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크린 호랑이” 이 책의 저자는 피터 나바로입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현직 국가무역위원장인 바로 그 피터 나바로입니다.
언론에서는 피터 나바로 교수를 국수주의자나 중국을 깨부숴서 산산히 찢어버려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극단주의자처럼 묘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최근 미국의 의회나 트럼프행정부가 중국을 향해 보여주는 일련의 행동은 온건론자들이 아닌 피터 나바로 교수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를 알아보는건 현상황을 이해하는데 필요합니다.
그가 쓴 대표적인 저서인 “웅크린 호랑이”는 온통 자극적이고 선동적인 문장으로 미국인들을 향해 중국을 향한 적개심과 전쟁의욕을 고취시키는 책이 결코 아닙니다. 역사적으로 중국이 팽창주의를 채택할 수 밖에 없는 배경을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고 있으며, 어떤 전술을 통해 주변의 국가들의 영토와 영유권을 침탈해 왔는지, 그러한 팽창주의가 미국의 제국주의적 입장과 어떤 영역에서 충돌하고 있는지를 차분하고 면밀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저술한 투키디데스가 써내려갔던 스파르타와 아테네가 전쟁을 할 수 밖에 없었던 패권경쟁과 상호불신이 지금 미중간에 어떤 과정을 거쳐서 그대로 재현되어가고 있는지를 (미국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무서우리만치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풀어서 써내려가는 책입니다.
사실, 시사상식에 꾸준히 귀를 열어두고 있었던 분들이라면 중국이 그간 벌여왔던 충돌이나 갈등들에 대해 다들 한두번은 들어 익숙했을테지만, 그러한 것들을 하나하나 열거해나가다 보면 엄청난 빈도와 함께 그것들이 보여주는 중국의 팽창의도의 집요함에 소름이 돋게 됩니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서는 아테네가 스파르타를 배제하고 밀어낼 의사가 없었음에도 어쩔 수 없이 전쟁이 이어졌던 측면이 있었지만, 이 책에 나와있는 수많은 사례들을 보면, 중국이 미국을 추월하고 패권을 쟁취하기 위해 단순히 경제적인 수단 뿐 아니라 군사적인 수단을 동원하는 걸 결단코 주저하지 않고 있다는 걸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제일 극명한 게 인도와 중국과의 관계입니다. 인도의 독립과 동시에 중국과 인도는 제3세계동맹이라는 명분으로 동맹에 준하는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인도의 네루 수상은 중국의 티벳침공까지도 인정해가며 중국의 입장을 지지해왔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인도간에 명시적으로 인도영토라도 인정했던 지역까지도 기습적으로 자기네 영토라고 우기면서 외교전을 펼치다 결국 전쟁도 불사합니다. 덕분에 중국의 뒤통수를 얻어맞은 네루는 제3세계 진영이라는 입장도 내던지고 미국에게 도와달라 손을 내밀고, 소련도 인도의 편을 들면서 중국은 전쟁에 이기고도 외교적으로 고립되어 입지가 더 좁아지게 됩니다.
그런 안좋은 경험에서 교훈을 얻어야 함이도, 팽창주의를 투사하는 침략이나 간섭의 시도는 이후로도 계속 심해지고 있는데, 필리핀과는 미국의 중재로 서로 군대를 철수하기로 한 약속을 일방적으로 무시하면서 섬을 실효지배하는 배짱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이는 외교적인 실패가 주는 부담과 압박을 훨씬 뛰어넘는 군부의 영향력, 지방관료들에 대한 중앙정부의 통제력 부족, 독재를 유지하기 위한 국수주의 분위기가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물론, 외교적 합의를 휴지조각으로 만드는 파벌주의는 중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도 굉장히 심한데(대통령이 승인한 조약을 의회가 무효화하고 전쟁,침략을 강행) 이렇게 미국과 중국의 이런 특성이 서로 시너지를 내면 전쟁의 가능성은 더욱 커질 수 밖에 없는거죠.
그러면, 이런 전쟁위기를 억지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고민거리가 될겁니다. 저자인 피터 나바로 교수는 미국인이므로 당연히 미국인의 입장에서 “종합국력”의 격차를 더 벌려서 싸우지 않고 이기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대안이라고 주장합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여러분야에서 동시에 벌어지고 있는 미중간의 갈등 심화는 다름아닌 이런 종합국력의 개념으로 설명이 되는 거지요.
문제는 우리나라입니다. 북한처럼 소련과 중국 사이에 등거리외교를 펼치는게 지금과 같은 우리편 줄세우기로 펼쳐지는 외교전쟁 중에서는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미국과 중국이 우리나라에게 줄을 서라고 강요하지 못할 정도로 우리 국력이 강하려면 무엇보다도 지금과 같은 무역의존도 내지 수출의존도를 탈피해야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중국이나 미국 입장에서는 지정학적인 접근으로만 우리나라를 바라보는게 아닙니다. 이념의 측면, 즉 공산독재의 심기를 거스릴 수 있는 “민주주의로도 경제가 비약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사례”라는 턱 밑의 가시로 바라볼수도 있고, 미국 입장에선 “우리 군인들의 희생과 돈으로 지켜주고 있는 동맹인데도 불구하고 중국에 계속 곁눈질을 하고 언제 돌아설지 모르는” 불안과 의심으로 우리를 바라볼 수도 있습니다.
이 책을 읽어가게 되면서 “그렇다면 우리나라 국민은 무얼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안하게 될수가 없더군요. 제 개인적으로는 중국국민이 정부에 의해 팽창욕구와 국수주의를 주입받는 것과 같은 불행의 씨앗을 거부하고, 민주사회의 시민으로서 스스로 생각하고 토론할 줄 아는 교양을 채우는 것이 가장 시급한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나라 국민으로서 다른 건 다 버려도 민주주의라는 정신과 자부심은 버려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렇게 자주적으로 생각하는 시민이 있어야 정부가 제대로 된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