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에서 주가가 결정되는 건 시장에 참여하는 참여자들이 어떤 가격을 생각해서 서로 거래하는데 합의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결국, 주식의 본질적 가치나 적정가치가 있는게 아니라, 시장참여자들이 생각하는 가격들이 어우러져서 결정되는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과정을 미인대회와 같다고 비유합니다.
나 혼자만의 생각이나 결론이 중요한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각자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통해서 결정되는 것이 미인대회 우승자를 뽑는 과정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행동경제학자들이 이런 과정을 모방해서 현실사회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추측해보기 위해 아래와 같은 설문을 내서 답을 내보라고 요청했습니다.
”0에서 100까지의 숫자가 있다. 이중 당신을 제외한 모든 참여자들이 선택한 수들을 평균을 낸 값의 3분의2를 예측하라. 이 값에 가장 가까운 수를 선택한 사람에게 해외여행권과 비행기 티켓 2장씩을 우승선물로 주겠다”
실제로 파이낸셜 타임즈 신문을 통해 이와 같은 퀴즈가 나왔고, 수많은 신문 독자들이 이 문제에 대한 자신들만의 답을 편집부에 보내왔습니다.
일단 단순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0-100까지 수를 사람들이 무작위로 고를거라고 생각할겁니다. 그렇다면, 평균은 50, 이 50의 3분의2라고 한다면 33 일거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 1st thinker
그 다음 한번 더 머리를 쓰는 사람이라면 대다수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고 답을 33이라고 쓸거라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를 제외한 사람이 33이라 써낸다고 한다면 33의 3분의2인 22라고 써낼 수 있을 겁니다. -> 2nd thinker
여기서 머리를 더 굴리는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22의 3분의2, 그것의 3분의2, 그것의 또 3분의2,,, 사실 경제학을 전공한 사람이라면, 이렇게 한없이 경쟁상대의 패턴에 대응하는 걸 계속 해나가다 보면 마지막에 어떤 경쟁자들도 더이상 움직일 수 없는 균형상태에 다다른다는 이론을 알고 있을겁니다. 이른바 내쉬균형이라는 거지요. 그렇다면 답은 0이 될겁니다.
물론, 수많은 응답자들 다 다양한 생각을 가지고 저마다의 숫자를 답으로 보냈습니다. 물론, 33보다 높은 수를 써낸 사람은 별로 없었죠.그렇게 어떤 답을 냈는지를 분포로 그래프를 그려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그래프를 보면 아무런 생각도 없이 자기 느낌이나 랜덤으로 수를 냈던 사람도 작지만 상당한 비율을 차지했고, 장난으로 100에 가까운 수를 쓴 사람들도 꽤 있었습니다. 물론, 장난으로 낸 사람은 실제 주식을 할때에도 이런 장난을 할 리가 없으므로 배제하더라도, 정말로 아무 생각 없이 느낌만으로 이런 결정을 내리는 경우도 상당수가 있을수 있다는 건 고민해봐야 할겁니다.
그 뿐 아니라, 딱 한 번 잠깐 생각해서 즉각적으로 판단하고 행동에 옮기는 사람, 1st thinker들도 25%에 가깝다는 사실, 사람들이 모두 자기처럼 경제학을 전공해서 내쉬균형을 알고 있으며, 그에 따라 합리적으로 움직일거라는 과대망상에 빠져 0이나 1을 답으로 낸 사람 또한 1st thinker에 못지 않을만큼 많았다는 결과도 매우 인상적입니다.
설문자들 중에 압도적 다수는 아닐지라도 30%에 가까운 가장 많은 수가 2nd thinker들이라는 사실, 현실사회에서 실제 균형점이라 할 수 있는 우승자의 숫자가 13으로, 2nd thinker와 econ들의 세상인 0 사이의 절충점 어느 한 부분에서 균형이 형성되더라는 사실에서도 실제 세상 돌아가는 이치의 한 단면을 들쳐볼 수 있을겁니다.
이런 행동경제학자들의 조사결과를 어떻게 주식시장에서 써먹을수 있을까를 고민해보다, 이번에 삼성바이오 사태의 전말을 보면서, 비슷한 움직임이 있었던 기억이 나더군요.
저번달 증선위에서 삼성바이오가 분식회계를 했다고 주장하면서 상장정지를 할지 안할지에 대해 심사를 예고한 사흘 전부터 삼바 주가는 크게 흔들렸습니다. 처음에는 온통 패닉 분위기였지요. 온라인 오프라인 할 거 없이 “스모킹건”이 있다고 공개한 박용진 의원의 발표나, 삼바 측에서는 아예 참석조차 하지 않는다는 기사까지 겹쳐서 당장이라도 상폐가 될것처럼 난리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를 오래 전부터 지켜보던 투자자들은 이게 쉽게 상폐가 결정될 수 있는 사안도 아니고, 서로 다퉈볼 여지가 굉장히 많다는 사실, 그리고, 설령 분식회계라고 하더라도 투자자에게 치명적인 손해를 끼치는 기업가치 훼손에 해당하는 사례가 아니기에 상폐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대중의 패닉에 편승해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거지요.
문제는 어디까지 가격이 떨어지면 매입을 할까 하는거였습니다.
1. 이틀, 사흘 연속 하한가로 갈 것이다 – 아무 생각 없이 휩쓸리는 사람들
2. 하루정도 하한가를 가고 언론기사들이 제정신을 차리기 시작하면 하한가가 풀릴 것이다 – 1st thinker
3. 다들 하한가를 노리고 달려들겠지만,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상당할 것이기에 20% 하락을 반복하는 정도에 그칠 것이다 – 2nd thinker
4. 하루쯤은 20% 정도 하락할 것이지만 그 다음에는 반등할 것이다.
5. 자기 돈 내고 투자하는 투자자들 중에 분위기에 휩쓸리는 사람은 거의 없을걸,,, 가격 변동은 미미할 것이다 – 경제학 신도
결과적으로, 확실히 3번과 5번 사이에서 가격이 형성되었습니다. 주가는 증권선물위원회가 심사를 위해 상장정지를 예고하기 사흘 전부터 20%정도 빠졌다가, 그날 오후부터 곧바로 회복해서 상장정지가 되기 불과 얼마전까지도 큰 폭으로 올라가게 됩니다. 물론, 이건 단일변수라는 것과 참여자들이 미처 이성적인 판단을 하기 어려운 단기간이라는 조건이 있었기에 가능한 움직임이고, 시장에서 가격이 결정되는 과정이 언제라 이와 같은 식으로만 돌아가는 건 아닐겁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합리적이고 냉정한 사고에만 천착되어서도, 분위기와 광기에 휩쓸려서도, 자기 자신만의 생각에 매몰되어서 자신의 이론만을 고집해서도 안되고, 그 사이에서 절충점을 항상 찾아보려 노력하고, 그걸 경험으로 체득하는 감각을 키우는 것이 주식 공부를 하는데 중요한 목표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해볼 수 있을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