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리안드로스

요즘 시골의사 박경철씨의 그리스 여행기인 문명의 배꼽, 그리스를 읽고 있습니다. 주된 내용은 그리스 견문록이라기 보다는 평소 그가 흠모해 왔던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발자취를 곱씹고 정리해 가는 과정을 쓴 것에 가까운데, 생각할 거리들이 많군요. 문득 책을 읽다 나온 페리안드로스에 대해 써보려 합니다.

페리안드로스가 굉장히 문제적인 정치가였습니다. 코린토스(고린도)의 두번째 참주였던 페리안드로스는 그리스의 7대현인의 한 사람으로 칭송받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아내들을 잔인하게 살해하고 폭정을 펼친 사람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페리안드로스의 대표적인 치적은 코린토스의 항만산업을 일약 부흥시켜 경제를 중흥시킨 것입니다. 디올코스라고, 해안선이 복잡하고 해적의 출몰이 잦은 항로를 건너뛰어 배를 도르레로 들어올려 뭍으로 끌고와서 다른 쪽 해안으로 옮기는 시스템을 개발해 물류의 중심지로 자리잡게 된 겁니다. 코린토스 주변의 울창한 숲을 이용해 조선사업을 벌인 것도 성공적이었다고 하구요.

그의 아버지가 코린토스의 귀족들을 몰아내고 정권을 잡았지만, 그 또한 집요하고 잔인하게 귀족들을 숙청했을 뿐 아니라, 노예를 수입하는 걸 금지시킴으로서 귀족들의 경제적 토대를 무너트린 동시에 디올코스나 항만을 움직이는 노동자들의 임금을 안정적으로 유지해 그들의 지지를 얻었으며, 명망있는 시민들을 지속적으로 탄압해 그의 생전에 그에게 도전하는 세력이 없었다고 합니다.

시민들 또한 잔인한 숙청과 탄압으로 점철된 그에게 원한을 품기 보다는 공범이 되는 편을 택했는데, 이는 그가 지속적으로 시민들에게 일자리와 즐길 거리, 즉 환락을 제공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디올코스에서 벌어들이는 막대한 수입을 가지고 국책사업을 벌려 상인들에게는 안정적인 이권을 보장해 주었기 때문에 상인들 또한 그를 지지했다고 하구요. 그래서인지, 역사는 페리안드로스의 개인적인 성격이나 행태와는 달리 그의 치세 때의 코린토스가 더없는 전성기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가 죽고 나서는 순식간에 코린토스가 약소도시로 전락해 다른 도시에 공물을 바치는 숙주도시로 전락했다는 사실입니다.

어떻게 그가 죽자마자 이렇게 금방 몰락했는가, 저자인 박경철씨는 하나의 답을 내지 않고 여러가지 추측들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기나긴 독재의 기간 동한 유능한 인재들이 지속적으로 숙청당하면서 문화나 교육적으로 황폐화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시민들이 독재의 공범이 되면서 자부심과 정신적 진보 보다는 향락과 퇴폐에 빠져 창의적인 혁신을 더이상 할 수 없게 된 것(실재 최대 수출품인 도자기가 양식과 문양이 정체되어 경쟁 도시에 밀려 퇴조되었다고 합니다.) 때문은 아닐까, 아니면 노예수입의 금지로 임금이 안정적으로 유지되었음에도 지속된 경제성장과 국책사업으로 인한 내수효과로 시민들이 이제는 누구도 힘들게 배를 끌어올리거나 배를 만드는 힘든 일을 하려들지 않게 되어 산업이 유지될 수 없었던 건 아니었을까, 계속된 벌목과 환경파괴로 배를 만들기 위한 숲이 다 사라져 더이상 조선업을 지속할 수 없었기 때문은 아닐까, 지정학적 요충지라는 전략적 장점이 도리어 그 중요성으로 인해 강대국의 목표가 되어 지속적인 견제와 간섭을 받았기 때문은 아닐까 등을 추정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제가 가장 그럴듯하다고 생각했 던 추측은 다른 도시국가들이 모두 공화제로의 변혁에 성공함으로써 시대의 변화에 성공적으로 적응했던 반면, 코린토스는 맹방이자 인종적인 동질성으로 배척할 수 없었던 스파르타의 간섭으로 공화제를 정착시키지 못하고 애매한 과두정을 강요받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들 스스로 선택한 체제가 아닌 강요당한 체제로 제대로 된 경쟁력을 보존하는 건 결코 불가능했을 거라는 생각입니다.

어찌 되었든, 코린토스는 군사적인 역량을 가지고 패권을 추구할 수 있는 도시국가가 아니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바로 근처에 스파르타가 있었기 때문이죠. 결국 그들은 경제와 문화를 가지고 도시의 경쟁력을 키워나가야 했고, 그런 점은 우리나라의 처지와 많이 비슷해 보입니다. 그들이 한 때 강력한 독재자의 지도로 경제적인 부흥을 일으켰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경제적 성과를 지속시키지 못하고 정체와 몰락으로 귀결된 점 또한 우리나라가 반면교사로 생각할 거리가 많다고 봤습니다.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