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적”이라는 수식어는 인간의 결정이나 행위에 붙어야 하는 수식어지, 어떤 물건에 붙는 수식어가 아니라는 걸 생각해 봐야 합니다. 관용적으로 그렇게 붙혀서 쓸 수는 있겠지만, 언제나 그런 관용적인 표현에는 “합리적인 소비행위”라는 주체가 빠져있을 뿐 물건 그 자체가 합리적일 수는 없다는 걸 잊으면 안되겠지요. 그러므로 제목의 “합리적인 차” 라는 단어는 의미불명의 잘못된 단어입니다.
즉 내가 차를 구매함에 있어서 합리적인 소비행위를 할 수 있으려면 어떤 차를 골라야 하느냐는 식으로 질문이 바뀌어야 할겁니다.
그렇다면, 그런 소비행위의 근거가 먼저 구체적으로 규정되어야지 그 합리성을 판단할 수 있는 거지요. 즉 “출퇴근 목적으로 자동차를 구매하려는데” 라던지 “자녀들의 통학에 20%, 아내의 일상생활에 50%, 주말 여행에 30%의 비중으로 사용하려 하는데” 라던지, 하다 못해 “다른 직장동료들이 왜 너는 차가 없느냐는 무언의 압박에 시달리고 있어 이를 해소하려고 차를 사려 하는데” 라던지 “그냥 차를 사면 최근 늘어나는 일상의 스트레스가 해소될 거 같은 느낌이 들어서” 라던지 어떤 구체적인 소비행위의 목적이 규정될 수 있어야 합니다.
최소한 합리적인 소비행위를 하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으려면 지금 동원 가능한 가용자금이 얼마냐는 고려의 대상이 될 수가 없는 거지요. 정말 절실한 필요가 있어서 소비하려는 거라면 수중에 돈이 한 푼도 없더라도 빚을 내서 차를 사야지 합리적인 소비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백억이 넘는 돈이 썩어 넘쳐나는 상황이라도 당장 그걸 사야 할 이유가 없는데 사는 건 그냥 자신의 불합리한 행태를 과시하려는 거지 “합리적인 소비”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거죠. 졸부가 돈자랑을 하려고 비싼 차를 샀다,,, 이건 외려 합리적인 소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외양을 화려하게 내보이고 과시하는 것 자체가 사회적으로 큰 메리트를 창출하는 하나의 상징으로 작용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자동차를 사는데 있어서 그런 합리성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는게 현실이자, 원래 그게 정상인 겁니다. 구태여 내가 합리적인 자동차 구매를 했다고 스스로를 납득시키거나 속일 필요가 없는 거에요. 애초에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고 차를 사야만 하는 이성적인 근거라는 게 생각보다 많지를 않습니다. 또, 정말로 차가 필요한 경우라 하더라도, 합리적인 판단에 의거한 결론보다 훨씬 비싸거나 싼 차를 사는 경우도 많습니다. 합리적인 판단 보다 더 싼 차를 사면 그것도 비이성적인 구매라고 할 수 있다는 걸 생각해 봐야 합니다. 무조건 아낀다고 합리적인 게 아닐 수도 있다는 거지요.
그렇기 때문에, 합리적인 차량구매를 정말 하고 싶은 분들은 시중에 나와있는 수많은 차들의 장점이나 단점, 사양이나 이런저런 사연들을 수집하고 연구하지 말고, “왜 내가 차를 사려고 했는가”에 대한 자기고백을 진솔하고 차분하게 서술해 보고 점검하는 게 우선해야 합니다.
사람은 스스로를 속이는 심리학의 함정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동물이기 때문에, 대게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하는 본능이 있습니다. 문제는 정말로 이성적인 상태로 자기가 뭘 보고 싶어하는 지 조차 깨닫지 못하고 주위의 분위기에 휩쓸려서 전혀 의도하지 않는 상황으로 빠지기 쉽다는 거지요. 이런 경우 주어지는 정보량이 많아져 봐야 분위기에 휩쓸려 조성된 감성에 의해 조작된 기호와 선호를 만족하는 정보는 과대평가되고, 그런 선호에 반대되는 정보는 평가절하될 수 밖에 없습니다.
정보량이 많다고 공정한 판단을 할 수 있는게 아니라, 그 반대로 엉뚱한 판단을 할 수 밖에 없고, 이게 인간의 본능의 영역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대다수 사람들이 그런 그릇된 판단을 하기에, 다수의 의견을 따라 대세추종을 하면 할수록 이성적인 판단에서는 점점 더 동떨어진 판단으로 왜곡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차 저 차 좋은 점을 알아보거나 연구하던지, 자동차 동호회에서 나오는 이런저런 정보들을 섭렵하는 것은 결코 합리적인 판단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겁니다. 정말 합리적인 판단을 하고 싶다면 그 반대로 자기 자신을 들여다 보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자신이 스스로 생각하기에 합리적인 동기가 아니라고 부끄럽게 여길만한 어떤 동기를 가지고 차를 보고 있다면, 그런 동기도 스스로 납득하고 받아들이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나 멋진 차 샀다” 는 자랑을 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걸 애써 부정하지 말고 그러한 목적도 당당하게 차량선택을 하는 데 고려하는 용기가 필요한 겁니다.
그렇게 구매를 고민하는 단계에서 스스로에게 솔직해지지 못하면, 차량을 사고 난 이후에도 계속 스스로를 속이는 심리적인 함정에 빠져서 허우적 댈 수 밖에 없는 거죠. 일단 자신의 소유가 되고 나면 그 물건의 가치를 지나치게 높게 평가하게 되는 소유효과에 빠져서 전혀 합리적이지 못한 행동을 연이어 하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동차회사의 광고를 보는 주된 소비자층이 정작 차를 고르고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해당 브랜드의 차를 산 사람들이라는 아이러니는 분명 시사하는 점이 있습니다. 정말로 합리적인 차량구매를 했다면, 그 목적에 맞게 차량을 활용해야지 그런 소유효과에 빠져 내가 정말 좋은 선택을 했다는 자부심에 중독되 있다 일상의 평온과 평정을 헌납하고 해당 브랜드의 빠돌이 내지는 다른 경쟁브랜드의 안티가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합리적인 차라는 화두는 목적에 부합하는 합리적인 차량의 선택 뿐 아니라 그 차량의 보유 및 활용의 영역에서까지 고민해야 할 점들이 존재하는 화두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