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때도 당시 외환위기에 대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과연 IMF 외환위기가 외국계 자본의 음모나 탐욕때문에 일어난 거라는 식의 주장이 타당한 건지, 국내요인과 외부요인 중 어떤 것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정리해야 하는지 객관적인 자료같은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마크 파버의 “내일의 금맥”을 읽으면서 그의 생생한 증언과 데이터를 읽게 되었네요.
아시아 국가들의 경상수지가 악화되고, 과잉설비와 투자가 문제되기 시작한 건 1990년부터였다고 합니다. 그런 거품이 실제로 90년대 초반에는 꺼질 수도 있었는데, 이걸 결정적으로 더 키우게 된 계기가 94년 멕시코의 외환위기였습니다. “멕시코는 포트폴리오투자에 지나치게 의존했기 때문에 외환위기에 빠졌다. 하지만, 동아시아 국가들은 직접투자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안전하다” 라는 신화가 그 때 만들어지기 시작하면서 거품이 이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차올랐다고 합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엔 캐리 트레이드, 즉 엔화약세로 값싼 엔화를 빌려서 투자하는 거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그전까지 늘어나던 경상적자를 동아시아 국가들이 해소하게 되면서 상황이 호전되었고, 이로 인해 동아시아 국가들의 불패신화가 더 크게 부풀려졌는데, 당시에는 세계 어디에도 동아시아국가만한 투자처가 존재하지 않았기에 이런 거품은 커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꺼져야 할 거품이 꺼지지 않고 확대되면서 97년이 되어서야 태국을 시작으로 처참하게 붕괴되기 시작했는데, 거품이 완전이 터져서 붕괴된 순간까지도 거기서 빠져나온 외국인 투자자들은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 붕괴를 “일시적인 조정”이라고 믿었던 것이지요.
결국, 97년 외환위기는 외국계 자본의 음모가 아니라 조정되어야 할 거품이 돌발적인 변수에 의해 조정되지 못하고 거짓된 불패신화가 들어서면서 동아시아 국가 뿐 아니라 이들 국가에 투자를 한 투자자들 모두를 함정으로 몰아넣은 비극인 겁니다. 사실, 그런 거품붕괴를 당한 당사자인 우리나라 국민들의 관점에서야 “우리가 잘못한게 뭐가 있는가?” 라는 반문을 던지는건 당연합니다. 당시 우리가 겪었던 고통이 얼마나 심각한 것이었는지야 우리가 제일 잘 아는 것이지만, 당시 위기를 일으킨 직접적인 기여를 한 게 외국인 투자자들이 자금을 빼가서라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겁니다. 동아시아 위기가 태국에서 시작해 확산되고 있는 기간 중에도 외국인 투자자들은 행복하게 투자를 계속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외환위기 이전까지 외국인 투자자들이 엄청나게 투자했다가 거품이 꺼지면서 망한 것을 생각하기는 어렵고, 그 이후 IMF의 권고를 이행하면서 받았던 고통에 주목하는게 인지상정입니다. 하지만, 거품의 붕괴는 해당 투자대상국의 국민들에게도 재앙일 뿐 아니라, 외국인 투자자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치명적인 재앙인 겁니다.
수십년이 지난 이제 와서 이걸 꼼꼼하게 따져야 하는 이유는, 이제 입장이 바뀌어서 우리나라 사람들 중 상당수가 해외투자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투자대상국이 과잉투자나 과잉설비가 심해지고, 경상수지 적자폭이 늘어나거나 부채 문제가 해결이 안되는 상황에서도 거꾸로 “여기야 말로 안전한 투자처다” 라는 신화가 생겨나기 시작한다면, 그때야 말로 수많은 사람들이 그런 신화에 도취되어도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하는 결정적인 국면일수도 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크게 놀랐던게 이런 신흥국 투자 거품이 붕괴되어 수많은 투자자들을 거덜낸 가장 최초의 사례가 다름아닌 미국이었을 뿐 아니라, 가장 빈번하게 거품이 끼었다 붕괴하면서 번번이 외국인 투자자들을 파산시킨 나라도 미국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게 수많은 외국인 투자자들을 끌어들이고, 파산시켜가면서 그들의 시체를 자양분 삼아 발전해가다 결국엔 패권국이 된 게 미국이라는 겁니다. 지금 중국에 대한 투자붐을 생각하면 딱 미국이라는 나라가 생겨나서 개척되가는 200년 전의 상황이 오버랩되는 듯 합니다. 그리고, 2019년 지금의 미국 또한 우리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미국 주식시장 말고 투자할 데가 어딨냐”는 불패신화를 점점 더 강하게 구축해가고 있습니다.
중국도 200년 전의 미국이 그랬듯이 숱하게 많은 외국인 투자자들의 시체를 비료삼아 점점 더 성장해가게 될겁니다. 마오쩌둥 시대의 중국이 정체되고 고립되있는 틈을 타서 동아시아의 여타 국가들도 성장의 기회를 독식해왔고, 마찬가지로 발전과 성장의 동안 수많은 외국인투자자들을 골로 보내버린 그런 역사가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중국이 그런 배역을 맡게 될거라는게 역사의 큰 그림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우리 투자자들이겠죠. 그렇게 썩어가는 시체가 되어 미국이나 중국의 경제발전과 국력확장의 비료가 되줄 것인지, 아니면 살아남아서 큰 수익을 올리며 살아갈건지는 다 각자 하기 나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