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들의 구두쇠 행각이 보여주는 교훈은?

언론이나 인터넷 같은 매체에서 자주 등장하는 게, 부자들이 자신의 막대한 재산과 수입에도 불구하고, 사치스런 소비를 하기는 커녕 보통 사람보다도 더 심하게 절약하더라는 일종의 미담(?)들일 겁니다.

중국의 총리가 구멍난 양말을 신고다니는 게 화제가 된다던가, 이케아 그룹의 오너인 잉바르 캄프라드의 구두쇠행각이라던지, 자기 아들이 아파도 병원에 보내지 않고 버티다 불구가 되게 만들었던 미국의 한 여성 부호 이야기, 한 때 전 세계 운동선수 중 가장 많은 돈을 벌었었던 미하엘 슈마허가 자기가 살고 있는 스위스 보다 잼을 조금 더 싸게 살 수 있다는 이유로 독일에 들릴 때 마다 잼을 사서 들고 다니는 이야기, 자산이 1조원이 넘는 은행가가 호텔에 묵을 때 마다 호텔 편지봉투와 볼펜을 꼬박꼬박 챙겨간다는 이야기들,,, 파고 들면 너무나 많은 사례들이 존재합니다.

그런 이야기들을 들을 때 마다 일반 대중들은 그들을 특이하다고 생각하고, “저런 절약정신이 있기에 부자가 된 거군,,” 하는 교훈을 새기기도 합니다. 아마도 미디어가 이런 류의 이야기를 퍼트리는 목적이 여기에 있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부자들은 평범한 사람들과는 무언가 달라도 다르기에 부자가 될 수 있었다는 식의 메시지 말입니다.

하지만, 조금 더 깊게 생각을 해보면 부자들의 이런 습관은 결코 이들 부자들에게 합리적이지도 않고 유리한 습관이 될 수 없습니다. 그들이 가난했거나 작금의 부를 축적하리라 목표를 삼고 열심히 돈을 벌어가는 과정에서라면야 어쩌면 이런 습관들이 도움이 되었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미디어에 이름이 올라올 정도의 부자들은 대부분 자기가 얼마나 많은 돈을 가지고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많은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고, 평생을 써도 다 쓸 수 없는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이들에게 필요한 건 푼 돈을 절약하는 습관 보다는 가지고 있는 돈을 지키는, 즉 자신의 부를 구축하고 유지하는 일이거나 모아놓은 자신의 돈을 잘 쓰는 일입니다. 최소한, 그들이 절약이라는 명분을 가지고 소비하는 그들의 시간과 열정, 체력은 그들이 절약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얻은 돈의 몇 천, 몇 만 배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임에 틀림이 없는거죠.

공공의 입장에서 이들 부자들이 그따위 구두쇠 근성으로 돈을 풀지 않으니까 낙수효과를 기대할 수 없고, 사회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식의 공익적인 차원에서의 접근은 그만두더라도, 이들 부자들의 절약습관은 이미 합리적인 행동양식이 될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왜 이들 부자들은 그런 불합리한 행동양식을 매우 광범위하게 보이는 걸까요?

요즘 제가 읽고 있는 하노 벡 씨가 지은 “부자들의 생각법”에서는 이런 행동양식이 단지 부자들만의 괴벽이 아닌 지극히 보편적이고 통상적인 인간심리의 반영에 불과하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불합리한 게 분명하지만 인간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저지르는 심리학적인 함정에 빠진 거라고 말입니다. 이른바 “베버-페히너 법칙”이라는 겁니다.

베버-페히너 법칙이라는 건 인간이 느끼는 어떤 사안에 대한 심각성의 정도는 해당 사안과 상관없이 직전에 그 사람이 받았던 자극의 크기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거라고 합니다. 양초를 10개 켠 방에서 1개를 더 켠 경우에 느끼는 밝음의 정도와, 100개를 켠 방에서 1개 더 켠 경우에 느끼는 정도가 다를 수 밖에 없다는 거죠. 천만원 짜리 상품에서 50만원을 할인해준다는 말에는 시큰둥하게 받아들이지만 백만원 짜리 상품을 50만원 깍아준다는 말에는 열광과 충격을 받게 된다는 거지요.

앞서 슈마허의 예를 들면 이미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산이 얼마가 되던 상관없이 1000원짜리 잼을 독일 가서 800원에 사면 200원 절약했다는 사실에 기쁨과 보람을 느끼는 게 아니라, 자그마치 20%나 싸게 샀다는 사실에 보람을 만끽한다는 겁니다. 슈마허의 경우야 그런 자신의 보람(?)을 위해 지불해야 할 시간과 노력이 생각만큼 크지는 않다고 항변할 수 있겠지만, 자신의 아들을 불구로 만들어버린 미국부자의 경우나 호텔에 비치된 걸 일일이 다 가져가면서 대중에게 쩨쩨한 인상이 박혀 이미지관리에 타격을 받아 언젠가 생길지도 모를 사업기회를 잃어버릴 지도 모르는 은행가의 경우들은 금액적으로 비교할 수 없는 댓가를 치루게 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자들의 구두쇠행각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통상적인 미디어가 주고 싶어하는 메시지와는 달리, “부자들도 우리와 똑같은 불합리성과 어리석음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라는 데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베버-페히너의 법칙은 이렇게 부자들의 불합리한 어리석음만을 설명해 주는게 아니라, 보통 사람들, 당장 돈에 쪼달리는 서민들의 불합리한 행동을 지적하는 데에도 매우 유용한 이론입니다. 무언가를 구입하고 소비해야 하는 선택의 입장에서 그러한 선택 바로 직전에 우리가 받았던 자극의 강도가 해당 선택에 무의식적으로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큰 돈을 들여 집을 미리 사 놓은 신혼부부와, 아직 집을 사지 않은 신혼부부 사이에는 결혼식과 신혼여행에 들어가는 비용이 상당한 차이가 난다고 합니다. 집을 산 부부는 “집도 샀는데 이까짓 비용 쯤이야” 하는 마음으로 예식과 신혼여행에 훨씬 더 많은 돈을 지출하게 된다는군요.

이렇게 자극의 크기에 따라 자신의 선택이 달라지는 건 “부자가 아니기 때문에 최대한 돈을 아껴야 하는” 입장에 있는 우리들의 금전사정에도 해롭지만, 더 나아가 지극히 합리적이었어야 할 소비와 저축 갈은 경제행위를 자신의 기분문제로, 심리학의 문제로 변질시킨다는 것 자체가 자존감을 저해하는 굉장히 기분나쁜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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