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인척 하는데 전문가가 아닌 이들

안데르스 에릭슨과 로버트 폴이 쓴 “1만시간의 재발견”이라는 책을 읽고 있는 중인데, 나눌만한 내용이 있어서 글을 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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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전문가라고 하면 특정한 분야에서 초보자나 고만고만한 이들에 비해 매우 뛰어난 성취도를 가지고 있으면서 그런 성취도에 근거해서 권위와 명성, 그리고 신뢰를 얻는 이들을 말합니다.

하지만, 분야에 따라서는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이 전문가 행세를 하다가 실체가 드러나는 경우가 많은데, 왜 이런 일이 생기냐면, 정확한 성취도를 측정할 객관적인 방법이나, 대강이라도 많은 이들이 객관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척도가 존재하기 어려울 경우 사람들의 입소문이나 주관적인 평가들이 쌓여서 전문가가 아닌 좆문가가 횡행할 수 있는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에서 전문가가 제대로 전문가로 인정받고 대접받는 분야라는게 생각보다 많지 않을수 있습니다. 수행능력을 측정할 객관적인 방법이 있을 뿐 아니라, 경쟁이 치열해서 많은 사람들이 기술을 향상시키려는 열의가 있고, 정교한 훈련기법이 있어서 계속해서 전체적인 경지가 꾸준히 발달하는 분야들에서는 가짜 전문가라는게 발붙히기 어렵습니다. 대표적인게 체육계나 예능계일 겁니다.

하지만, 제대로 된 교육과정과 성취도를 평가할 수 있는 방법론이 확립되지 않은 분야에서는 어김없이 전문가가 아닌 좆문가가 활개를 칠 수 밖에 없습니다. 대표적인 분야가 와인전문가라는 사람들입니다.

2008년 Journal of Wine Economics라는 와인업계 잡지에서 발표된 캘리포니아에서 와인양조장을 운영하는 로버트 호지슨(Robert Hodgson)씨가 실행한 실험은 와인전문가라는 단어가 실재할 수 없는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2005년에서 2008년까지 4년동안 30가지의 와인을 업계의 전문가로 구성된 심사위원들이 반복해서 시음을 해보고 점수를 매기게 했는데, 대부분의 심사위원들은 똑같은 와인을 제각각 다른 점수로 판정했다고 합니다. 문제는 그런 오차의 폭이 심각하게 컸을뿐 아니라 일관성이 전혀 없었다는 겁니다. 한 해에는 어떤 심사위원이 편차가 심한 감정을 했다면, 그 다음해에는 다른 심사위원의 감정이 편차가 심하고,,, 결국 심사위원간으로나 연도별로나 어떤 일관성도 없었다는 거지요.

결국 전문가라고 자처하는 이들이 와인에 이제 막 입문한 초보자들과 비교해서 나은거라곤 어떤어떤 와인이 있고, 그런 와인들의 금방 눈에 띄는 뚜렷한 특징에 대한 지식과 경험 정도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런 사람들은 그냥 경험이 많은거지 전문적인 권위를 가진 전문가라고 말하면 안되는 거지요.

이렇게 전문가로서의 실력우위가 전혀 인정받지 못하는 분야가 또 있는데, 심리치료 분야입니다. 심리치료를 하는데 있어서 수십년 경력을 가지고 있는 이른바 대가로 불리우는 정신과의사나 심리학자들도 심리치료에 대해 최소한의 훈련만 받은 비전문가보다 치료효과에서 나은게 없었다는 연구결과는 많은 이들을 당혹하게 하지만, 분명한 사실입니다.

주식을 고르는 금융전문가의 실적도 초보자나 우연한 확률(원숭이가 다트를 던져서 고름)보다 전혀 나을게 없다는 것도 유명한 이야기이고, 수십년 경력의 의사들 객관적인 척도(진단율)로는 불과 몇 년의 진료경력 밖에 없는 젊은 의사보다 못한 경우가 있었다는 연구결과도 일반인의 입장에선 충격적일겁니다. 사실, 젊은 의사들은 졸업한지 얼마 안되었기 때문에 최신 진단기법이나 질병에 대한 지식등이 앞서 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흔하게 볼 수 있는 상황만 수십년을 접해온 의사들이라면 정말 꾸준하게 공부하고 노력해오지 않는 이상 지식이나 진단 프로토콜 측면에서 젊은 의사들을 이기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결국, 우리가 의지하고 싶고 또 의지해야 하는 진짜 전문가를 찾기 위해선 많이 주의해야만 합니다. 전문가의 전문성을 판단할 수 있는 객관적인 척도를 찾아서 검증하는게 제일 확실하지만, 그런 객관적인 검증이 어렵다면 개개인의 실적이나 생산물, 또는 동료들의 평가를 유의해서 들어보는게 필요합니다. 물론, 그 실적이라는 것도 공정하게 비교하고 평가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고 동료들의 평가 자체부터 정확한 잣대가 존재하지 않아 무의미한 그런 분야이기 때문에 진흙탕 속의 진주를 가려서 보존하지 못하고 가짜 전문가들만 설치는 판이 되버린 경우라면 그렇게 판단하고 가려내려는 시도 자체가 의미가 없을수도 있겠죠.

역으로 생각하면 그렇기 때문에 특정한 분야가 발전을 못하고 정체하는 경우, 이를 타개할 특단의 조치는 진짜 전문가와 가짜 전문가를 가려내어 가짜를 배제할 수 있는 공정한 평가시스템을 개발하고 가짜 전문가를 가차없이 솎아내는 자정작용이 발전을 위해 가장 필요하겠죠. 해당 분야가 설령 객관적인 평가잣대를 들이댈 수 없다 하더라도, 적어도 공정하게 자질을 평가할 수 있는 잣대를 개발하는 건 가능할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눈에 보이는 능력을 평가할 수 없다면 자질이라도 평가해서 꾸준히 육성하고 자질부족인 이를 배제하다 보면 어느샌가 그 분야에서 혁신의 분위기가 무르익게 될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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