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외환위기 초입에 들어선 터키 관련해서 에르도안 대통령은 많은 분들이 알고 있지만, 정작 지금의 터키 문제를 꿰뚫고 있는 핵심인물은 에르도안이 아니라 페툴라 귤렌이라고 생각합니다.
페툴라 귤렌은 에르도안과 함께 현재 터키 집권당을 세운 정치적 동지이자, 이슬람 학자, 그리고, 터키 내에 3대 이슬람 종단 중 하나인 페툴라종단을 이끄는 페툴라 운동을 이끌고 있는 리더입니다. 이 페툴라 종단은 다른 두 종단에 비해 훨씬 온건하고 터키 민족주의와 세속주의를 옹호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얼마나 세속적인 성격이냐면, 과거 터키 군사정권의 이슬람 탄압에 대해서도 비판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페툴라 귤렌 본인도 친미적인 성향에 사우디아라비아의 교조주의적인 이슬람화에 비판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처음 에르도안과 귤렌이 세운 AKP는 온건하고 세속적인 성향으로 외국자본의 투자 뿐 아니라, 터키 내 자본가들, 즉 이슬람 자본가들의 지원을 받아 경제성장을 이루고 정치적인 안정을 이룩해냈습니다. 그러다, 3선 총리를 하면서부터 권위주의 성향을 드러낸 에르도안에 당내 온건파와 귤렌의 비판이 이어지면서 충돌, 당내 온건파는 모두 축출되고 페툴라종단도 탄압을 받다 결정적으로 2016년 쿠데타가 귤렌의 음모라 뒤집어 씌워 대대적인 숙청을 단행해 독재체제를 완성하게 됩니다.
터키 경제도 에르도안이 시위대를 유혈탄압하고 권위주의체제를 만들어가던 2013년을 기점으로 후퇴하기 시작했으며, 2016년의 쿠데타 사건을 계기로 외국자본의 투자도 급격하게 떨어졌습니다. 이렇게 된 건 쿠데타 자체가 아니라 이후 벌어진 외교 난맥상이 결정적이라고 봐야 합니다.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후 공직자만 15만명을 해임하고 5만명 이상을 체포한 것은 어디까지나 국내문제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때까지 성공적이었던 중견국 외교를 이끌던 아흐메트 다부트올루 총리가 갑작스레 사임한 후, 시리아-러시아-이란으로 엮여지는 비자유주의 역내질서를 추구하면서, 그때까지 투자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던 중견국이나 서방사회의 신뢰상실을 방치한 겁니다.
중견국협의체(MIKTA) 활성화를 추구하면서 다자간 대화와 협상중심의 외교질서를 추구하다 갑작스레 외교방향이 180도 바뀌면서 외국자본의 투자도 그 때를 기점으로 크게 줄었습니다. 우리나라도 2016년을 기점으로 대 터키 투자액이 50% 이상 감소하였고, 계속 줄고 있습니다.
여기서 페툴라 귤렌이 중요한 건, 과거 군사정권 시절 이슬람이 탄압받던 때 자생적인 이슬람 종교운동을 이끌었으면서도, 온건하고 세속적이며 친서구적 성향의 인물로서, 에르도안과 함께 현 집권당을 만들었으며, 현재 터키 안에서 가장 심한 탄압을 받고 있는 이들이 가장 지지하는 정치인이자 이슬람학자라는 점입니다.
터키 입장에서 에르도안이 어떻게든 실각하게 되고, 비자유주의 국가연대에서 탈퇴, 민주주의 시스템이 회복된다면 가장 유력한 대안이 되는게 바로 이 페툴라 귤렌이지만, 페툴라 귤렌이나 그의 추종세력이 정권을 잡게 된다면,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원리주의 이슬람세력과 소련, 시리아, 이란은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될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워낙 철저하게 짓밟힌 탓에 터키 내에서의 기반도 취약한 상태이기에 마냥 꽃길을 걷기도 어렵구요.
결국, 지금 터키의 외환위기는 경제가 아닌 순전히 정치문제이며, 앞으로 어떻게 문제가 전개될 것인가를 지켜보다 보면, 반드시 크게 주목을 받게 될 인물이 다름아닌 페툴라 귤렌이라고 봅니다. 덧붙혀서, 제가 왜 페툴라 귤렌이라는 인물에 관심을 가지느냐면 이슬람종교가 일으키는 문제들의 근원을 논할 때 극단적인 원리주의 이슬람이나 일부 분파, 폭력단체들이 문제인가, 아니면, 애초에 이슬람이라는 종교 그 자체가 문제의 근원인가 하는 논란이 생길때 마다 항상 많은 분들이 그냥 이슬람 그 자체가 문제라는 인식을 드러내는 걸 많이 봐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는 것, 즉 이슬람이라는 종교 안에서도 얼마든지 합리적이고 타협적인 생각을 가지는 이들이 많이 존재한다는 걸 가장 명쾌하게 보여주는 지표가 바로 이 페툴라 귤렌입니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든 다 비슷한 법이고, 이슬람이라도 특별히 더 다르거나 악마적인게 아닙니다. 터키 이슬람에는 에르도안같은 사람도 있지만, 귤렌같은 사람도 있다는 걸 진지하게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