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인즈가 보낸 편지

케인즈가 보낸 편지 6

경제학자로 알려진 케인즈는 투자자로서의 이력도 화려합니다. 젊었을때는 자신의 경제학 지식이나 경기예측력을 과신해서 위험한 투자를 하다 두 번이나 파산 직전까지 내몰렸지만, 이후 가치투자에 눈을 떠서 기록적인 실적을 올리게 되면서, 펀드매니져로서도 능력을 입증합니다.

그의 실적에서 특히 두드러지는 대목은 1차, 2차 세계대전, 대공황을 비롯한 기록적인 주가 대폭락들을 모두 거쳤음에도 자산을 몇배씩이나 불리는데 성공했다는 점입니다. 그에게 전권을 위임해주고 손실이 나도 신뢰를 거두지 않았던 킹스 칼리지에서는 결국 원금의 다섯배 이상의 수익을 냈지만, 그에게 재량권을 주지 않은 펀드들은 주가가 폭락하는 동안 어김없이 자산이 떨어졌으므로 많은 이들이 그를 의심하고, 왜 폭락장에서도 주식을 처분하지 않는지 항의했는데, 그 때 그가 항의하던 사람에게 쓴 편지가 있습니다.

1. 고가에 팔지 못했다면, 저가에 판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합리적으로 추정한 내재가치 밑으로 주가가 떨어진 순간,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기존 정책을 수정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습니다. 현재 포지션을 고수하는 방법 뿐입니다.

2. 시장이 바닥일 때 주식을 보유해도 수치(부끄러움)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시장이 하락할 때마다 끊임없이 손절매하는 것은 기관과 개인의 업무가 아니며, 책임은 더더욱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보유 주식의 평가액이 하락한다고 해서 비난받을 일이 아닙니다. 투자자의 주된 목표는 장기 실적이 되어야 하며, 오로지 장기 실적으로 평가받아야 합니다. 시장이 하락할 때 주식을 모두 남에게 떠넘기고 자신은 현금만 보유하겠다고 모든 사람이 생각하면 시스템 전체가 붕괴합니다.

3. 나는 우리가 실제로 특별히 잘못한 일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주식을 거래하다 보면 큰 폭의 등락은 피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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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라는 게 눈 앞에 똑똑히 벌어지는 것에 관심을 쏟는 건 어쩌면 당연한 본능입니다. 지금 내가 들고 있는 주식이 계속 가격이 떨어지고 평가손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데 평정심을 잃지 않는다는 건, 케인즈처럼 젊었던 시절 지옥을 몇 번씩이나 오가며, 산전수전 다 겪어본 베테랑 투자자 정도나 되어야 가능한 경지일 겁니다.

그럴 때일수록 의식적으로 보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 지금 내 눈에는 잘 들어오지 않는 것들이겠죠. “과연 나는 이 주식을 정말로 내재가치나 장기전망을 확신하고 샀던 건가”, “지금 내가 현실적으로 취할 수 있는 포지션은 무엇인가”, “이런 상황에서 주식을 보유하는 것이 정말로 부끄럽고 내 자존심을 망가트리는 행위라고 봐야 할 것인가”

사람들이 폭락장에서 계속 손실을 보면 가장 힘들어 하는게, 내가 손해를 봤다는 금전적 손실 자체가 아닙니다. 실제로는 주식의 평가가치가 떨어지고 있을 뿐이지, 그 손실을 현금화 해서 확정하지 않는 한, 손해가 난 게 아니거든요. 가장 나를 힘들게 하는 건 다름아닌 “자존감”이 아닐까 합니다. 내가 이따위(?) 주식을 매입했던 게 스스로 부끄럽고 한심하게 느껴지게 만드는 심리적인 압박 말이죠.

물론, 신용을 써서 주식을 거래한 사람은 심리적인 압박보다 당장의 금전손실이 더 급박하고 심각하므로, 이런저런 고민하기 전에 당장 신용훼손부터 해결을 해야겠지만, 원래부터 주식은 대게 자신의 여유자금으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잖아요. 그렇다면, 먼저 자신의 심리상태부터 케어하는게 진짜 해결책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정말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담아놓은 포트폴리오가 망가지고 있다고 해서 너무 실망해서 조급하게 손절하거나, 너무 많은 돈을 물타기에 써서 정작 좋은 기회가 찾아왔을 때 돈이 없어 기회를 살리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다들 힘 내시고, 냉정하게 좋은 투자 하시기를 응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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