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과생은 읽어 내려가기 힘든 책 “창업자 정신”

요즘 서점에서 많이 밀고 있는 경영관련서적 중 하나가 크리스 주크와 제임스 엘런이 지은 “창업자 정신”이라는 책입니다. 출판사를 못보고 책을 산게 좀 아쉬운데, 출판사는 한국경제신문입니다.

책의 주된 내용은 기업의 흥망성쇠에 창업자정신이 매우 중요한 요소이며, 이 창업자 정신은 반역성(다르게 말하면 혁명적), 현장중시, 주인의식이라는 세가지 풍토로 나뉘어 진다는 겁니다. 이 세가지 요소는 또한 각각 몇가지 요소로 나누어서 이런 것들이 충만한 첫 출발의 시점에선 기업을 크게 성장시키지만, 규모가 커지면서 조직의 내부적인 요인에 의해 이런 미덕들이 사라지게 되면서 상당수 기업들이 결국에는 허우적거리는 관료조직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경고입니다.

문제는, 이 책의 전반부를 읽어내려가는 내내 불편함과 거북함을 계속 느끼게 된다는 점인데, 책이 항상 자기가 말하고 싶은 내용을 말하고, 거기에 근거라고 제시하는 것들이라고는 편견(bias)을 어떻게 제거했는지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적시하지 않은 일방적인 통계수치와, 수많은 기업들의 단편적인 사례들 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면, 창업자 기업의 총주주 수익율(TSR)이 대조군, 즉 창업자가 자리를 내주고 월급장이 사장이 경영하는 기업의 총주주 수익율의 3.1배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런데, 일단 창업자 기업이라는 것은 당장 창업자가 아무런 토대도 없는 데에서 기업을 세워서 성공적으로 경영을 지속하고 있는 상황에서만 기업이 존속하고 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당연히 그런 기업은 안정성보다도 성장성이 더 큰 기업들이 대부분일 것이고, 규모와는 상관없이 계산하는 총주주수익율은 이미 성숙한 상태의 규모와 사업상황일 가능성이 많은 오래되된 기업보다 높은게 당연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샘플링의 변수를 어떻게 고려해서 편견을 제거했다는 것인지에 대한 설명은 전혀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보기 좋게 그려주는 그래프만 보고 그냥 믿으라고 말하는 것은 이과생에게는 너무 가혹하고 불친절한 글쓰기 전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또한, 어찌 보면 추상적이고, 주관과 편견이 개입될 여지가 다분한 창업자정신의 여러가지 요소들을 데이터한 과정이 단순히 “설문”에 의존해다는 것도 불안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저자는 이런 설문에 의존해서 매겨진 점수가 시간경과에 따른 추이를 통해 의며를 부여하려 하고 있지만, 사실 기업이 잘 나가는 동안에 나올 설문과 그 기업이 벽에 부딪혔거나 추락하고 있을 때 나올 설문은 굳이 창업자정신이 객관적으로 실존하는가와는 상관없이 당연히 그때그때 분위기에 의해 달라질 수 있다는 것도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불편한 부분은 수많은 기업들의 사례를 단편적으로 들고 와서 이런 기업은 이런 문제를 이렇게 극복했다라던지, 창업자의 일화(당연히 해당 기업에 의해 윤색되고 미화되었을)들을 언급하면서 이런 창업자정신의 이러이러한 요소들이 충만해서 성공을 했다던지, 이런 논증을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거의 매 페이지마다 하나나 둘 이상의 사례가 언급되는데, 이런 사례 수집능력을 과시하는 건 성공적인지 모르지만, 기업의 성패라는 건 그렇게 한두가지 요소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게 아닙니다.

급변하는 시장상황에 따라 대박을 내거나 쪽박을 차는 게 언제든지 가능한 상황에서 외부적인 요소가 아닌 내부적 문제가 정말로 기업의 정체와 추락에 결정적인 변수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제대로 된(창업자정신을 향유한) 기업은 어떤 환경변화에서도 기대 이상의 적응력과 생존력을 보장받을 수 있다”라는 전제가 먼저 입증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제시된 수많은 사례들이 과연 그런 전제가 충족되었는지는 고사하고, 그런 사례들 자체가 사실이 아니거나 부정확한 것들은 아니었는지 조차 정확히 확인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면 애초에 저자들이 말하고자 하는 그럴싸한 메시지 자체의 신빙성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 읽는 내내 불편함을 피할 수 없게 됩니다.

뭐, 어찌 되었든 누가 봐도 성공적이라고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창업자의 성공적인 전략이나 쓰러져 가는 기업들을 살린 사례들에서 반역성(혁명성), 현장중시, 주인의식이라는 알기 쉬운 키워드를 끌어낸 것은 분명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이고, 책을 읽어볼만한 가치를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중에서도 반역성(혁명성)이라는 개념을 “제대로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고객이나 시장참여자를 대신해 전쟁을 수행하는 정신”이라 정의하는 부분은 이제까지의 미심쩍었던 근거능력으로 인해 객관적으로 납득은 안될지 몰라도 심정적으로 납득하고 공감가는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혁명성은 해당되는 고객이나 시장참여자를 충분히 만족시킬 정도로 규모가 성장하고 나면 자연스레 희석되는게 순리이지 무슨 기업 내부적인 문제나 관료주의, 난맥상으로 파탄나는 게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수많은 기업이 정체에 빠지거나 추락하는 이유를 너무 의도적으로 내부적인 문제에서 찾으려 애쓰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결국, 과학으로서 창업자정신의 역할을 확인하려는 시도 보다는, 이 책을 기업단위로 구입하는데 결정권을 가진 경영진들에게 듣기 좋은 조문들을 반복적으로 주입시키는 신앙서적의 일면을 엿보게 된다는 게 이과생으로서 이 책을 읽는 것이 내내 불편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냥 여러가지 교훈이 되는 사례들을 부담없이 접하면서 실제 현장에서 곧바로 인용해서 적용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소득이랄 수 있겠습니다.

어차피 개별적인 사안으로 보면 당연하다면 당연한 조직의 효율성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안에 들어있기 때문에 굳이 따지자면 틀린 말은 없는 책이고, 교훈이 되는 좋은 사례들이 많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런 이야기를 가장 귀담아 들어야 하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최고경영자나 오너일텐데 구태여 경영에 직접 책임을 지고 참여하지 않는 일반 직원이나 중간간부들이 이 책을 읽는 건 어떤 가치가 있을지,,, 저는 잘 모르겠더군요.

차라리 기업의 성패를 바라보는 날카로운 통찰을 쉽게 쓴 책이라면 피터 틸의 “제로 투 원”을 권합니다. 물론, 이 책의 저자도 저와 같이 이 “제로 투 원”을 읽어볼 것을 권하고 있더군요. 이 외에도 에릭 라이스의 “the lean startup”이나 노암 와서먼의 “창업자의 딜레마”라는 책도 권하고 있으니 이 책들을 먼저 읽어보는게 훨씬 마음이 편하고 상쾌하리라 봅니다.

요즘에는 책을 읽으면서 단순히 읽고 기억하는게 아니라 비평하고 비판하면서 읽는 연습을 한창 하고 있는데, 요즘 책들은 정말 이런 작업이 필수적이지 않은가 합니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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