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의 역사”를 다시 읽고 있습니다.

이 “전략의 역사”라는 책이 분량으로 보나, 난이도로 보나, 들어있는 내용의 방대함으로 보나 한 번 읽고 말 책이 아니라서 요즘 두번째 읽어내려가고 있습니다.

정말 삼국지 10번 읽듯이 진짜 10번은 읽어봐야 할 책인거 같아요. 지금은 1권에서 게릴라전략의 발전과, 그 대응으로서 진압전략의 성립에 대한 부분을 읽고 있는데, 생각나는게 있어서 글을 써봅니다.

마오쩌둥은 쏘련에서 트로츠키나 레닌이 공산혁명을 위해 싸우던 상황보다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 공산혁명을 시작합니다. 게다가 처음에는 당을 지도하던 위치에 있지도 않았죠. 중국 공산당은 처음에 러시아에서도 그랬던것처럼 프롤레타리아, 즉 도시 노동자계급을 중심으로 혁명을 일으키면 마르크스가 과학이라고 주장한 것처럼 당연하게 혁명이 성공할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기반이 없고 보급이 없으니 처절하게 깨지고 대도시의 공산당조직은 와해되고 시골로 쫓겨납니다.

그렇게 쫓겨나는 동안 수많은 고생을 하고 1만키로라는 먼 거리를 돌고돌아서 겨우 도망치는데 성공하는데, 그걸 지금의 중국공산당은 “대장정”이라고 미화하지만, 사실은 그냥 가는곳 마다 얻어터지고 죽을고비를 넘기며 고생을 자처한 개삽질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애초에 국민당 입장에서는 총통인 장제스의 아들이 스탈린에 의해 인질로 잡혀 있는 바람에 쫓겨나는 중국공산당을 끝까지 추적해서 말살하기는 커녕, 그냥 적당히 쫓는 시늉만 하며 도망가게 놔두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그렇게 개삽질을 한 끝에 살아남은 군대가 1만명에 불과했지만, 일본군의 침략에 2차 국공합작이 성사되자 모택동은 그 와중에서도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합니다. 중국공산당이 잘나서가 아니라, “외부요건”에 의해 일본군은 언젠가 패퇴할 것이기 때문에 주적은 일본군이 아니라 국민당이고, 국민당의 군대를 상대하는게 아니라 민중의 지지라는 뿌리를 공략해야 한다고 생각한 겁니다. 물론, 그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제일 중요한 건 “시간”이고, 그 시간동안 “생존”하는 거였죠.

그래서 가장 중요한 강령은 절대로 지지 않는 전투를 할것, 어떤 일이 있어도 지지기반인 민중에 반감을 초래할 행동을 하지 않을 것 두가지였습니다. 지지 않는 전투를 한다는 건 결국 전면전을 피하라는 거지요. 심지어 휘하 장군이 전술을 잘 써서 일본군을 크게 이기고 돌아오자, 그 장군을 격렬하게 질책하고 비판했다고 하죠.

어쨋던, 모택동에게 가장 중요한 과업은 지지 않고 살아남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골 농민을 회유하고 교육하며 동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을 벌며 “외부요건”, 즉 미국의 참전과 일본의 패망, 국민당이 일제와 싸우면서 처첨한 손실을 입는 동안 민중의 지지기반을 상실해 가는 그런 조건들이 맞추어져 가며 어느샌가 중국공산당은 국민당을 압도하는 조건을 갖춰가게 된겁니다.

반면,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는 공산혁명의 바람을 미국과 서구열강은 어떻게 대처했는가, 왜 맨 처음에는 그렇게 반란(또는 혁명)의 저지에 실패했고, 거기에서 어떤 교훈을 얻어서 대응책을 마련해 공산혁명을 저지하는데 성공할 수 있었는가에 대한 이야기도 무척 흥미롭습니다. 긴 이야기를 짧게 줄이면 민중이 게릴라들로 부터 보복당하지 않을거라는 믿음을 줄 수 있고, 공산당이 주는 비젼보다도 더 실질적인 미래상을 제시해 줄 수 있다면 아무런 어려움 없이 반란을 저지할 수 있다는 겁니다. 곳곳에서 일어나는 공산혁명이라는 게 사실은 해당지역 민중들이 정말로 공산주의를 원해서 벌이는게 아니라, 해당 지역의 압제나 부패, 경제문제 같은 지역적이고 현실적인 동기 때문에 반란을 일으킨다는 걸 확인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단, 이러한 정책을 해당 지역 전체에 동시적으로 실시하는 건 불가능하므로, 역량이 허락하는 지역에서 부터 시작해서 그 지역을 기지삼아 계속 기반을 쌓아가는 방식이 가장 성공적이었다는 겁니다.

결국, 장비나 조직 물자등이 유리한 쪽은 그러한 유리함을 확보하고 구축하는 전략이 필요하고, 물적 인적 지원이 딸리는 불리한 쪽은 그러한 불리한 요소가 굳이 필요하지 않은 전장에서 때를 기다리고 생존을 추구하면서 기반을 구축해나가는 전략이 필수적인 겁니다.

하지만, 이렇게 서로 다른 방식으로 열세인 세력이 때를 기다리고, 우세인 세력이 안심하고 군대를 운용할 수 있는 기반을 넓혀나가는 것들은 모두 최종적인 목표를 위한 징검다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잊으면 안됩니다. 모택동도 그의 트레이드마크같던 게릴라전술은 수세에 몰렸을 때에만 주로 활용했고, 본격적으로 국민당을 본토에서 축출하는 결정적인 전투에서는 통상의 정규군 운용을 선호했습니다. 혁명세력을 진압하는 쪽에서도 결국은 혁명세력의 보급과 지지기반이 약화되어 운신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포위섬멸전을 결코 두려워하지 않았고 말입니다.

어쨋던, 결국에는 결정적인 한 번, 또는 몇번의 결전이 없이는 원하는 목표를 이루는 건 쉽지 않다는 거지요. 그러한 결전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전투들을 다 졌어도, 그 결전을 이길 수 있는 기반을 이루는 것만 성공한다면 결국 전쟁을 이기고 최종목표를 달성하는 게 가능하다는 겁니다. 무패의 나폴레옹이 그렇게 러시아에서 수많은 전투를 죄다 이겼지만, 흩어졌던 러시아 군대를 섬멸시키는 것보다 모스크바를 점령하면 러시아가 항복하겠지 하는 잘못된 판단 단 한 번으로 결국 처참하게 패배한 것처럼, 결정적인 단 한 번의 국면을 위해 승패와는 상관없이 꾸준히 물밑에서 준비할 줄 아는 전략가가 진짜 위대한 전략가일겁니다.

그러한 전략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문제의 핵심을 꿰뚫는 안목과, 처음에 잘못 생각했던 오류나 예상하지 못했던 돌발변수들에 즉각적으로 대응하는 순발력과 유연성, 애초의 핵심목표를 위해 소모될 수많은 자원과 인내력을 바칠 결의와 열정이 필요합니다. 즉 사람의 마음이겠지요. 이건 비단 전쟁 전략에서만 통용되는 상식이 아닙니다. 어떤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결정적으로 성공할 수 밖에 없는 수단이 있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나누어서 다르게 대처할 수 있어야 하고, 내가 정보력이나 자금력에 열세에 있는 상황에서는 절대 지지 않고 생존하면서 “외부요건”이 성숙될 때까지 기다리는 인내심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하고, 지금이 승부를 걸 때라는 결론이 몇 번을 검증해도 근거가 확실하다면 망설이지 말아야 할겁니다.

합리적인 근거가 없이 욕망이나 두려움으로 의미없는 승부를 계속하는 건 클라우제비츠가 역설한 마찰과 소모의 연장선으로 봐야 합니다. 왜냐하면 정말 결정적인 국면에서 모든게 소모되어 내가 쓸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는 절망적인 상황을 연출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소소한 국면에서 한두번 크게 이겼을 때 기뻐하기는 커녕, 전략에 역행했다며 크게 질책했던 모택동이 결코 쪼잔한게 아니라는 겁니다.

만약 제가 직장을 그만두고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 온다면, 전략의 역사에서 보여주는 이러한 지혜에 벗어나지 않는 길을 겊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사업이 되었건, 투자가 되었건, 직장생활이나 공부가 되었건 결국은 올바로 핵심을 짚고 길게 보면서 오래 참는 사람이 이기는 건 다 똑같은거라 생각해서 긴 글을 써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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