 겁니다. 그러다 운전자가 그냥 대책없이 내려버리네요. 젊은 친구가 옷을 참 대학생스럽게 입고 있었는데 왜 저러나 했습니다.
그런데, 일요일 점심 때의 그 북적북적한 시간에 어디선가 백화점직원이 쪼르르 달려와서 그 젊은 친구에게 공손히 인사를 하고 운전석으로 들어가는 거에요. 그 순간 조수석에서 동승했던 여자가 나오는데, 정말 화려하더군요. 몸에 달려있는 장신구가 셀 수가 없을 정도,,,
해당 백화점에서 VIP고객도 지하1층까지는 내려가야 직원들이 주차를 도와주는데, 이 젊은 친구는 지하까지 내려가지도 않고 입구에서 오케이,,, 이런 건 진짜 처음 봤어요. 말로만 들어왔던 VVIP였지 않을까 싶더군요.
솔직히 지금까지 인생을 살아오면서 돈 많은 사람들을 별로 부러워 해 본 적이 없었는데, 순간 이 젊은 친구의 모습을 보면서 순간이나마 진심 박탈감을 느꼈었습니다. 나는 이 나이가 되도록 뭐하고 살았나,,, 뭐 이런 생각이 올라오는데, 이런 잡생각을 정리하는데 애 좀 먹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제가 살면서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생각은 우선순위에서 항상 밑으로 밀려나 있었던 게 사실입니다. 대학을 선택할 때에도 원래는 공대나 이대를 가고 싶었었고, 의대 졸업하고 전공을 선택할 때에도 돈 많이 버는 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과를 택했죠. 수련을 마치고도 월급 많이 주는 직장은 마다하고 좀 편하고 내가 하고싶은 걸 할 수 있는 직장을 선택했었습니다. 결혼도 마찬가지였구요. 그렇게 살다 보니 자연스레 모아놓은 돈도 별로 없고, 돈 쓰는 것도 같이 어울리는 친구들이나 동료와 비교해보면 언제나 소박한 축에 들어가는데, 그래도 전혀 불편한 걸 느끼지 않고 잘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어제의 그 광경을 보면서 왠지 내가 헛살았던 건 아닌지 지금까지도 진지하게 의심하는 마음이 남아있네요.
어차피 제가 그렇게 백화점 VVIP가 될 가능성은 전혀 없을테니 못 먹는 포도는 신포도로 치부하듯 신경 끄고 스스로를 합리화 하며 사는게 정답이긴 한데, 돈의 위력이라는 걸 참 적나라한 방식으로 체험하게 된 건 상당기간 동안 마음에 트라우마로 각인될 것 같습니다. 혹시라도 이런 박탈감이 고이고 고이다가 시기질투나 다른 나쁜 마음을 먹게 되지 않도록 다짐하고 또 다짐하는 것으로 어제 저녁 내내를 보냈네요. 나이가 40이 넘었어도 인생공부는 아직도 한참 멀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