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간에 적응하기

이 영상은 Karen Lloyd가 TED에서 강연한 내용입니다. 주제는 심해 퇴적층에 사는 미생물에 대한 겁니다. 간혹 심해 열수공에서 나오는 뜨거운 물 근처에 사는 미생물들 이야기는 자주 들어보셨을지 모르는데, 그 미생물들이 아니라 차갑고 햇볕도 없는 심해 진흙 속에도 미생물이 살고 있다는 거지요.

수백미터 해저, 햇빛도 산소도 어떤 영양공급원도 없는 캄캄한 진흙 속에 우리가 전혀 모르고 있던 신기한 미생물들이 살고 있다는 건데, Karen Lloyd가 흥미로워 하는 부분은 이들 미생물을 배양접시에서 아무리 배양을 해보려고 해도 배양이 안된다는 거에요. 이들 심층미생물들의 유전자를 조사해서 어떤 영양분을 주로 먹는지 예상해서 배양접시에 키워도 전혀 키울수가 없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이들 심층미생물은 일반적인 미생물들과는 전혀 다른 시간 속을 살고 있는 존재라는 겁니다. 극도로 에너지나 양분이 제한된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미생물들에게는 햇볕이나 풍부한 영양, 산소라는 고에너지 대사전달체제(TCA사이클) 같은 것으로 순식간에 성장해서 세포분열을 거듭하는 방식으로 진화한 우리들과는 완전히 다른 대사속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겁니다.

아마, 좋은 조건이 마련된 배양접시 속에서 한 수천년 정도가 지나면 한 번 정도 세포분열하는 모습을 볼 수도 있을거라는 거에요. 이들에게 하루는 우리에겐 수백수천년과 같은 거라는 겁니다.

아마도, 지구상에 맨 처음 태어난 생명은 이와 같은 형태의 시간 속을 몇만년, 몇십만년이나 살고 있었을 겁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산소나 햇볕 같은 고에너지원을 이용해 어마어마하게 빠른 대사작용과 속도로 움직이게 된 한 돌연변이 미생물이 심해 속 진흙탕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이 느린 시간 속에서 정지하듯 살아가던 원래의 미생물들을 완전히 압도하면서, 그 어마어마하게 빠른 세포분열주기와 유전자 변이속도에 힘입어서 진화과정을 이렇게 가속시키면서 이렇게 인류에까지 이르르게 된 거겠지요.

생명의 패러다임이 개체의 생존과 지속에서 종의 번식과 진화로 전이된 겁니다.

하나의 종이나 유전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렇게 빠른 시간 속에 살며 모든 것들을 재빠르고 민첩하게 처리하며 투쟁해온 우리 진핵생물들이 진화에 승리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 개체의 입장으로 돌아보면 오히려 이런 변화가 반갑지 않습니다. 수천년 수만년을 버티며, 심지어는 지구가 박살나도 운석의 어느 한 조각 속에서 생존하며 다른 별로 여행할 수 있는 영생의 가능성을 상실한 채 일생동안 중 대부분의 에너지를 번식을 위해 쏟아부은 결과로 순식간에 노화가 찾아와 죽는 숙명이 즐거울리 없습니다.

이러한 진화의 서글픈 한 단면을 주식시장에서 엿보고 시니컬한 독설 한구절로 우리에게 보여준 사람이 니콜라스 나심 탈렙입니다. 위험관리를 망각한 채 조급증과 탐욕에 눈이 멀어 단기 추세만 바라보며 거래량과 빈도를 늘려가는 어리석은 트레이더들이 그들 개개인의 인생사는 위험관리 실종으로 파산과 불후한 노후를 맞이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진화론의 측면에서 젊었을 때 호탕하고 자기과시적 행동과 낙관적 사고관이 배우자에게는 오히려 매력적으로 인식되다 보니 “배우자선택”의 원리로 인해 자손을 남기는데는 성공하더라는 독설을 “행운에 속지 마라”는 책에 언급했었는데, 심층미생물 이야기를 들으면서 딱 그 생각이 나지 뭡니까?

다름 아닌 주식시장에 임하는 투자자로서 시시각각 범람하는 정보들에 대해 우리가 진화해서 적응해온 방식 그대로 “속도전”에 최적화되어 받아들이고 처리하기 시작하면서 모든 문제가 시작하고 있는건 아닌가 하는겁니다.

분명 2-3년 이상을 바라보고 달달이 매입하겠다 계획한 주식을 날마다 hts로 가격추세를 바라보고 있으니, 조금이라도 오르면 재빠르게 팔아서 이득을 확정하고 싶은 마음이 확 일어나고, 조금이라도 빠지면 내가 왜 이 주식을 샀을까 후회하며 처음에 세웠던 장기계획이 별다른 문제가 없어도 밑도끝도 없이 의심하고 회의하기 시작하는 버릇이 조심하려 해도 자꾸 생깁니다. 그런 배경에는 우리들의 유전자에 새겨져 있는 “속도만이 살 길이다”라는 교리가 그렇게 명령하고 있는건지도 모릅니다.

이런 본능을 제대로 갈무리하지 못하면 날마다 자기가 보유하고 거래하는 주식 생각에 일상생활이 잠식당하는 저주에 신음할 수 밖에 없고, 실적 또한 결국엔 망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종국적으로는 “나는 주식하면 안되는구나”라는 자괴감과 함께 주식인생을 포기하게 되는 결과를 맞을수도 있는거지요. 이런 괴로움이 처음에 예상했던 것보다 어마어마하게 크다는 걸 요즘 크게 느끼고 있습니다. 당장 거래현황에서 회전율이 말도 못하게 올라가 있더라구요.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이렇게 본능이 강요하고 있는 속도전 교리를 극복하고, 이성과 합리성이 제시하는 더 느린 시간대를 살며 오래오래 생존할 수 있는 투자전략을 지켜낼 수 있을까,,, 어차피 진화의 결과로 빠르고 민첩하게 반응하는 패턴이 내 본능에 새겨져 있다면, 그걸 억지로 느리게 만드려는 시도는 효과가 없을겁니다.

첫번째 생각할 수 있는 대안은 주가의 움직임이 아닌 다른 것에 주의를 기울이는 겁니다.

기왕에 하루 24시간을 1분1초로 쪼개어 급박하게 살고 있는 이 시간 중에 내 주식이 오르는가 내리는가 하는 것이 아닌 다른 것을 바라보고 생각하는 것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이는게 더 효과적인 대안일겁니다. 내 주식의 가격추세에 대한 고민 대신 시장 전체를 조망하고, 과거의 위대한 대가들의 행적에서 내가 배울건 무엇인지를 탐구하며,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앞으로 어떻게 투자할까를 고민하는 것에 시간과 집중력을 할애한다면, 이런 유전자 레벨에서 기인하는 조급증을 관리하는 데 도움이 될것입니다. 그렇게 다양한 공부를 하는 투자자가 종국엔 승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찰리 멍거도 상대성이론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알기쉽게 강의해줄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공부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런 생각은 더 확고해집니다.

그걸 위해서라도 주식시황 그 자체에 대한 정보가 활발히 유통되는 환경은 피하는게 도움이 될겁니다. 다행히 저는 전업투자자가 아닌 관계로 일상의 대부분을 직장에서 일하거나 집에서 가족과 보내는데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다 짬이 나면 책을 읽고 이런저런 글을 쓰는데 시간을 쓰고 있구요. 이런 패턴의 시간활용이 실제로 제 조급증을 많이 달래주는데 효과가 있었습니다.

두번째 할 수 있는 대안은 아예 그런 단기간의 변동성에 관한 정보 자체를 차단하거나 줄이는 방법일겁니다.

제가 듣고 있는 팟캐스트들 중에 날마다 하루에 두번씩 시황을 예측하거나 설명해주는 방송이 있는데, 이걸 들을때마다 제가 들고 있는 주식을 팔거나 더 사거나 하려는 조급함이 어느새 상승해있는걸 발견하고는 합니다. 그런데, 정작 이렇게 하루도 아닌 반나절 단위로 시황을 열심히 예측하고 설명해주는 내용을 그동안 열심히 들어도 뭔가 도움이 되지는 않는거 같아서 앞으로는 이 방송을 팟빵에 나오는 제목들만 보고 그냥 넘어가든지, 아니면 나중에 봐서 아예 구독취소를 해서 정리를 하든지 해야 할거 같아요.

이렇듯, 투자를 하는데 있어서는 우리 인류가 수만년, 수십만년 진화시켜온 민첩성 위주의 판단전략인 이른바 “휴리스틱”이 오히려 장애물만 됩니다. 시간이 걸려도 완벽하고 꼼꼼하게 결함을 짚어내고, 충분히 숙고하고 차분하게 결정하는 “이성”과 “분석”이 투자를 할 때에는 더 결정적인 무기가 되지요. 지금까지의 진화방향과는 전혀 반대의 새로운 환경이 우리앞에 놓여져 있는겁니다.

거기에 새롭게 적응하는 사람만이 투자라는 새로운 환경 속에서 승리할 수 있는거지요. 이제는 좀 더 많이 느려진 시간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투자성공을 위해 꼭 필요한 조치가 되었다는 게 길고 난삽하게 쓴 제 글의 결론이 될것 같습니다. 그렇게 끊임없이 배우고 연습하고 반복하면서 느린 시간대에 사는 것에 익숙해지기 위해 오늘도 이렇게 열심히 책을 읽고 이 글을 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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