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년 하반기부터 조선업 업황이 턴어라운드할 조짐이 보였을 때를 생각해보면 반도체 경기가 꺽일 것인가, 그래도 조금은 더 유지될 것인가로 갑론을박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수출실적에서 반도체를 빼면 성장하고 있는게 전혀 없다고 봐도 되는 좌절스러운 상황에서 반도체마저 꺽이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점점 사람들의 심리를 죄여오던 상황이었죠.
결국, 겨울이 들어서면서 주가는 전체적으로 크게 떨어지는 와중에서도 현중이나 대우조선해양 주가가 조금씩 오르고, 내년(2019년)에 성장이 예상되는 업종은 조선업 하나 밖에 없다는 이야기들이 언론기사에서 공공연하게 나돌던 상황에서도 조선주 주가들은 생각보다 크게 오르지 않고 잰걸음을 하고 있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다른 업종이 확실하게 유망한게 있다고 한다면 모르겠는데, 그런 업종이라는게 존재할 수 없는 미중 무역전쟁의 와중에서도 왜 조선업의 주가가 생각만큼 폭발적인 상승이 나오지 않았을까요? 아마도, 얼마전까지 수많은 투자자들이 수주절벽이라는 암담한 상황에서 돈을 날리고 “두번 다시 쳐다보나 봐라”고 되뇌이며 나가떨어지던 경험들이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게 아니면, 현중이 유상증자를 단행해서 주가가 단번에 30% 가까이 떨어지던 황당한 경험 때문일수도 있겠죠.
2.
팟캐스트 신과함께를 진행하고 있는 김동환씨는 과거 IMF 시절 본사를 떠나 미국에서 일을 하느라 외환위기의 참상을 온몸으로 겪어보지 않고 피해갔었다고 회상합니다. 그 뿐 아니라, 나중에 IT버블이 꺼지던 때에도 투자의 현장에서 비켜나 있었기 때문에 “크게 데인” 경험이 없다 보니, 젊은 후배들이 IT, 기술주에 대해 상담을 하면 그냥 질러 버려! 하는 돌파력이 나올 때가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외환위기와 IT벤쳐버블이 꺼지던 때 온몸으로 그걸 받아냈던 동료들은 IT의 I자만 나와도 손사래를 친다고 합니다.
신과함께 팟캐스트에서 나온 정채진 투자자도 과거 투자했던 현대자동차가 반토막이 났을 때를 회상합니다. IMF외환위기 때의 폭락을 정채진 투자자는 나중에 챠트로만 보고 이해했지, 그걸 직접 몸으로 부닥쳐보지는 못했기 때문에, 이게 얼마나 공포스럽고 고통스러운 건지를 실감하지 못했다가, 2008년 위기 때에 그걸 몸으로 느껴보니 그 절박함을 그제서야 느낄 수 있었다고 합니다.
현대차가 앞으로 잘될거라는 확신이 분명 있었고, 반토막이라는 것 자체에는 좌절스럽지 않았지만, 그런 위기가 주는 압박감은 어마어마했고, 결국 남겨두었던 현대차를 처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물론, 나중에는 그런 손실을 회복기에 부품주를 사서 훨씬 더 크게 수익을 냈다고 하지만, 작년 말처럼 세계경제가 기로에 설때마다 과거에 있었던 절망적인 상황의 가능성을 계속 염두에 두고 현금비중을 늘려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3.
그저께까지 제가 가지고 있는 종목이 LNG 및 조선 관련주 하나였습니다. LNG운반선 수주가 계속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보유하고 있었고, 실제 조금씩 오르고 있는 중입니다. 하지만, 이 종목의 주가를 견인하는 요소는 단 하나, LNG운반선 수주밖에 없기 때문에, 천연가스 시장에 변동이 생기면 주가도 함께 빠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실제로, 작년에 천연가스 가격이 폭등을 했을 때 해당 주가도 함께 올랐던 적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종목의 가격이 크게 떨어지는 상황이 왔을 때 크게 오를 수 있는 자산을 가지고 있는것이 포트폴리오의 안정성에 도움이 될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연가스 시장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공부를 하면 할수록 당분간 천연가스 가격이 계속 내려갈 확률이 매우 높다는 결론을 내리고 엊그제 관련 글을 썼었죠. 이 글에서 천연가스 선물시장에 관심을 가지고 계시는 선물시세까지 언급하시는 내용의 댓글을 봤습니다. 이게 뭔가 하고 알아보다 보니 ETN이라는 투자상품이 있더군요. 냉큼 ETN 거래신청을 하고 천연가스 인버스에 투자했습니다.
그런데,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니 이미 천연가스 가격이 최근까지 크게 떨어졌기 때문에 오르는 쪽으로 예상하고 움직이는 ETN투자자분들이 많더군요. 물론, 천연가스라는 상품이 원래 변동성이 높은 상품이기 때문에 단기적으로는 얼마나 오르거나 떨어질지 모르지만, 이미 제대로 된 혹한기 없이 겨울이 끝나가는 이 시점에서 지나치게 떨어졌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가격이 장기간 추세를 형성하면서 오를거라는 생각은 잘 들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왜 언론기사에는 천연가스 시세가 크게 올랐다는 작년 기사들만 주로 검색되어 나오며, 왜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앞으로는 오를것 같다”는 쪽으로 의견이 쏠려있는 걸까요?
작년에 친환경 에너지로서의 가능성이 집중적으로 조명되면서 여기저기 넘치는 공급에도 불구하고 천연가스 가격은 단기간에 두배 이상 뛰었던 걸 직접 몸으로 경험해본 사람들은 지금같이 빠지는 추세에서도 그 때의 경험을 몸에서 지우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오를거라는 이미지를 지우기 힘들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경우는 천연가스 가격이 그렇게 폭등하던 때에 천연가스 투자시장이라는게 HTS에 존재하고 있는지도 까맣게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편하고 순진한 마음으로 인버스에 덜컥 들어갈 수 있었던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드네요.
4.
도가 지나치게 큰 성공이든, 큰 실패든, 그런 경험을 한 사람은 아무래도 이성적이고 균형잡힌 판단을 하기가 쉽지 않을 수 밖에 없습니다. 대공황을 겪었던 사람들 대부분이 죽기 전까지 절대로 주식을 하지 않았던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고 상식적인 현상이겠지요. 하지만, 정말로 냉정하게 생각하면, 그런 경험들은 제대로 된 판단을 못하게 방해하는 아주 나쁜 경험이라고 볼 수도 있을겁니다. 문제는, 나 자신도 언제 어떤 방식으로 그렇게 도가 지나친 성공으로 오만방자하게 변할지, 아니면 쓰라린 실패로 지금보다도 더욱 소심해지면서 종국적으로는 주식투자 자체를 포기하게 될지 모르는 거지요.
그래서 그런 미래가 저에게 실현되 않도록 평소에 항상 생각해두고 있는 것이 두가지입니다.
첫째는 주식에서 진짜 승리자는 실패를 안하는(혹은 적게 하는) 사람이 아니라 크게 실패하지 않도록 위험관리를 하고, 실패에서 교훈을 얻을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명심하는 것(물론, 저같은 초보는 어떻게 하는게 진정한 위험관리인건지도 결론을 내지 못했습니다만 여하튼 위험관리만큼은 꼭 잊지 말도록 명심하고 있습니다.), 즉 적든 크든 실패를 했을 때의 상황을 항상 마음속에 이미지하면서 대비하자는 태도입니다. 저 자신이 한때 이런 실패의 경험을 했던 적이 있기 때문에 그 때의 기분과 상황을 항상 이미지화 하면서 당황하지 않도록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두번째는 현금입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계좌 안에 30%는 현금으로 놔두고 정말로 어려운 상황이 왔을 때, 구체적으로는 세계적인 경기위축으로 투자해놓은 상품들 전체 합산이 반토막 가까이 나는 그런 상황이 오기 전까지는 절대로 현금을 쓰지 않고 유지하자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습니다. 월급에서 일정분을 떼어서 투자하고 있는 상황이라, 지금 모여있는 자금은 정말 몇푼 되지도 않지만, 지금부터 이런 습관을 관철하고 구축해놓는게 나중에 정말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하지만, 솔직히 이렇게 잘난척 긴 글을 쓴다고 해서 이런 제 다짐이 정말로 100% 다 실천될 수 있을거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습니다. 상상만 해오던 위기의 순간 내 이성이 마비되지 않을거라는 걸 어떻게 장담하겠어요? 그저 그 때가 오면 이렇게 다짐하고 기도하는 제 심상을 혹여라도 기억하고 버티는데 힘을 보태주지 않을까 상상하면서 일기처럼 써보는 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