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돌아볼 때 주의해야 할 편견

일본이 진주만의 미군기지를 기습하기 전, 미국 측에서는 이를 예상할 수 있는 수많은 징후들을 포착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일본의 기습공격 몇 달 전 미국 통신병이 호놀룰루에 있는 일본군의 작전계획을 빼냈는데, 진주만을 다섯 구역으로 나누어 각 구역에 있는 미국군함들을 조사해 보고하라는 명령이었다고 합니다. 또한 통상적인 항로(전선이 인도네시아 방면이 될거라 예상)가 아닌 곳으로 항해하는 일부 일본함대를 놓쳤으며, 통신암호를 1년에 두 번 바꾸던 일본군이 갑자기 한 달에 두 번씩이나 바꾸었다고 합니다. 진주만 기습 전 날에는 일본 대사관 직원들이 수많은 자료를 허겁지겁 불태웠다는 사실을 뻔히 보고받고도, 해당 보고를 받은 지휘관들은 보고를 듣고 그냥 저녁을 먹으러 갔었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진주만에 접근하던 잠수함이 미국 구축함에 걸려 파괴되었고, 레이더를 통해 무수히 많은 비행기가 저잡근하고 있음을 확인했음에도 아군 폭격기가 예상보다 빨리 날아오는 걸로 착각하고 무시했다고 합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건 여기서 이런 역사의 기록을 접할 때 우리가 주의해야 하는 점이 있다는 겁니다. 이런 정황에서 진주만 기습을 예측하지 못한 건 정말 바보같은 일이라고 생각하거나, 사실은 미국이 일부러 그런 기습을 허용했다는 식의 음모론으로 빠지기 전에 스스로 편견에 빠져 있는지를 점검해 봐야 한다는 겁니다.

주어진 사례들만 읽다 보면 “누구라도 저 정도 징후면 기습을 예측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에 빠지기 쉽지만, 그런 생각은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판단이 될 수 없다는 겁니다. 다름아닌 사후확신 편견(hindsight bias)의 오류에 빠지게 된다는 거지요. 어떤 사건의 결말을 안 다음에 돌이켜 보면 그런 결말이 당연해 보이는 사람의 심리를 사후확신 편견이라고 합니다만, 의외로 이런 편견이 인간의 무의식에 뿌리깊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사실을 보자면, 진주만 뿐 아니라 다른 주요 군사기지들에서도 구역별로 나누어 보고하라는 명령이 있었으며, 항해 중인 적 선박을 놓치는 것도 언제나 있을 수 있었던 일상적인 사안이었고, 미국이 전쟁징후를 포착한 건 사실이었지만 진주만 말고도 공격할 만한 잠재목표는 무수히 많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역사의 기록은 그러한 현실적 고려점을 강조하며 기록하지 않습니다. 받아들이는 우리들 또한 이미 알고 있는 진주만 기습이라는 결과물에 비추어 그런 결과를 예상할 수 있는 변수들을 그렇지 않은 변수들 보다 훨씬 더 과대평가하기 쉽습니다.

한마디로, 정보가 주어지면 주어질 수록 판단을 하는 데 더 방해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이런 사후확신 편견은 과거를 지나치게 단순화 시킬 뿐 아니라, 자신이 가지고 있는 환상을 더욱 부풀려 줄 수 있기 때문에 위험합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실수에서 무언가를 배우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주식투자를 해서 돈을 벌었다면 자신의 통찰력이 빛을 발휘해서 “당연하게” 돈을 번 것으로 착각하게 만들며, 그러한 착각은 더 큰 착오와 손실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역사의 여러가지 단편적인 사건이나 사례들을 자신의 생각을 합리화 할 목적에 발췌하려는 경우에서도 해당 사안을 왜곡하거나 잘못된 판단에 빠지게 될 수 있습니다. 역사가 교훈이 아닌 함정으로 작용하게 될 수도 있는 겁니다. 사람들이 이런 편견에 취약한 이유는 내가 어떤 원칙을 깨닫고 있어서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자기최면에 빠지는 일이 자존감을 올려주고 스스로 기분좋게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를 바라볼 때에는 어느 한 쪽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역사 속 승자의 미덕만 바라보거나, 패자의 무능함만 바라봐서는 역사를 지나치게 단순화 시켜 이해할 수 있다는 거지요. 진주만 기습이 성공한 것은 일본이 준비를 많이 해서도, 미국의 당시 지휘부가 무능해서도 아닙니다. 일본도 진주만 기습 과정에서 삽질을 한 게 있었지만 기가 막히게 운이 좋아서 성공한 면이 있고, 미국 또한 우연이 겹치고 겹쳐서 당시 그런 허를 찔리게 된 측면이 다분히 존재한다는 거지요. 누가 더 삽질을 덜 했는가의 차이는 분명 존재하지만, 그 이상의 확실하고 절대적인 무언가를 찾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역사도 그렇고, 우리가 사는 세상의 현실도 그렇듯 역사에서 종종 필연이라는 단어로 포장되는 “통제가능함”은 신화와 허구의 영역 안에 속해있다는 걸 받아들일 수 있어야만 보이는 인류와 자기 자신 안에 있는 진실의 한 조각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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