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사이언스에서 칼럼을 쓰고 있는 “지뇽뇽”이라는 심리학 칼럼니스트가 쓴 글을 보면서 소감을 써봅니다.
잔혹한 폭력과 잔학상을 자행하는 IS나 숱한 테러리스트들을 보면 그들이 인면수심의 범죄자나 사이코패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 쉽습니다. 사실, 그렇게 이분법적으로 저놈들은 악인, 우리들은 정의 내지는 무고한 희생자,,, 이렇게 생각하는 것만큼 고민을 안해도 되는 맘편한 잣대는 없겠죠.
하지만, 대부분의 극단주의자나 테러리스트들은 강한 신념과 이타심으로 무장된 사람들이라는게 학자들의 연구결과라고 합니다.
테러리스트들의 공감능력은 일반인보다 훨씬 높으며, 그러한 공감능력이 집단적 피해의식에 연결될 때 폭력에 대한 경각심을 무너뜨리는 계기가 된다는 거지요. 공감능력과 주변 사람에 대한 애착이 크면 클수록 “우리가 남이가”라는 의식에 더해 제3자나 자기 집단에 위협이 될수 있는 이들에 대한 배타성이 커진다고 합니다.
또한 성격특성 중 원만함, 즉 사람들과의 관계와 조화를 중시하는 특성이 높으면 높을수록 위계질서에 더 의존적이고, 비인도적인 명령에 저항하지 않고 충성한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만함과 성실함이 큰 사람일수록 사람을 고문하라는 명령에 더 순종적이라는 결과도 나왔다고 하네요.
결국 사람들의 공감능력과 이타심이 세상을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들수 있는가는 질문에 최근의 연구들은 “그렇지 않다”라는 답을 내고 있습니다. 공감능력과 이타심은 이 세상을 향해서가 아니라 자기가 친한 사람들, 동질성을 느끼는 집단을 향해서 선택적이고 배타적으로 발동하는 능력이기 때문이랍니다. 세상을 정말로 좋게 만드는 방향으로 행동하고자 한다면 altruistic joy, 자기 스스로 이타적인 생각이나 행동을 하는데에서 오는 자기만족적인 쾌감에서 벗어사서 냉정하게 타인의 관점에서 그들을 어떻게 돕는게 좋은지를 고민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합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수많은 공동체나 온라인 커뮤니티들을 봐도 자기들만의 정체성이나 동질성에 국한되고 제한된 공감능력을 극대화 하면서 배타적인 태도를 확대재생산 해나가는 기제들을 많이 목격하고는 합니다. 예를 하나씩 들면 그런 각론에서 소모적인 찬반 논박으로 주제와는 한참 벗어난 이야기들만 나올거 같아 사례들을 들기는 그렇고, 좀 더 “공동체의식”이라는 감정에서 한 켠 벗어나서 자기를 공동체의 일원이 아닌 좀 더 객관적인 모습으로 바라보는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교육시스템이 바뀌게 된다면 테러리즘에 대한 시각이나 그 대처가 한층 더 효과적이고 올바른 방향으로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품어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