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젊은 분들이 참 어렵죠. 경제성장율이 둔화되고, 각 경제주체들이 다들 시들해지는 상황에서 무분별하게 늘어난 대학정원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라니 젊은이들에게 돌아갈 수 밖에 없을겁니다.
그런 어려움에 신음하는 젊은이들을 향해 도전정신이나 패기, 열정 같은 단어는 오히려 그들을 자극하는 말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왜 젊은 사람들만 사서 고생해야 하고, 도전해야 하는 건지 화도 나고 그럴거에요.
근데, 이렇게 어렵고 힘들 수록 패기를 가지고 도전정신을 불태워야 하는 이유는 다른데 있는게 아니라 바로 그런 젊은 분들 각자의 생존에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다른 사람들이 가보지 않았던 길을 가야만 해요.
물론, 다른 사람들보다 월등히 공부를 잘해서 좋은 성적을 가진 학생들은 도전정신이니 패기니 이런게 필요없습니다. 좋은 성적 가지고 좋은 대학가서, 거기서 또 열심히 공부하고 스펙도 쌓아서 좋은 직업을 가지면 되요.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패기나 도전정신이 아닙니다. 끊임없이 자신의 노력을 지속시킬만한 에너지를 줄 수 있는 것들이 필요하죠. 이를테면 인내나 성찰, 감사, 만족 같은 거죠.
근데, 이런 안정적인 탄탄대로를 계속 걸어나갈 여건이 되는 학생들은 기껏해야 1% 정도고, 나머지 99%는 그게 안되죠. 그게 안된다는 걸 확인했을 때 사람은 몇 가지 선택지가 주어집니다.
하나는 나보다 더 잘난 사람, 더 좋은 환경에 있는 사람을 바라보는 겁니다. 그런 이들을 질투하거나 부러워 한 나머지 내 삶을 돌아보지 못하던지, 매사에 까칠한 태도로 일관하게 됩니다. 또는, 당장에 처한 자신의 상황은 무시한 채 마음만 앞서서 너무 무리하다가 스스로 무너지기도 합니다.
다른 하나는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이들을 바라보는 거죠. “그래, 나만 이러는게 아니다” 라는 생각에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이들과 동지의식, 동병상련의 감정을 가지며 힘들지만 외롭지 않다는 연대감으로 작금의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경우입니다. 시절이 태평성대라면 이런 선택도 나쁘지 않습니다. 사람이라는 게 성공이나 돈만 바라보고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거기에 집착하는 게 인생에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거,,, 조금 더 많이 겪어보고 살아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진리죠. 하지만, 지금은 태평성대가 아닙니다. 무리와 함께 섞여있다가는 그들과 함께 나락에 빠지는 걸 어쩌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언제든 올 수 있는게 작금의 시국이죠. 이럴 때 많은 무리에 섞여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안도하는 건 정말 어리석은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겨우 그런 미래를 얻어내기 위해서 지금 열심히 공부하는 건 아니라는 걸 생각해 볼 때입니다.
정말 극소수만이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자신”을 바라보고, 내 자신이 주어진 “상황”을 주시합니다. 이런 관점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목숨을 거는 각오로 열정과 도전정신을 불태우며 많은 사람들이 으례 택하고는 하는 안이한 길을 거부합니다. 그런 소수들 모두에게 행복한 미래가 보장되는 건 아니겠죠. 우리나라는 지독히도 패자에게 불친절한 사회입니다. 한 번 실패하면 다시 일어서기가 정말 힘든 사회라는 걸 모르는 분들이 거의 없을거에요. 그렇기 때문에 아무런 전략이나 제대로 된 전망도 없이 무작정 닥치는대로 저지르고 보는 유형의 도전정신은 망하기 십상입니다.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여기서 정말 중요한 점은 그런 전략이나 전망을 세우는 능력은이야 말로 타고나는 게 아니라 수많은 실패와 경험을 통해 형성된다는 점이죠.
어차피 하루하루의 판단착오가 절망적인 실패로 이어지는 전장과 같은 상황에서 열정과 도전정신을 불태우는게 힘들고 어렵다면 차라리 어렸을 때 부터 피나는 노력으로 공부(성적위주)를 열심히 해서 대학교를 들어가고, 스펙을 열심히 쌓아서 대기업 들어가는 길을 선택하는게 낫습니다. 그렇게 산다고 해서 뭐 대단한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어쨋던 자신의 능력을 통해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는 자부심만큼은 소중한 인생에 없어선 안될 자산이 될겁니다.
어차피 사람은 가진 환경이나 능력은 서로 불평등할 수 있어도 모두에게 평등하게 주어지는 것도 있습니다. 죽음 앞에서 모든 이가 평등하듯, 스스로 자만하거나 오만해 지는 올무에 빠지게 되면 어느 누구도 다 크게 넘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1% 안에 들어가는 성적으로 누구나 선망하는 탄탄대로를 가던 사람도 스스로 오만하고 자만하게 되면 언제든 나락으로 빠질 수 있고, 재벌가의 자식들이라 하더라도 언제든지 밑바닥인생으로전락하는게 가능합니다. 그 점에 있어서만큼은 평범한 사람들도 다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잘못된 길을 걸어가서 안좋은 상황에 빠졌다고 해서 고소해 할 필요도, 불쌍하다 동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오직 반면교사로 스스로 교훈을 삼으면 됩니다.
제 경우는 스스로 생각해 봐도 정말 운이 좋았던 케이스입니다. 고3때 선생님을 잘 만나서 성적이 꾸준히 올랐고, 좋은 부모를 만나 큰 걱정없이 공부에 올인할 수 있었으며, 시류를 잘 타서 좋은 대학에 운좋게 합격해서 순탄한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에 항상 무한한 감사를 느끼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좌절을 전혀 겪지 않은 건 아니지만, 이만하면 감사가 차고 넘치는 수준이라는 고백을 할 정도는 됩니다.
하지만, 제 아들들에게는 정말 미안한 마음이 드는게, 무슨 대단한 천재적인 두뇌를 물려준 것도 아니고, 열심히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준 것도 아니어서, 초등학생이지만 학교성적은 그리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고, 다른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여기에 더해 나라의 경제나 정치는 계속 막장을 향해 달려가고 있고, 그들의 미래는 결코 그들에게 친절할 것 같지 않더군요.
결국, 아들들은 저와는 다른 좀 더 험난한 길을 가야만 할 것 같다는 예감을 지울 수가 없겠더라구요.
그래서, 아들들을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도 그들의 시선이 다른 사람을 향해 있지 않고, 그들 자신을 향해 고정되어 있기를 염원합니다. 세상 전체를 바라보며 사회를 이끄는 지도자가 되는 큰 비젼을 가지기에는 너무 험난한 시련이 기다리고 있기에 그런 건 안바라고, 다만 비겁하게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며 핑계삼는 인생을 살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사실, 그거 하나 이루기도 정말 벅찬게 세상이더라구요.
뭐,,, 이것저것 다 떠나서, 스스로에게 비겁하고 초라해 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젊었을 때 도전정신을 가지는 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무언가 치열하게 하고 싶은 것들이 몇가지 있었음에도 주위 사람들이 다 가는 길을 무난히 따라간 저같은 인생도 겉으로 보기엔 만족스런 삶을 사는 거 같지만, 언제나 그 때 내가 하고 싶었던 걸 하고 그 길을 갔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회한이 그림자처럼 저를 괴롭히며 붙어다닙니다.
물론, 그 때 그 길을 갔었다면 지금은 또 후회하고 있었을지도 모르지요. 어쨋던 간에 후회없는 선택과, 그 결과가 안좋게 나오더라도 감사하고 후련해 하는 마음의 정리야 말로 인생을 사는 현명한 방법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글이 당초 주제에서 많이 벗어난 느낌이긴 한데, 어쨋던 중요한 건 지금 내가 열심히 생각하고 고민하고 시도하는 게 학생들에게는 필요하다고 봅니다. 제 자식들에게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계속계속 들려줄 요량이지만, 다른 젊은 분들에게도 “어디를 바라보며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중요성은 마찬가지로 강조하고 싶어서 난삽하지만 글을 써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