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협한 범주화(narrow framing)

경제학자가 동료 경제학자에게 내기를 제안했습니다. 사실, 정말로 돈을 따려고 제안한 아니고,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걸 증명하기 위해서 예를 들려고 그랬다고 합니다. 내기를 제안한 사람은 신고전주의 경제학의 태두인(저는 경제학을 몰라서 그렇다는 말만 들어봤습니다) 새뮤얼슨이고, 내기를 제안받은 동료 경제학자는 E. 캐리 브라운입니다.

“지금 동전을 던져서 앞면이 나오면 200불을 자네에게 주겠네. 그런데, 뒷면이 나오면 100불을 나에게 줘야 하네. 어떻게 하겠나?”

제안을 받은 캐리 브라운은 손실회피의 본능을 잘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인간은 수익에 대한 욕망보다도 훨씬 더 민감하게 손실에 대한 공포를 느끼기 때문에 상당수 사람은 기댓값이 플러스인 이 내기에도 쉽게 100불 이익인 내기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죠. 캐리 브라운의 대답은 여기에 더해 하나의 단서를 더 붙힙니다.

“단 한 번만 던진다면 200불의 수익에 대한 기대보다 100불의 손실이 더 고통스러우므로 내기에 응하지 않겠네. 하지만, 이 동전던지기를 100번 반복하는 거라면 안전하게 수익을 낼수 있기에 내기에 응하겠네”

이 내기에 대한 일화는 폴 새뮤얼슨의 논문에 언급되는 일화라고 합니다. 그러나, 폴 새뮤얼슨은 이 일화에서 캐리 브라운이 잘못된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가 어떤 실수를 저질렀는지에 대해 새뮤얼슨은 “한 번의 내기를 거절한다면, 여러번의 내기도 거절해야 한다”며 공박합니다.

새뮤얼슨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캐리 브라운이 100번의 동전던지기를 하는 대신, 99번의 동전던지기를 수행하고, 마지막 100번째의 동전던지기는 캐리 브라운이 할지 말지 선택을 그가 스스로 결정하라고 해보자는 겁니다. 그렇다면, 99번의 동전던지기를 한 다음에 마지막 100번째 동전던지기는 그 자체가 단판 승부가 되기 때문에 캐리 브라운이 처음 말했던 대로 한 번만 던지는 승부를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대입하면 그는 99번만 동전던지기를 하는게 타당한 결정입니다. 그럼 이번엔 98번에 마지막 99번째는? 이런 식으로 해나가다 보면 결국, 100번의 동전던지기를 모두 거부하는게 마땅하다는거지요.

새뮤얼슨의 이러한 논문 속 일화를 찬찬히 생각해보면 뭔가 좀 이상하다는 위화감을 느낄 수 있는데, 그런 위화감을 명쾌하게 지적한 사람이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선택”을 쓴 리처드 H. 탈러입니다.

탈러는 예의 일화에서 캐리 브라운이 잘못된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는 것까지는 동의합니다. 합리적으로 본다면, 단판 승부와 100판 승부의 결과를 다르게 받아들이는 것이 모순이라는 점은 새뮤얼슨과 같은 의견입니다. 하지만, 새뮤얼슨도 해당 논문에서 계산에 오류가 있었다고 지적하는데,  100번의 동전던지기는 단판승부와 동등한 종류이자 같은 이벤트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겁니다. 100번의 동전던지기를 일일이 쪼개어서 99번, 98번 이런 식으로 차감해서 다루는 계산은 이미 잘못된 것이라는 거죠.

100번의 동전던지기는 그 자체로 일련의 연속성을 가지고 있으면서 하나로 연결되있는 통일된 포트폴리오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하는 것이지, 단판승부를 100번 따로따로 시행하는 개별적 이벤트로 착각하면 안된다는 겁니다. 이렇게 일련의 연결된 사건들을 하나로 보지 않고 각각의 개별사건들로 인식하게 되면서 확률과 기댓값을 계산하는데 잘못된 편견을 가지게 되는 현상을 편협한 범주화(narrow framing)이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편협한 범주화의 오류에 빠지게 되면 단일 포트폴리오 내에서 충분히 상각될 수 있는 위험이나 수익을 전혀 사라지지 않은 것처럼 부풀려서 평가하게 되면서 지나치게 공격적으로 위험을 감수하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위험회피성향에 빠져서 소심한 선택을 하게 되는 편향이 강화되기 시작하는데, 그렇게 강화되기 쉬운 편향의 대표적인 것이 House money effect(공돈 현상)과 앞서 언급한 근시안적 위험회피 현상입니다.

경제학 전공을 하지도 않은 제가 이렇게 시간을 들여서 이런 경제학 용어들을 익히고 공부하는 이유는, 이러한 편합한 범주화가 중요하게 작용하는 곳이 다름아닌 주식시장이기 때문입니다.

1889년부터 1978년까지의 90년 동안 무위험자산인 미국 국채와 주식시장의 수익률을 비교해보면 연평균수익률이 약 7%정도 차이가 납니다. 당연히 주식이 위험자산이라는 걸 감안하더라도 이정도의 평균수익은 엄청난 겁니다. 복리의 마술을 끼얹기 시작하면 차이가 급격하게 벌어지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굳이 7%의 차이, 즉 위험수익률이 아닌 5%나 3%의 위험수익률에서도 사람들은 국채시장을 버리고 주식시장을 선택하는게 당연할 겁니다.

경제학자 메라와 프렛스콧은 사람들이 합리적으로 행동한다고 전제했을 때 어느정도의 수익율 차이, 즉 위험수익률까지 내려갔을 때 사람들이 주식시장이 아닌 국채시장을 선택할까를 계량화 해서 노벨 경제학상까지 수상하게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노벨상을 받았다는대목이 아니라, 그 충격적인 계산결과입니다.

사람들이 합리적으로 행동한다고 전제한다면, 주식과 국채금리의 차이가 불과 0.35%, 즉 위험수익률 0.35%만 보장되더라도 안전자산인 국채를 포기하고 위험자산인 주식을 하는게 이익이라는 결과가 나온 겁니다. 하지만, 현실사회에서는 주식의 예상 위험수익률 5-6%정도로만 떨어져도 공포에 떨며 너나할거 없이 주식을 팔고 국채를 삽니다. 이정도면 비합리적이다는 걸 넘어 “미쳤다” 라고 해도 되는 정도로 충격적인 결과인거죠.

도대체 왜 대다수 사람들은 위험을 고려하고 나서도 충분히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는 자산을 버리고 안전자산에 집착하는가, 이걸 도저히 설명하지 못해 당시 경제학자들은 이를 퍼즐, 즉 주식프리미엄 퍼즐(equity premium puzzle)이라고 부르게 됩니다. 탈러는 바로 이 주식프리미엄 퍼즐이라 부르는 수수께끼를 편협한 범주화에 의해 강화되는 근시안적 손실회피(또는 근시안적 위험회피)로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충분한 시간을 들여 장기간으로 관찰하면 충분히 높은 확률로 주가지수나 개별종목 할 것 없이 주식은 안전자산 대비 훨씬 높은 수익률을 기록한다는 걸 부정할 사람은 없을겁니다. 앞서 동전던지기의 비유로 친다면 기댓값이 유리한 동전던지기를 100번 이상 반복하는 이벤트에 해당합니다. 이런 게임에 참가하지 않을 바보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러한 “동전던지기 100번”이라는 이벤트를 “동전던지기 한판승부”x100회 라는 각각 개별적인 이벤트로 편협하게 바라보는 편견에 빠졌을 때입니다. 한마디로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기간 동안 수시로 “현재 수익율”을 체크하고 그 수익율에 전전긍긍하거나 공돈이 생겼다고 기뻐하는 동안에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그렇게 현재 수익율을 시도때도 없이 체크할 때마다 발생하는 현상은 두가지 입니다.

첫번째는 장기간으로 보면 10%의 수익율이 나오는 주식을 계속 쪼개서 자꾸 체크를 하면 수익율, 즉 이길 확률이 계속 50%에 수렴하게 되면서 제대로 된 수익율을 바라볼 수 없게 되는 현상이지요. 실제로 1년 내에 10%의 수익율이 나오는 펀드에 가입을 했을 때 한 달에 한번씩 수익율을 체크한다면 수익율이 얼마가 나올까요? 월 0.8%씩 꼬박꼬박 수익을 내는게 아니죠. 수익율 자체도 들쭉날쭉할 뿐 아니라, 1년 중 수익을 내는 달이 6-7개월 정도에 불과할 겁니다. 그 애매하고 미세한 변화가 쌓이고 쌓여서 1년 10%수익율이 나오게 되는 건데, 그걸 보지 못하게 된다는 거지요.

두번째는 그렇게 일련의 사건을 하나로 보지 않고 따로따로 보면서 현재 수익율을 자주 체크하면 예의 단판승부 동전던지기 때 극대화 되던 인간의 본능인 근시안적 손실회피심리가 불이 붙기 시작한다는 겁니다. 원래 인간의 본능이라는 게 그래요. 만원 따는 거보다 500원 프는게 훨씬 속이 쓰리고 내 마음에 불을 붙히는 법이거든요.

주식에서 장기투자를 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것들, 하나로 말하면 편협한 범주화를 저지르지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인간의 이런 본능과 오류를 수정하고 정말 컴퓨터처럼 합리적으로 행동하고 결정하는게 가능한 인간이라면 애써 장기투자를 하지 않아도 계산만으로는 충분히 괜찮은 수익률을 올릴 수 있습니다. 시스템 트레이딩이나 인공지능으로 트레이딩을 하는게 그런 장점이 있을 수 있는거죠. 그렇게 기계의 힘을 빌려 트레이딩을 할 게 아니면, 장기투자가 제일 마음이 편하고 효과가 좋은 투자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편협한 범주화가 극대화 시키는 건 근시안적 손실회피심리만 있는게 아닙니다. 그 반대로 지나치게 비이성적으로 공격적인 위험감수와 고수익을 추구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단타 매매나 초단타 매매를 하며 리스크를 시장의 평균적인 수준 이상으로 감수하게 만드는 것 또한 인간의 편견에서 출발하는 실수일 수 있습니다. 공돈심리(house money effect) 또한 자주 수익율을 확인할 수 밖에 없는 단타매매에서 강화되기 쉽습니다. 어차피 변동성에 기대어 어느 순간 통계적인 기댓값 이상의 대박 수익을 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럼, 이렇게 생긴 공돈은 여러분의 자산의 일부인 걸까요? 아니면 계좌에 있는 내 돈과는 별개의 돈인 걸까요? 당연히 피같은 내 돈이요 밑천의 일부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렇게 생긴 공돈을 “없어져도 그만인 돈”으로 인식하기가 쉽다는 겁니다.

갑자기 생긴 이 “없어져도 그만인 돈”을 가지고 채권에 따박따박 넣어놓고 국채이자를 바라보는게 사람의 인지상정일까요? 아니면 장기투자 중인 곳에 돈을 합쳐서 조금이라도 더 나은 수익율을 거드는 데 들어가는게 통상적인 일일까요? 아니죠. 그렇게 우발적으로 생긴 돈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맛있는 거 먹고 게임기 하나 더 사는 데 쓸 생각을 먼저 하는게 보편적인 본능입니다. 설령 투자를 해도 더 호기롭게 내지르는데 투자를 하게 되겠죠.

그렇게 강화되는 공돈심리가 활개를 치고 돌아다니는 만큼, 충분히 통계적으로 안정적인 고수익을 올릴 수 있는 기회는 고스라니 박탈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그래서, 부처님 수준으로 마음을 다스릴 자신이 없는 사람이라면, 돈 집어넣어놓고 1년이고 2년이고 안보는게 오히려, 아니 생가보다 훨씬 성공할 확률도 높고 더 크게 수익이 날 수 있는겁니다.

이렇게 주식투자를 하면서 쉽게 저지르는 두 가지 실수, 즉 지나치게 공격적이고 호기롭게 가든지, 지나치게 소심하고 조급해지는 손실회피본능에 빠지는 이유는 둘 모두 일련의 사건들을 하나의 이벤트로 파악하느냐, 그렇지 않고 편협한 범주화에 빠지게 되느냐에 달려있다는 걸, 천재적인 경제학자들의 복잡한 계산식을 하나하나 공부하지 않고도 이들의 역사를 재구성하는걸 통해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결국, 장기투자를 하고, 주식의 일반적인 위험프리미엄에서 지나치게 초과하는 수익율을 내려고 무리하거나 하지 않는다면 충분히 주식을 통해 돈을 버는게 가능하다는 걸 수학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는 건 큰 소득이라고 생각합니다. 거꾸로 말하면, 지금 2018년의 이 순간에도 전세계 인구의 절대 대다수가 여전히 심각할 정도의 불합리함에 빠져서 자신의 전체 자산 대비 터무니없이 높은 비율을 안전자산에만 집착하고 있기 때문에 주식 투자자들에게는 여전히 그만큼의 기회가 널려있는 겁니다.

타인과 대중의 불합리성을 먼저 깨달아서 자기 자신을 합리적으로 제어함으로서 그 틈을 공략하는 것, 그리고, 그걸 통해서 안정적인 수익율을 지금 이순간에도 누릴 수 있다는 기쁨은 합리적인 방식으로 고위험상품에 투자하는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정말 큰 기쁨이 될 것이라 확신하며, 오늘도 다들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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