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팔자

사주명리, 사주팔자, 팔자명리 같은 말들로 불리우는 운명철학은 우리 생활에 굉장히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때에는 관료를 뽑는 과거시험 중에 음양과라는게 경국대전에 명시되 있었을 정도입니다. 음양과는 천문학 지리학 명과학 3개의 과목이 있었고, 시험도 두 번에 걸쳐서 소수정예의 인원을 뽑았습니다. 뭐, 결혼할 때에도 신랑신부 얼굴이 아니라 사주단자를 보내는게 먼저였을 정도니 말 다한거죠.

그만큼 뿌리깊게 내려온 사유체계가 그게 실제로 존재하는가 아닌가를 과학적으로 검증해서 실제하지 않는다는 걸 입증한다고 해서, 쉽사리 사라질거라 생각하는 것 자체가 사실 무리입니다. 반대로, 이게 과학적으로 정말 존재하는 법칙이라는게 밝혀진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렇게 되면 인류사회에 어떤 결과가 발생하게 될까요? 그때부터 우리 인류는 어떻게든 좋은 생년생월생시에 자식이 태어나게 하려고 열심히 제왕절개를 하게 될겁니다. 그리고, 기업체에서는 신입사원들의 사주를 매우 중요한 평가지표로 채택하게 될테고, 지원자들이 자신의 사주팔자를 속이는 일로 인해 사회적 혼란이 벌어지지 못하도록 국가가 나서서 산부인과 병원의 출생기록을 엄격하게 관리하기 시작하겠죠.

흔히들 언급하는 레파토리인 “사주는 태어나는게 전부가 아니다, 개척하는 거다”라는 식의 주장도 힘을 잃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일단 사주팔자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걸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 있게 된다면, 그게 어느정도까지 극복이 가능한지를 계산하는 건 일도 아니겠죠. 결국, 사회 전체의 관점에서 보면 개개인이 사주팔자를 극복하는데 들어가는 노력과 열정도 “쓸모없이 낭비되는 사회적 비용”의 일부에 지나지 않게 됩니다. 그냥 사람들의 사주팔자를 보고 될놈은 키워주고 안될놈은 그냥 내버려 두는게 사회적으로는 이득이 되는거지요.

결국, 사주팔자의 존재는 과학적으로 검증을 해서 실제로 존재하는 법칙인가 아닌가를 가려내는게 핵심이 아니라는 걸 깨달아야 합니다. 인간이 다른 동물들보다 위대하고 전 지구를 지배할 수 있게된 결정적인 차이점은 “존재하지 않는 것을 보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침팬지나 유인원 종들이 기껏 수십명 단위의 친족사회를 꾸려가고 협업을 통해 이뤄낼 수 있는 반면, 수백만명 단위로 공동생활을 할 뿐 아니라 하나의 목표를 위해 조직화 될 수 있는 인간의 조직화 능력의 근원이 바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보는 힘이라는 거지요.

누군가 조그마한 쇠쪼가리, 종이 쪼가리를 내밀면서 내가 당장 먹고 입고 쓸 수 있는 식량이나 옷을 달라고 할 때 그 쪼가리들이 나로 하여금 내가 내주는 재산에 해당하는 가치만큼의 원하는 무언가를 교환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존재해야 경제시스템을 돌아가게 만들고, 거대한 도시나 공동체 안에서 분업화된 경제활동을 가능하게 해줍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범죄행위를 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손해를 끼쳤을 때 이를 자력구제하지 않아도 여기에 대해 그 범죄자가 댓가를 치루게 될거라고 믿을수 있는 것 또한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 “법”이라는 존재에 대해 마치 진짜로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보고 인식할 수 있기 때문에 수십만 수백만의 생명체가 부대끼고 살아도 학살극이 빈번하게 벌어지지 않는 거지요.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생판 남이나 이방인이 찾아와서 무슨 거래를 하더라도 그 사람과 내가 같은 신을 믿고 있다는 걸 확인한다면, 그 신이 실제로 존재하는지와는 아무 상관이 없이 그를 신뢰하고 같이 무언가 거대한 협력을 해낼 수가 있기 때문에 국가 단위의 거대공동체가 유지될 수 있는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그렇다면, 이 사주팔자라는 것은 그것이 과학적으로 성립하는 법칙인가를 따져야 하는게 아니라, 그것이 현재 우리 사회에서도 여전히 유용하고 필요한 개념인가, 조선시대나 고려말 시절에 꼭 필요했던 것처럼 지금도 필요한 개념인가를 고민하는게 진짜 제대로 된 접근일 수 있는겁니다.

인간이 위대한 점은 앞서 말했듯이 존재하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능력이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능력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존재하지 않는 것,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능력이 항상 좋은 작용만 하는게 아닙니다. 성경에서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 열매를 따먹고 나서 일어난 변화가 바로 그 부작용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선악과를 따먹고 아담과 하와가 모든 것을 밝히 보게 되자 벗거벗은 자신의 한심한 처지를 비로서 인식하게 됩니다. 그로 인해 그들은 하나님 앞에 제대로 나아올 수 없어 수풀에 숨게 됩니다. 밝히 보는 능력으로 인한 저주는 그 뿐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향해 “평생 땀흘려 일하게 되리라”는 저주를 내리는 장면을 살펴보면, 내가 니들에게 이러이러한 저주를 내리겠다는 방식이 아닙니다. 아담이 얻게 된 능력으로 인해 땅이 저주를 받게 된다는 구절이 있는데, 아담과 하와의 눈으로 볼 때 열매나 식량을 얻지 못하게 되는 미래의 상황을 인식하게 됨으로, 끊임없이 미래를 대비해 현재를 희생해가며 땀흘려 일하게 된 계기 역시 보이지 않는 미래,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미래의 위험을 인식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이렇게 보이지 않는 존재, 존재하지 않는 개념을 보고 인식할 수 있게 되면서 생긴 부작용은 또 있습니다. 다름아닌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습관입니다. 자신이 미래를 인식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 다가오는 미래를 열심히 땀을 흘려가며 일을 해서든, 뭘 해서든 간에 통제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걸 통제할 수 없을 때 느끼는 박탈감과 고통을 상상을 초월하는 좌절감을 가져다 줍니다.

그런 좌절감과 고통을 해결해 주기 위해서는 현재 자신의 처지의 초라함과 앞으로의 운명의 흐름을 깔끔하게 설명하고, 자신의 인식에서 오는 불안을 달래줄 수 있는 설명체계가 필요한 것이죠. 그게 고려말 조선 초에서는 성리학의 도입과 함께 명리학의 발전이 된 것이고, 조선시대가 막 끝난지 100년도 안된 지금의 시점에서 이런 설명체계를 대체할만한 다른게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사람들이 여전히 이를 필요로 하고 있는거겠죠.

그러니, 여전히 아이들의 이름을 지을 때 사주팔자를 보완할 수 있는 이름을 고르거나, 결혼을 고민할 때에도 여전히 배우자의 사주팔자를 고민하는 궁합을 봐주는 철학가들이 성행하는건 전혀 이상한 현상이 아닌겁니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우리 사회에서 순기능을 하고 역할을 다하고 있는거라고 볼 수 있는거죠.

다만, 이런 사주팔자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편익이라는게 “나의 미래(운명)를 통제할 수 있다”는 느낌, 또는 그런 인식 이상이 되는 경우에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거겠죠. 실제로 그런 느낌이 주는 편안함과 인생에 대한 자신감에서 좀 더 적극적인 태도와 행동변화를 얻어내는걸 넘어서 정말로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고 착각하는 “통제의 환상”에 빠져서 삶에서 유연성과 겸손함을 상실해 버린다면 그것만큼 불행한 비극도 없을겁니다.

그래서 사주팔자를 가지고 돈을 버는 운명철학가들이 늘상 강조하는 “사주팔자는 타고난게 아니라 개척하는 거다” 라는 안전선이 정말 중요한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사주를 보면서 위안을 얻고 자신감을 가지면서도, 자칫 자신을 파멸의 구렁텅이로까지 인도할 수 있는 “통제의 환상”이라는 심리현상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마법의 주문이 그거니까요. 이걸 뒤집어서 생각해보면 “사주를 너무 믿고 노력을 하지 않아도 패가망신할 수 있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거든요.

요는, 사주팔자가 진짜로 존재하느냐 아니냐를 가지고 그걸 맹신하는 주변사람들과 지리하게 논쟁하면서 싸우지 말고, 그 저변에 깔려있는 심리학적인 수요를 이해하고, 자칫 부작용으로 작용할 수 있는 통제의 환상에 주변사람들이 빠지지 않도록 서로 조심하고 조심시키는 방향으로 주의한다면 주변에서 이런걸로 패가망신하는 사례를 조금이라도 더 막을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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