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보통 일상생활의 많은 영역들에서 대중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에 대해 이른바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지침을 제시하는 경우는 정말 많습니다.

건강을 위해서는 의사라는 전문가의 말에 귀기울이고, 주식투자가 신통치 않으면 역시 주식전문가들에게 가르침을 구합니다. 정치도 자기가 좋아하거나 존경하는 전문가들이 가르키는 방향으로 쏠리게 마련이고 심지어는 뭘 먹고 뭘 입을까도 전문가들의 조언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런데, 살다 보면 그런 소위 전문가들이 이상하고 상식에 어긋나는 말을 하는 경우를 자주 접하기도 하고, 정말 그럴듯한 말을 해서 철썩같이 믿었는데 현실은 정 반대로 결과가 나와서 실제 내 재산과 건강에 손해를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일을 겪을때마다 전문가라는 건 다 허상이고 가짜라는 생각을 하기도 하면서, 이렇게 절대적인 의존과 불신을 왔다갔다 하며 바라보는게 보통 대중의 전문가에 대한 시선입니다.

사실 저도 전문의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일종의 전문가이지만, 수십년 전문영역에서 경험을 쌓았으면서도 쉽게 자신하기 어려운 케이스를 많이 겪고, 간간히 뻔한 실수를 저지르면서 전문가라는 이름에 먹칠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는 걸 고백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걸 보면서 문득 “우리는 어디까지 전문가의 말을 귀기울이고, 어디서부터 그들의 말을 무시해야 할까?” 라는 질문에 다다르게 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런 질문에 과학적인 접근을 통해 명쾌한 답을 낸 사람이 있습니다. Beth Azar라는 학자가 “why experts often diagree”라는 제목으로 1999년에 쓴 논문에서 이러한 문제를 플어냈는데, 개인적으로 동감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영역에서 이른바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활동하고 있지만, 이런 영역들은 크게 4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는게 Beth Azar의 주장입니다. 하나의 잣대는 문제에 정확한 정답이 미리 주어져 있고, 그것을 맞췄는지 아닌지를 확인하는게 가능한 원칙기반 영역인지, 모든게 불확실하고 결과 또한 확률의 영역 안에 있는 확률기반 영역인지의 구분이고, 다른 잣대는 전문가가 의견이나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변화의 폭,, 즉 자유도가 낮은지 높은지의 구분에 따라서 영역을 나누는 겁니다.

원칙기반-자유도 낮은 영역 – 의사의 진단이나 기업의 신용평가 같은게 여기 속합니다.
원칙기반- 자유도 높은 영역 – 체스나 바둑 등을 예로 들수 있습니다.
확률기반-자유도 낮은 영역 – 포커게임 같은 것이 여기에 속합니다
확률기반-자유도 높은 영역 – 경제전망이나 주식투자등이 여기에 속합니다.

원칙기반-자유도 낮은 영역은 거의 정답과 패턴이 일정하기 때문에, 인간이 전문가가 되어 아무리 노력해도 요즘 나오는 컴퓨터를 이기는게 불가능합니다. 실제로 심전도검사를 세계적인 권위자가 아무리 정성들여서 판독을 해도, 요즘 기계가 판독하는 정확도를 이기는 건 불가능합니다. 대학교수님들도 자기 의견하고 컴퓨터 판독이 틀리면 자기 의견을 접고 컴퓨터 판독대로 하는 경우가 많죠. 이런건 컴퓨터가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비교적 간단한 심전도 파형판독에서 부터 시작해서 점점 복잡한 경험과 판단을 필요로 하는 영역에서까지 인간이 기계를 따라잡기 어려워지게 될겁니다.

원칙기반-자유도 높은 영역은 인간의 창의성이나 자유로운 사고방식을 발휘해 변칙적인 플레이로 기계의 막강한 연산능력을 극복할 수 있다고 착각해왔던 영역입니다. 알다시피 세계적인 바둑 기사들이 알파고에 연전연패 하고 있고, 앞으로도 알파고는 점점 더 학습량을 늘려나가지만, 인간의 학습능력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이 영역에서도 인간은 컴퓨터에 이길 수 없으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 간격은 더 커지게 될겁니다.

확률기반-자유도 낮은 영역에서 전문가는 기계는 커녕 일반인들조차 이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전문가들은 자신들의 경험과 지금까지 쌓아온 자신의 관점을 맹신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확률의 문제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게 면접관인데, 오랫동안 자기가 경험해 왔던 경험을 봤을 때 이런 패턴을 가지고 있는 지원자는 뽑지 않는게 좋겠다, 뽑는게 좋겠다,,, 이런 식으로 자기 경험에서 기반한 판단을 하고는 하지만, 그런 경험은 객관적인 통계보다 훨씬 결함이 많은 데이터인 경우가 많습니다. 도박사들이 포커를 치면서 자신만의 “감”에 의지해 확률이 낮은 상황에서 과감하게 승부를 거는 상황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정말 승률이 높은 도박사는 자기 주관이나 감을 배제하고 통계에 의지해서 승부를 거는데, 오히려 그 경우가 전체적인 승률이 높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확률기반-자유도 높은 영역에서는 거의 확실하게 전문가의 판단이 대중의 집단적 판단을 이기지 못하는 영역입니다. 객관적으로 조사를 해보면 이른바 투자전문가들의 판단은 거의 언제나 적중률 50%를 넘기지 못했고, 특히 문제가 어려울 때에는 전문가의 예측력은 형편없이 추락합니다. 그 뿐 아니라 더 좌절스러운 건, 이런 영역에서는 거의 언제나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주장이 항상 정반대로 팽팽하게 엇갈린다는 겁니다. 이건 결국 이런 영역에선 전문가가 아니라 아무것도 모르면서 전문가 행세를 하는 이른바 “좆문가”가 대부분이라는 걸 의미합니다. 여기서 좌절스런 현실에 쐐기를 박는 사실은 대중매체가 떠받드는 유명예측가들의 적중율이 무명예측가들의 적중률보다 항상 낮았다는 겁니다.

결국, 거의 모든 영역에서 이른바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의 권위는 그들이 전문가라는 사실만 가지고서 성립될 수 없다는 겁니다.

왜 이렇게 전문가들이 제대로 된 판단이나 예측을 못하는 것인가 하는 데에는 두가지 중요한 요인이 있습니다.

하나는 기능적 고착(functional fixedness)라고 하는 심리현상인데, 수만시간 이상을 한 분야에서 일을 하다 보면, 해당 분야에 정통해지면서, 동시에 그런 경험의 축적량 만큼 유연성이 떨어질 수도 있게 됩니다. 인식의 유연성이 감소하게 되면, 정말 드물게 일어나는 현상이나, 복잡한 문제들을 판단할 때 필요한 고정관념의 타파가 불가능하게 된다는 겁니다. 의사들 사이에서도 이런 문제가 종종 일어나는데, 대학교수들이 한 청색증(산소결핍으로 얼굴이 파랗게 되는 증상)환자의 원인을 두고 몇달을 갑론을박 하다가 나중에 보니 그 환자가 쓰던 수건에서 파란 염색이 얼굴에 묻어있었더라는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그럴거라 상상조차 못하는 이유가 자기들이 익숙해있는 경험 안에서만 사고하고 판단하려들기 때문이라는 거지요.

두번째는 환원편향(reductive bias)라는 건데, 예측 불가능하고 복잡한 비선형 복잡계의 문제를 마치 알기 쉽고 단순한 선형 단순계의 사안인 것처럼 다루려는 편견인데, 경험이 많은 전문가일수록 이런 경향이 심하다고 합니다. 흔히 초심자나 대중에게 알기 쉽게 설명해주려고 쓰는 명쾌하고 단정적인 표현이나 비유를 이용해서 복잡계를 설명하려다, 자기도 모르게 그런 도구를 진짜라 믿고 착각하는 경우이죠.
결국, 그래서 어쩌라는 말이냐, 전문가 말을 다 무시하라는 말이냐는 건데, 제가 쓴 글의 주장은 그게 아니라 “전문가의 신뢰성을 전문가가 아닌 사람도 얼마든지 판단하고 평가할 수 있다”라는 걸 잊지 말고 실천하자는 겁니다. 전문가가 말하니까 그저 듣고 믿기만 하는 “권위호소 오류”에 빠지지 말고, 대중의 컨센서스에 반하는 의견이나 예측을 평가할 때 그 주장의 신빙성을 평가하는게 생각보다 어렵거나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지 않을 수 있으므로 차분하고 꼼꼼하게 상식과 이성, 분별력을 동원해서 다른 의견을 가진 전문가들의 주장과 비교해가면서 평가하면, 어렵지 않게 전문가라는 허울에 휩싸여 잘못된 길로 휘둘리는 일을 막을 수 있다는 거지요.

이른바 전문가보다 더 위에 있다고 여겨지는 권위자라는 것도, 사실 무슨 대단한 능력 때문에 권위자라 인정받는게 아닙니다. 그저 학회에서 높은 자리 꿰차고 앉아있어서, 어쩌다 운이 좋아서 다른 사람들이 다 착각하고 실수했을 때 정반대 의견을 주장하다 그게 맞았던 경우, 아니면 잘생기고 말빨이 좋아서 소위 권위자로 떠받들어지는 경우들이 정말 많습니다. 정말 좋게 봐줘서 행당 분야를 깊고 오랫동안 파서 정말로 전문성이 있는 진짜 권위자라 하더라도, 정작 이렇게 한 우물만 깊게 판 사람은 잘못된 편견에 빠지는게 훨씬 더 쉽습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골고루 공부하고 세상의 다양한 진리와 원칙을 두루 아는 사람이 훨씬 더 현명하고 올바른 예측이나 해답을 제시하는 경우가 많다는 걸 잊으면 안됩니다.

결국 전문가가 뭐라고 한다고 무조건 주눅들거나 골빈 좀비처럼 맹목적인 추종만 하지 말고 스스로 생각하고 비판하는 걸 생활화 하는 것이 세상을 더 윤택하게 사는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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