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시 리버모어의 회상”이라는 에드윈 르페브르가 쓴 소설책을 읽고 있습니다. 번역자가 중요한데 박정태님이 번역한 굿모닝북스 출판본을 읽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번역자가 중요한 이유는 문체의 유려함이나 용어번역의 숙련도 문제가 아니라 아예 책의 큰 줄기를 완전히 다르게 해석해서 번역하는 경우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도 전성기 시절 제시 리버모어의 회상을 소설 형식으로 쓴 책이지만, 어떤 번역가는 기가막힌 리버모어의 투자전략과 기술을 배울 수 있다고 서문에 쓰고, 어떤 번역가는 당대 최고의 투기자가 들려주는 솔직한 회상을 통해 상처받은 탐욕의 본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서문에 쓰고 있습니다. 당연히 같은 원본이어도 전혀 다른 책이 될 수 밖에 없는것이죠.
-리버모어의 위대한 점들
제시 리버모어는 어렸을 때부터 주식 투기판에 깊숙히 관련되 있었고, 빠른 두뇌회전과 기억력을 바탕으로 주가의 움직임을 면밀히 관찰해서 패턴을 읽어내는데 소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덕분에 리버모어가 살던 당시 만연했던 무허가 사설증권거래소인 버컷샵에서 승승장구하며 성공적인 주식투기꾼으로 출발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주가를 들여다보고 예측하는 기술 하나만 가지고는 돈을 따기는 커녕 파산 일보직전까지 갈 수 밖에 없었는데, 여느 투기꾼들이라면 그 상황에서 자기 생각대로 돌아가지 않는 시장에 절망하거나 자기합리화를 하며 자멸했겠지만, 그는 돈을 잃는 이유가 시장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소신을 끝까지 잃지 않고 반성과 학습을 통해 여러번의 파산위기에서도 거듭 자신을 업그레이드시키며 불사조처럼 부활하는데 성공합니다.
이건 제시 리버모어에게서 우리가 반드시 배워야 하는 그의 위대한 면모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투기나 투자를 할 때 실패할 수 있으며, 그 투자자(또는 투기자)의 자질은 그런 실패 다음에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달려있지요. 리버모어는 그럴때마다 “생각”을 했고, 원인을 “자기 자신”에게서 찾아 자신의 전략과 기술 뿐 아니라 시장을 보는 “관점”을 업그레이드 해왔습니다.
그렇게 반성과 생각을 거듭한 끝에 얻은 경지는 언제나 위험 없이 수익을 볼 수 있는 그런 만화같은 경지는 아니지만, 언제나 잘못된 생각을 하지 않고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가 뭔가 잘못된 거래를 하고 있을 때는 언제나 자기 자신의 생각이 틀렸던게 아니라 자신의 감정과 컨디션이 잘못되 있었던 겁니다. 언제나 그가 주가의 흐름을 파악해 예측하는 것이 악재나 호재성 정보나 미세한 조짐들이 튀어나오 것보다 더 빨랐습니다. 이건그가 얼마나 주가의 흐름을 읽고 분석하는데 대단한 안목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짐작케 합니다.
또한, 그런 대단한 안목을 가졌음에도 그는 성급하지 않고 용의주도했습니다. 그는 시장을 절대로 거스리지 않았습니다. 약세장이나 강세장이 왔을 때 이 시장을 거스를 수 있는 세력이나 종목은 존재하지 않는다는게 그의 지론입니다. 때문에 약세장이나 강세장을 예측하고 심지어 확신했음에도 불구하고 미리 공매도를 치거나 매집을 하지 않고 움직임을 더 지켜보면서 대응했던 부분은 그가 수많은 실패를 수업료 삼아 완성시킨 거래기술의 백미라고 봐도 될겁니다.
-내가 리버모어를 따라할 수 없는 한계
리버모어는 그렇게 대단한 재능과 열정을 가지고 투기에 임했음에도 번번히 파산 직전까지 가거나 파산을 당했었는데, 그게 그가 무슨 엄청나고 바보같은 실수를 저질렀던게 아닙니다. 초보시절, 내지는 자본금이 작았을 때에는 큰 실수가 아니었을 그런 작은 판단실수나 감정적인 일탈 같은 걸로도 연거푸 빈털털이가 되고 말았던 겁니다.
책 안에서 리버모어 자신도 고백했던 것이지만, 그는 성공할 수록 더 큰 규모의 돈을 굴리게 되었기 때문에, 망할 때에도 훨씬 크고 치명적으로 망하게 됩니다. 자신의 실수로부터 무언가를 배워 자신을 업그레이드 하는 기회로 삼았던 점은 분명 그의 위대한 점일테지만, 그가 자신의 실수로부터 배우기 위해 내야 했던 수업료는 정찰제 가격이 아니었던 겁니다. 그렇게 재정적으로 망하기만 한 게 아니라 건강과 정서상태의 불안정함이 항상 실패 뒤에는 따라왔는데, 이게 더 치명적인 거지요.
그런 위기에서 번번히 빠져나오는 것 자체가 사실, 리버모어의 대단한 점이고, 결국에는 그런 위대한 투기꾼조차 마지막에는 빠져나오지 못했던 고비가 있었다고 생각하면 저같은 소심한 사람은 모골이 송연할 뿐입니다.
결국 투기를 시작하는 지금이 문제가 아니라 좀 더 성공한 다음부터 자신의 실수에 훨씬 어마어마한 수업료를 내야 하는게 투기라는 거래행위의 본질이라는 걸 잊으면 안되고, 저 역시 차익거래를 노리는 투기를 하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겠지요. 거기에 더해 한가지 더 경고하는 부분이 있는게 투기 내지 투자라는 것의 목적에 관한 부분입니다.
리버모어는 돈을 벌기 위해서 주식 투기를 했던게 아니라, 자기 자신의 생각이 맞았음이 입증되는 즐거움을 위해 투기를 했고, 자신의 생각이 맞았는지 틀렸는지를 평가하는 잣대간 단지 돈을 벌었느냐 아니냐였을 뿐입니다. 돈을 벌려고, 심지어는 당장 무슨 물건을 사거나 여행갈 자금을 마련하려고 투기를 하면 냉정한 이성일 때 감당하던 리스크보다 훨씬 많은 리스크에도 무감각해져 십중팔구 실패한다는 리버모어의 지적이 뼈아픈 비판으로 다가오는 부분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돈을 벌려고, 그리고, 노후에 조금이나마 안정되고 윤택한 삶을 기대하기 때문에 달마다 월급에서 일정부분은 빼어서 주식거래를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리버모어처럼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고, 실패를 자신을 업그레이드시키는 기회로 활용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고, 때에 따라서는 성장을 위해 기꺼이 지불해왔던 수업료를 내는 것도 내키지 않는 상황입니다. 본업이 따로 있기 때문에 주식시장이 열리는 동안 시세변동을 꾸준히 관찰하는 것조차 할 수가 없는 입장이구요.
-결론
결국은 이 책을 읽고 “그대로 따라하기”를 해서 저에게 찾아올 소득은 전혀 없겠다는게 제가 내린 결론이었습니다. 결국은 스스로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걸 멈추지 않고 계속 해나가는게 제일 중요하고, 나 자신에게 맞는 거래를 스스로 개발하는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강화시키게 됩니다. 다만, 이 책이 한 번 읽고 말게 아니라 소장해서 금과옥조처럼 읽고 또 읽으며 페이지마다 책장이 접혀 다 낡게 될 때까지 읽으라는 윌리엄 오닐의 추천이 공감가는 건, 이 책에 나와있는 수많은 호구들과 사기꾼들, 자기들이 망할거 같으니까 애국심에 호소하면서 시장을 왜곡하고 조작했던 정치꾼들 같이 오늘날에도 자주 볼 수 있는 사례들에서 나오는 격언과 교훈들이 정말 생생하기 때문입니다.
아마, 이 책 자체의 가치는 마스터피스급이라고 할정도는 아니라도, 앞으로 주식거래를 계속하는 한, 투자관련 서적들 중에서는 보기 드물게 앞으로도 여러번 계속 읽게 되는 책이 될 것 같다는게 제 예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