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난 정권에서 위증한 사람들을 이해하고 동정합니다.

당시 제가 그 사람들 입장이라 해도 위증을 안했을까,,, 저도 자신이 없어요.

나와 내 가족의 먹고사니즘이 달려있고, 나와 같이 일하는 동료들의 안위가 걸려있는 일인데, 그깟 일신의 도덕성따위 뭐 그리 소중한 문제일까 하는 논리,,, 현실에서는 놀라울정도로 널리 통용되는 논리입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나와 같이 일하는 동료들”, “내 직장”, “내 조직”을 위해 거짓말하는게 정당화될 수 있다는 논리는 쉽게 부정되기 어려운게 우리나라의 현실이죠.

그런 현실의 무게를 부정하고 덮어놓고 도덕의 문제로만 접근하는 분들 보면, 아직 학교에서 교과서로 배운 시민교육의 가치관 하나에만 익숙해있는 분들이 대부분일거에요. 사회에서, 직장에서 다년간 근무하면서 노출되는 분위기와 정서는 학교에서만 배워온 올곧기만 한 그것과는 또다른 가치관이 있다는 걸 몸으로 각인시켜주거든요. 그런 분위기를 딱 한줄로 표현하면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 이겠죠.

근데, 우리나라가 언제부터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명제가 쇠태하기 시작했을지 생각해봅시다. 당장 얼마 안되는 97년 imf이전만 해도 우리나라 대부분 기업은 대기업, 중소기업 할것없이 세금 낼 때 쓰는 장부, 진짜 장부를 따로 쓰는 게 당연한 관행처럼 통용되었죠. 이른바 회계장부에 분칠을 하는 분식회계가 당연했었다는 겁니다. 그 때 기업에 다니던 직장인들은은 하나같이 법을 지키는 것보다 자기가 다니는 직장과 조직의 안위가 훨씬 중요하다는 명제를 당연하고 보편적인 가치라고 생각했던 거지요. 가장 정직하고 합리적었어야 할 기업이 그랬는데, 기업보다도 더 썩었다고 욕을 먹던 공직사회, 정치시스템, 군대 시스템은 더 말할 필요가 없겠죠.

그런 시대에서 불과 20년밖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한 번 자기 인생에서 이런 가치관이 몸에 베인 사람들이 훨씬 더 정직하고 시민사회적 가치관에 가까운 새 가치관에 적응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패러다임이 바뀌는 건 구성원들이 새로운 패러다임을 받아들여서 바뀌는게 아니라 예전 패러다임에 물들어있던 사람들이 나이를 먹어 죽어 없어지면서 바뀌는 거지요. imf 이전에 직장을 다니던 사람들이 여전히 직장을 다니고 있을뿐 아니라, 조직의 윗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작금의 시대에서 조직논리가 법논리를 우선시하기를 기대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정말 어려운게 맞습니다.

지난 정권에서 위증을 했던 사람들이 자기 사리사욕만 생각하고 위증을 버젓이 한 사이코패스인게 아니에요. 오히려, 그런 위증으로 인해 욕을 먹고 법적 심판을 받게 될 이들에게서 자신과 같다는 동질성을 찾으며 불쌍하다 동정하고 응원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우리나라에선 결코 소수가 아닐거라 생각합니다. 심지어는 저 자신도 마음 한부분에선 일말의 동질성을 느끼는게 사실이에요.

결국, 우리 사회가 앞으로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런 나이먹은 세대(저를 포함)들의 그런 정서를 극복하는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그런 정서와 가치관이 구시대 패러다임에 불과하다는 걸 널리 퍼트리기 위해서는 과거의 현실이 이제는 더이상 현실이 아니라는 걸 계속 확인시키는게 필요합니다. 구시대의 가치관에 빠져있는 구성원들을 납득시키기 위해서는 예전 패러다임이 이제는 패러다임이 바뀌었다는 걸 보여주고 납득시켜주는게 합리적이지, 예전 가치관이 악하고 그런 가치관을 버리지 못하고 체화된 이들이 악하다고 비난하는 건 해법이 아닙니다.

결국, 지난 정권에서 거짓증언을 한 사람들을 윤리나 품성 같은 개인적 자질의 문제로 접근해서 욕하고 비아냥대는 것보다는 그냥 “이해하지만, 세상이 바뀌었으니 일벌백계해야 새 시대를 열수 있다”는 시대정신과 패러다임의 문제로 접근해서 논의하는게 훨씬 생산적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지난 세대 주먹보다 법이 가까웠던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갔던 분들의 입장에서도 자신이 살았던 세대의 가치관이 비열하고 추잡했다고 비난받기 보다는 지금의 시대에서는 더이상 통용되지 않을 뿐 자신들의 인생이 비난받을 이유는 없다고 여겨지는 것이 훨씬 새로운 패러다임의 도래를 동의하게 만드는 전략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나이든 사람들은 더이상 우리 젊은 이들이 주역이 될 현실에는 필요도 없고, 상대하기도 싫을 정도로 혐오감을 느끼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식의 방법론적인 고민도 필요가 없겠죠. 다만, 그런 입장이 대세가 되어서 세대갈등을 부추기게 될 때 끊임없이 반동과 주동이 뒤섞여 반전을 거듭하는 현실에서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될지는 누구도 예상하기 어렵겠지요.

제 개인적으로는 정말 운이 좋아서 조직논리에 개인의 소신을 희생하는게 당연했던 제 아버지와는 달리 개인의 소신과 가치관, 윤리의식을 그래도 충분히 관철할 수 있는 직장생활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거야 저 혼자 그럴 뿐이지 직장 전체로 보면 여전히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명제가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는 걸 자주 봅니다. 그게 우리나라의 현주소고 현실이에요. 정치적으로 봐도 정권심판이 이루어졌을뿐 의회에서 새누리 세력은 여전히 막강합니다. 다가오는 지방선거도 마냥 낙관적이라고 생각되지는 않구요.

오히려, 지난 정권에서 위증했던 자들이 언론에 오르내리고 관심의 대상이 되는 지금이 어떻게 말하고 행동할 것인지에 대해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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