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방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월급장이 의사입니다. 근무한지 꽤 되는데, 지역의료체제에 대한 글이 있어서 근무하는 사람 입장에서 장단점을 써보면 읽는 분들에게도 도움이 될거 같아서 올려봅니다.
-장점-
1. 가깝다. 싸다. 빠르다.
제일 큰 장점이죠. 대도시나 서울보다 고가 의료장비 이용료가 월등히 쌉니다. ct, mri같은 장비들도 반값도 안되는 경우가 많죠. 실제 제가 근무하고 있는 병원의 영상검사비는 서울의 대학병원급 검사비에 비해 3분의1도 안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ct, mri가 장비가 떨어지느냐,,, 요즘엔 그러기가 어려워요. 종합병원에서 운용하는 영상장비들은 모두 정기적으로 영상질관리(quality control)에 통과를 해야만 운용이 가능합니다. 해가 가면 갈수록 통과기준이 더 엄격해지고 있구요. 그걸 통과하는 제일 확실한 방법은 새로 장비를 사는겁니다. 장비를 파는 회사들도 여기에 부응해서 제품가격은 싸게 하는 대신 유지점검비용에서 수익을 보존하고 있습니다. 이러면 계속해서 장비를 오래 가지고 있는다고 해서 비용차이가 그렇게 크게 나지를 않습니다. 당연히 대학병원급이던 중소병원이던 장비의 턴오버기간은 크게 차이가 나지도 않고 조금씩 짧아지고 있죠.
대학병원 뿐 아니라 대도시의 규모가 좀 있는 병원들은 이런 영상검사를 하려면 반드시 예약을 잡아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만큼 환자가 몰려오기 때문에 밀리니 그렇죠. 지역병원에서는 안그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냥 외래로 와도 그날 오전 아니면 오후에 영상검사 가능하고, 검사 끝나고 1시간 안에 판독까지 나갑니다(지금 제가 그렇게 해주고 있습니다). 대장내시경처럼 반드시 전처치가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거의가 당일검사에 당일 판독이 가능하죠. 물론, 진단검사의학쪽 결과는 며칠씩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말입니다.
2. 연줄을 이용하기가 쉽다.
지역에서 중심역할을 하는 거점 종합병원들 보면, 직원들 대부분이 그 지역 출신이고 지역주민들하고 수십년간 인연을 이어온 사람들입니다. 지방에서는 내가 아쉬울 때 조금이라도 더 빠른 절차가 간절한 경우 연줄을 찾는게 여전한 관행이고, 그렇게 연줄을 찾기 쉬운것도 지역내 병원들이죠. 실제로 보면 병원 복도에 돌아다니는 외래환자들 중 3분의1정도는 병원 직원과 같이 붙어다니거나 직원들 보면 살갑게 인사하고 아는체 하는 분들입니다.
3. 정보가 더 많이 공개되어있다.
대도시의 대형병원, 대학병원들은 규모가 큰만큼 특정한 분야에 권위가 있는 대가나 명의들이 즐비할거라 생각합니다. 현실은 그런 대가나 명의가 정말로 필요한 상황은 생각보다 흔한게 아니라는 거고, 정작 잘 모르는 일반인들이 그런 명의들을 찾으려 해도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홈페이지를 둘러봐도 쉽고 정확하게 정보에 접근하는게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지역병원을 보면 지역사회 내에서 그 병원에 어떤 원장님이 오셨고, 그 원장님이 친절한지, 뭘 잘 보는지 이런 정보들이 생각보다 빨리 퍼지더군요. 소아과의사나 산부인과 의사 같은 경우에는 맘까페에서 아주 “품평”을 하는 대화방도 있더라구요. 그런 정보망이 깔려 있어서 같은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저보다도 새로 온 원장님에 대해 잘 아는 환자들 보면 깜짝 놀라기도 합니다.
-단점-
1. 의료진의 이직이 잦다.
지방은 의사들 입장에서 항상 대도시보다 꺼려질수 밖에 없는 근무지입니다. 아이들 교육문제, 문화생활의 한계, 의사로서 발전을 하려면 희귀하고 어려운 케이스를 많이 경험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문제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진단이 애매한 경우 조직검사나 수술적 진단을 해보려고 해도 환자가 그런 소리를 듣자마자 서울로 가버리고는 하기 때문에 공부가 안되죠.
결국, 그만큼 이직율이 대학병원이나 재정이 탄탄하고 고용이 안정적인 수도권-대도시의 대형 종합병원보다는 높을수 밖에 없습니다. 환자들이 의사에게 정들만하면 떠나고 새 사라이 오는 경우가 많다보니 당연히 신뢰나 진료의 연속성 측면에서 불리할 수 밖에 없죠.
2. 경쟁이 없다. 그럼에도 상황은 어렵다.
해당 지역 안에서는 종합병원이 두개, 많아봐야 세 개 정도만 있기 때문에 경쟁이 적습니다. 직원들이 불친절하고 의사들도 적극적으로 뭔가를 해주려고 노력하는거 같지도 않아보일 수 있습니다. 지역 내에 살아남은 병원 입장에서도 나날이 고령화되어 줄어가는 인구구조에 젊고 고소득인구가 없기 때문에 뭘 열심히 해보려고 해도 신규수요를 창출하는게 불가능하죠.
자연스레, 병원 이익을 투자가 아닌 경비절감을 통해 거둘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물론, 대도시 병원이라고 크게 다른건 아니지만, 지역내 병원은 이런 경향이 훨씬 심하죠.
3. 중복검사를 할 수 있다.
환자가 머리가 아퍼서 지역병원을 찾아왔습니다. 이런저런 문진과 검사 끝에 뭔가 이상한 게 있어서 ct나 mri를 해보니 뇌동맥류가 나왔습니다. 그러면, 해당 병원에서는 치료가 불가능하니 대학병원이나 대도시 대형병원으로 전원이 이뤄지겠죠.
이 때 이미 했던 검사를 또 다시 하자고 할 수가 있습니다. 2중으로 돈이 들어가는 거지요. 물론, 요즘에는 환자의 이런 경비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일정한 수준 이상의 영상검사는 다시 찍자고 하지 않는 곳이 많습니다. 하지만, 대학병원이 돈독이 오르면 필요가 없는줄 알면서도 “저 시골병원에서 찍은 영상가지고는 검사도 치료도 불가능하네요”라면서 다시 찍자고 하게 됩니다. 아니면, 정말로 지역병원에서 촬영했던 영상이 저질스러웠을수도 있겠구요.
기본적으로 CT는 64채널, MRI는 1.5T 이상의 장비라면 큰 병원에서 다시 찍자고 작업하는 일은 없을겁니다. 지역병원에서 영상장비를 어느정도 수준으로 운용하고 있는지는 따로 확인해보시는게 유용하다고 생각합니다.
-착각하면 안되는 것-
1. 의료진의 수준이 지역병원이 떨어질 것이다.
글쎄요, 이건 100%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고 봐야 합니다. 대학교수님이 은퇴하고 나서 시골 병원에서 휴식차 근무하시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그런 경우라면 대학병원보다도 더 수준이 높다고 해야겠죠? 이런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라도 대학병원에서는 대부분의 진료를 전공의가 도맡아서 하는 시스템입니다. 간호사들도 젊고 활동적이지만 일 시작한 지 얼마 안되는 간호사가 더 많겠구요.
의료진의 수준이라는게 무슨 대단한 난치병을 첨단장비 가지고 치료해서 국제 학술대회에 발표하고 그런걸로 평가하는건 사실 의미가 전혀 없습니다. 우리가 일상적인 상황에서 자주 겪는 증상이나 의료상황에서 풍부한 경험과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현명하게 대처할 줄 아는 의료진이 진짜 수준높은 의료진이고, 환자에게 직접 도움이 되는 의료진인 겁니다.
그런 의료진의 “수준”을 판단하는 건 사실 쉽지 않지만, 대게 얼마나 알기 쉽게 설명을 해주는가, 특히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가지고 대처를 해보자고 명확하게 설명해주는 의사나 간호사가 있는 의료진은 해당 상황에 대해서 풍부한 경험과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다른 의사들끼리 이야기해보면 그런 대화의 수준이 실제 그 의사의 능력하고 비례하는거 같더군요. 그런 의사들은 큰 병원이라고 더 많은것도 아니고, 지역병원이라고 없는것도 아니에요. 크게 어느 쪽에 더 많다고 말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2. 큰 병원이 비싼만큼 장비가 더 좋고 안전할거다.
글쎄요, 이대 목동병원 사태를 생각해보면, 그런 오해가 더 쉽게 풀릴 수 있겠는데요, 병원 규모가 크다고 운용하는 장비나 시스템의 안정성이더 좋다고 생각하는건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건 직접 병원 홈페이지나 병원을 방문해서 확인해보는게 정확합니다. 제가 근무하는 병원은 아닌데, 시골 지역병원에서 3T mri에 256채널 MDCT(듀얼에너지인지는 확인을 못했습니다), 최상위기종의 초고가 초음파장비를 운용하고 있는 곳이 있습니다. 대학병원도 규모가 작은 어중짱한 대학병원 분원정도라면 꿈도 못꾸는 장비들인데 그걸 운용하고 있더라구요.
결국은 선입견을 가지지 말고 직접 확인해보는게 제일 정확하다는게 결론인데, 글을 두서없이 너무 길게 썼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