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음파영상 관련 블로그를 만들게 된 이유

최근 몸이 계속 안좋은데다 계속되는 폭설로 내원환자가 뚝 떨어져서 케이스로 낼만한 영상도 없어서 글을 며칠간 못올렸는데, 그렇다고 잠수타기는 좀 그렇고 왜 초음파영상 관련 블로그를 시작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한번 글을 써보겠습니다.

초음파영상진단은 이제는 영상의학과 전문의만의 고유한 영역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내과나 외과 뿐 아니라, 이비인후과나 정형외과에서도 각자의 영역에서 자신들이 스스로 초음파영상진단을 시도하고, 탐촉자를 잡는 임상의사분들이 요즘은 굉장히 많아졌습니다.

그 뿐 아닙니다. 개인적으로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영상기사분들 중에서도 영상의 대신 초음파진료를 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초음파진료를 시도하는 분들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레 저한테 초음파영상 관련 조언을 구하는 분들의 연락이 잦은데, 이런 분들 중에서 가장 많은 유형의 질문이 “초음파 공부하는데 괜찮은 책 좀 소개해달라”는 거였습니다.

그렇지만, 초음파진료는 “책”으로 공부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그분들에게 어떤 책도 소개해주지 않았습니다. 초음파를 “공부”하는데 “책”이 필요하니 좋은 책을 소개해 달라는 말들을 들으면서, 최근 읽고 있는 책이 한권 생각나더군요. 서울대 공대에서 발간한 “축적의 시간”이라는 책이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지적하면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배우는 학문이라는 것은 기본적인 교양만 있다면 누구라도 이를 습득하고 접근할 수 있는 정보체계입니다. 이공계 어디라도 그렇듯 의학계 또한 적절한 책 한권만 통달하거나 잘 정리될 리뷰논문 몇 편으로도 해당 분야의 전문가와 대화와 소통이 가능한게 학문, 정확히는 자연과학의 위대함 중 하나입니다. 의학도 자연과학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기에, 정확한 학문적 지침만 있으면 어렵지 않게 환자를 진료할 수 있어야 하는게 맞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환자를 보는 것하고 “최선”을 다해 환자를 진료하는 건 완전히 다른 개념입니다. 의사가, 또는 초음파 탐촉자를 대는 의료기사가 환자에게 초음파진료를 함에 있어 최선을 다했다고 환자에게 자신있게 말하고, 또 그것을 입증하는 것은 책 한권, 리뷰논문 몇편을 숙지하는 것만 가지고는 부족합니다. 그걸 단언할 수 있는게, 제가 지난 20년동안 초음파진료를 하면서 절실히 느꼈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서, “책 한권 소개해달라”고 제게 물어보는 분들은 대부분 “간단하고 알기쉬운” 책을 주문하십니다. 그렇게 간단하고 알기쉬운 책을 찾는다는 말 속에는, 그렇게 핵심적인 원리나 기본적인 방법론을 모방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자신들이 납득할 수 있는 일정수준의 초음파검사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자신감이 숨어있는겁니다. 그런 자신감의 이면에는 조급함도 같이 포함되어있기도 하구요. 당장 초음파진료를 해야 하는 상황에 부응해야 하니 필요 이상의 시간과 열정을 투자할 여유가 없다는 것이죠.

사실, 간초음파면 간초음파, 관절이나 갑상선 초음파, 경동맥 초음파,,, 뭐랄것 없이 각각의 초음파영상진단을 “어떻게 하는거냐” 하는 기본은 굳이 책을 찾아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제가 옆에 붙어서 가르쳐주는 경우라면 솔직히 두세시간이면 충분합니다. 진심으로 말하건데, “어떻게 하는지”를 알려고 굳이 책을 살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저도 초음파 시작할 때 책 한권도 안보고 초음파를 배웠습니다. 선배 전공의가 한시간 알려주고, 제가 하는거 며칠동안 뒤에서 보면서 점검하는게 다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초음파 경력을 쌓아온지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초음파진료를 어렵고 조심스러워 하면서 고민을 계속 거듭하는 건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상정되지 않았던 상황에서)어떻게 대처하느냐”의 문제가 결코 간단한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책에 전혀 나오지 않는 수많은 상황들에서 환자에게 손해나 불편을 끼치지 않고 누구 앞에서도 나는 최선을 다했다고 말하는 것이, 환자에게 미안함을 품지 않게 하고, 큰 사고나 과실로 이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혼자서 어떤 책이나 논문을 찾으면서 할 수 있는게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정규모 이상의 “수련병원”에서 집중적으로 훈련을 받으면서 초음파를 시작하는게 좋고, 그만큼의 기본적인 경험과 지식, 고민해온 시간의 축적을 인증하는 “자격증”이 가치가 있는겁니다.

우리나라가 고도성장을 이룩해서 선진국에 근접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일단 시도 해보는것”, “일단 모방해 보는것”에 대해 적극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패스트팔로워 전략이겠지요. 의료영역에서는 이렇게 패스트팔로워전략을 쓰기 쉬운게 초음파검사일겁니다. 초음파진료만큼 일단 해보고 부딪히면서 해나가는게 쉬운 분야도 의료쪽에선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만큼 치명적인 부작용이나 의료사고의 위험성이 다른 시술이나 검사에 비해 적다는 건 분명 “일단 시작해 보기”를 하는데 좋은 조건인것은 분명합니다.

반면, 초음파검사만큼 시술하는 술자의 경험과 능력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operator dependancy가 큰 시술도 드물다는 점 또한 분명한 현실입니다. 검사자의 경험과 고민, 지식의 축적에 따라 그 전까지는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던 고민을 하고, 전혀 느끼지 못했던 부분에 대한 호시김을 느끼고, 전혀 가지지 못했던 영역에서 책임감을 느끼게 되는, 그런 “축적”의 정도에 따라 검사의 질이 크게 달라지는 검사도 없다는게 지난 20년 넘는 초음파 경력동안 절실히 느끼던 바입니다.

그래서, 책 한권, 관련 리뷰논문 몇 편 보다도, 날마다 초음파를 하면서 느끼는 고민이나 궁금함, 생각해 보지 못했던 창의적인 발상과 그에 대한 엄정한 검증이 더 중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이렇게 블로그에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초음파 진단에 대해 뭔가 두려움과 막막함을 느끼는 분들이나, 결단력을 가지고 초음파진료를 시작하시면서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를 고민하시는 분들께 “저도 이렇게 날마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라는 걸 보여주는 것도 의미가 있을거라고 생각하고 그런 고민의 흔적들을 간간히 올려보고 있는거지요.

무엇보다, 이렇게 무언가를 올리고, 제시하는 것만으로도 제 스스로에게 큰 공부가 되기 때문에, 부족한 것을 항상 자각하고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기 위한 제 이기적인 목적으로도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원래 초음파영상진단이라는 매우 좁디좁은 영역에 관심가질만한 분도 제한적이고, 홍보도 잘 안한지라 방문자분들도 너무 적지만, 그 분들에게라도 더 유익하고 재미있는 컨텐츠를 만들수 있으면 좋겠네요. 그러기 위해서라도 꾸준히 잡스렇고 볼품 없는 글이라도 빼지않고 올리는 습관을 구축해야겠기에 이런 뻘글을 올리게 된 점은 긴 글 읽느라 지루하셨을 모든 분들의 양해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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