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계와 주식 – 1

과학에서 복잡계(complex system)라는 말은 엄밀하게 말하면 혼돈, 또는 카오스(chaos)라는 말과 완전히 다른 개념입니다. 카오스라는 말은 해당 시스템을 아무리 정밀하게 관찰해도, 어떤 측면에서 관찰을 해도 패턴이나 법칙성을 발견하지 못하는 시스템이고, 복잡계는 엄연히 일관된 원리와 원칙이 질서정연하게 상호작용하는 시스템입니다.

그런 복잡계를 왜 통상적인 물리법칙으로 간결하게 설명할 수 있는 단순계(simple system)와 구분해서 다루어야 하느냐면, 해당 시스템을 구성하는 구성요소들 사이에서만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게 아니라, 그 시스템을 둘러싼 외부환경과의 관계가 존재하고, 구성요소들 각각의 상호작용이 또 되먹임(feedback)을 일으키면서 본질적으로 모델링이 불가능한 시스템이라 그렇습니다. 시스템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되먹임을 하기 시작하면 원인이 결과가 되기만 하는게 아니라, 그 결과가 다시 원인이 되는 고리가 끝없이 이어지면서 자기발전과 진화를 하게 되는 거지요.

이렇게 되면 해당 시스템의 일부를 잘라내어서 부분을 이해한다고 해서 시스템 전체를 이해하는게 불가능해집니다. 설령, 시스템을 구성하는 모든 구성요소들의 행동과 상호작용을 모두 이해하고 있더라도, 시간에 따라 시시각각 진화하는 되먹임 고리가 조금만 이어져도 이를 모두 계산해서 예측하는게 불가능하게 됩니다.

왜 카오스도 아니고, 이런 복잡계라는 개념이 과학계에서 나오게 되었느냐면, 과학자들이 아무리 일정한 패턴이나 규칙성을 찾아서 미래에 일어날 이벤트를 예측하려고 용을 써도 안되는 일들이 계속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게 지진예측입니다.

과학자들이 전세계의 지진대를 이잡듯이 다 뒤져서 어떤 주기성이나 규칙성을 보인 지진발생을 확인해서 연구를 한다면, 그렇게 제한된 곳에서 제한된 조건 하에서나마, 지진 발생의 전조를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수많은 과학자들이 이잡듯 규칙성을 뒤져봤지만 한 사람도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는 수백년동안 20-22년 주기로 비교적 규칙적으로 지진이 발생해온 지역을 포착해서 이제 몇 년 안에 해당 지진이 발생할 것이라 예상해보기도 했지만, 결과는 과학자들의 일말의 희망을 농락하듯 전혀 지진이 발생하지 않았던 거지요. 한마디로 어쩌다가 우연히 그런 주기성이 있는것처럼 보였던 거지요.

하지만, 정말로 지진의 발생이 아무런 규칙성을 볼 수 없다고 한다면, 그건 카오스, 즉 혼돈이라고 부르지 복잡계라고 부르지 않을겁니다. 비교적 일관된 법칙성을 찾아볼 수는 있는것이, 주기나 시간에 따른 규칙성은 없는 대신, 지진의 강도와 빈도 사이에는 일정한 규칙성이 보이더라는 겁니다. 발견된 규칙성은 학자의 이름을 따서 구텐베르크-리히터(릭터) 법칙이라고 합니다.

{displaystyle !,N=10^{a-bM}}

a 라는 규모의 지진과 b 라는 규모의 지진이 있다면, 두가지 지진의 발생빈도 차이는 10에 해당 규모간 차이를 승한 값 만큼의 차이가 나더라는 겁니다. 즉, M4.0 규모의 지진은 M3.0규모의 지진보다 10배 드물게 발생하며, M2.0규모의 지진보다는 100배 드물게 발생한다는 거지요.

이렇게 중간 단계의 상호작용과 피드백 기전을 도저히 파악할 수 없지만, 어쨌던 관찰하는 기간 동안에 강도와 빈도 사이의 상관관계만큼은 일관성을 가진 함수로 표현하고, 예측할 수 있었던 겁니다.

이런 복잡계라는 개념을 가지고서만 제대로 접근할 수 있는 시스템은 비단 지진발생만 있는게 아니었습니다. 수많은 자연현상과 사회현상들이 이러한 복잡계라는 개념을 도입해야만 설명할 수 있게 되었고, 주식시장 또한 전형적인 복잡계시스템의 특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우리가 주식시장에서 과학적으로 제대로 예측가능한 패턴 내지 규칙성은 “언제 어떤 전조증상이 보이면 주가가 상승하거나 하락한다” 같은게 될 수 없다는 겁니다. 더 심한 건 뒤집어서 “후행적(retrospective)”으로 어떤 현상을 바라보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정확한 예측은 고사하고, 이미 발생했던 현상의 이유나 원인을 명확하게 설명하는것조차 불가능하다는 거지요. 대표적인 사례가 1987년에 일어났던 블랙 먼데이, 검은 월요일의 대폭락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당시의 대폭락의 원인을 프로그램 매매 때문이라고 분석하지만, 이것도 말이 안되는게 실제로는 주식 매매에 전산프로그램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던 나라의 주가 폭락이 미국의 폭락보다 훨씬 심했습니다. 심지어는 “주가가 내려가면 팔아라” 라는 프로그램만 있었던게 아니라 “주가가 내려가면 사라”고 프로그램되었던 포트폴리오 프로그램이 훨씬 많았었다는 사실까지 생각한다면, 도대체 왜 그런 대폭락이 있었는지를 설명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는 거지요.

이런 주식시장의 대폭락이나 갑작스러운 초 호황등도 예측하거나 원인분석이 제대로 불가능하다는 점을 뺀다면, 일정한 규칙성 안에 갇혀 있다는 점 또한 지진발생과 같은 특성을 보입니다. 2배 더 크게 움직이는 파도는 덜 크게 움직이는 파도보다 4배 더 드물게 움직이고, 3배라면 9배, 4배라면 16배 더 드물었다는 식의 “빈도와 강도의 승수관계”만큼은 통계적으로 유의성을 보였다는 점입니다.

이처럼 주식시장이 “복잡계”가 보여주는 것과 같은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는 지금까지의 관찰결과가 더이상은 사실이 아닌것 같다는 구체적인 근거나 사례가 나타나지 않는 한, 우리는 주식시장의 움직임을 선행적으로 예측할 수도 없고, 후행적으로 분석할 수도 없다는 걸 인정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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