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이 콘드라티예프 vs 어빙 피셔

니콜라이 콘드라티예프(Nikolai Kondratiev)는 러시아의 경제학자이자 관료였습니다. 인터넷에서 콘드라티예프를 찾아보면, 경기 사이클을 발견한 학자로 나옵니다만, 콘드라티예프 본인은 특정한 주기성의 경기순환론을 설파한 적이 없습니다. 경제학의 이론을 만들려고 한게 아니라, 단지 장기간의 데이터를 가지고 경험적으로 볼 때 장기파동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 자체를 증명하는 데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시 콘드라티예프가 경기에 장기적인 순환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 자체를 입증하는데 매달렸던 이유는, 역설적이지만, 경제에는 순환 같은거 없고 끝장날 일 밖에 안남았다는 자본주의 종말론이 당시 러시아에 대세를 점유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름아닌 볼셰비키들이죠. 대표적으로 트로츠키가 “자본주의는 가만 놔두어도 필연적으로 멸망을 향해갈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던 겁니다. 이른바 “보편적 위기”라는 말로 자본주의 종말의 필연성을 역설한 볼셰비키들과 논쟁을 펼집니다. 그런 트로츠키의 자본주의 보편적 위기론에 맞서 경제위기는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경기순환의 한 종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데이터를 통해 반박한 것이 콘드라티예프의 논문 “장기 순환파동( The Long wave cycle)”이었습니다.

물론, 콘드라티예프 외에도 비슷한 시기에 경기순환파동을 주장한 학자들은 많지만, 콘드라티예프의 장기파동론은 여러가지로 주목할 점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철저하게 경험적인 접근에 머무른 채 특별한 이론화를 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심지어는 그러한 장기파동의 주기가 정확히 몇년이라는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철저히 데이터들을 취합해서 경기순환이라는게 존재하는것 같다는 관찰결과를 입증하려는 데에만 노력을 했을 뿐, 규칙성을 찾으려는 시도나, 왜 그런 순환이 생기는지를 설명하려는 이론화에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자본주의에 위기가 거듭 일어나는 현상을 조사해본 결과 위기 역시 자본주의 순환사이클의 한 국면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확신하게 됐다. ,,, 나는 자본주의 사회의 동학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경제환경에 장기순환이 있다는 가정을 하지 않으면 설명이 안되는 현상을 자주 만났다”

둘째는 일차산품 및 제조물 가격, 임금, 금리와 같은 경제활동 뿐 아니라, 전쟁이나 혁명같은 정치적인 사건까지 정리를 해서 국면별 특징을 간추렸습니다.

관찰 결과 상승파동이 생겨나기 직전의 기간 동안은 기술발명이 활기를 띠고, 경제활동에 이러한 기술들이 적극적으로 반영된다는 것, 기업합병이나 폐쇄적이던 국가의 시장개방도 상승파동의 직전에 발생한다는 점을 발견했으며, 상승이 가속화되는 국면에서는 전쟁이나 혁명같은 거대한 정치사회적인 소용돌이가 자주 발생한다는 점도 발견합니다. 반면, 장기 사이클이 하락하는 국면에서는 전쟁이나 분쟁이 일어나는 횟수가 크게 줄어든다는 겁니다.

세째는 제조물 가격보다 일차산품 및 농업부문의 가격변동이 훨씬 크고 두드러진다는 점을 밝혀냅니다. 하락국면이 시작될 때 농산물과 일차산품 가격이 훨씬 빨리, 그리고 많이 떨어지는 반면, 제조업이나 금융업은 금리 하락이나 원자재 조달비용 감소 같은 상대적으로 유리한 자본축적 환경이 조성되기 때문에 하락 국면이 들어선 이후에도 상당기간 동안 호황이 지속되는 현상을 발견합니다.

 


 

이렇게 현실과 데이터를 바라보는 걸 중시하지만, 이론화 자체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던 콘드라티예프와는 정반대의 면모를 보여준 학자를 꼽자면, 단연 어빙 피셔를 꼽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빙 피셔는 경제분석에 수학을 동원한 거의 최초의 학자로서, 계량경제학의 시조라고 불릴 수 있는 위대한 경제학자입니다. 대공황 이후에는 부채과잉이 디플레이션을 일으키는 매커니즘에 대해 훌륭하게 설명한 논문들을 발표했고, 대공황 이후 한동안 주류에서 밀려난 고전주의 경제학파가 재기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던 계량경제학 저널을 창간하며 후학을 양성한 인물입니다.

이렇게 경제학에서는 없어선 안되는 위대한 인물로 추앙받지만, 뭍 사람들에게는 그가 대공황 직전에 했던 말 한다미 때문에 영원히 고통받고 있는데, 그가 무슨 말을 했냐면

“주가 상승은 계속될 것이며 미국은 번영의 새로운 고원에 도달했다”

이 말을 1929년 10월의 주가 대폭락 몇달 전에 해버린 겁니다. 문제는 10월의 주가대폭락이 벌어진 다음에도 낙관론을 수정하지 않고 “주식은 폭락했지만 투자신탁을 통한 주식투자는 여전히 안전하다” 라든지, “가까운 미래의 전망은 밝다” 라든지 계속 희망적인 발언을 쏟아내다, 그는 파국이 정점에 다다른 1933년이 되어서야 자신의 이런 낙관적인 전망을 바꾸게 됩니다.

말로만 망신을 당했으면 그나마 양반이지, 주식이 떨어졌으니까 저가매수에 올인하다 전재산을 다 날려먹고 집에서 내쫓긴 데다 낙담한 나머지 몸까지 망쳐서 결핵에 걸려 정말 비극적인 종말을 맞을뻔 하기까지 했으니 뭐 말 다한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절하지 않고 대공황 이후에도 수많은 업적을 남기고, 후학을 양성하며 결국에는 고전경제학파가 재기하는 주춧돌 역할까지 했으니 나름 대단한 삶을 산 영웅이라고 할수도 있다고 봅니다. 저같으면 그런 일을 당하면 절대로 일어날 수 없었을거에요.

왜 이런 천재적인 경제학자 어비 피셔가 이렇게 망신을 당했을까를 생각해 보면, 아마도 그가 “역사”에서 무언가를 배우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19세기 내내 얼마나 많은 파국이 미국 경제발전 동안 있었는지를 조금만 더 관심있게 공부했다면, 새로운 고원에 도달하는 경제 같은 헛소리를 꺼낼 마음은 생겨나지 않았을 테니까요.

 


 

경기가 특정한 시간차를 두고 순환한다는 게 경기순환론의 핵심입니다. 하지만, 그 주기라는게 정말로 규칙적이라거나, 그런 국면이 전환되는 걸 알수 있는 신호가 존재한다거나, 그러한 순환을 일으키는 확실한 원인을 밝혀냈다거나,,, 이런건 믿으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통계학자들이 괜히 그런 파동론이 근거가 없다는 연구결과들을 발표하는게 아니죠.

그래서, 저도 경기의 움직임을 순환, 사이클, 파동 같은 말을 써서 표현하는 것에 약간의 거부감이 있습니다. 그런 말들은 틀림없이 적용되는 어떤 절대적 인과가 존재한다거나, 이전 움직임을 확인하면, 앞으로의 움직임도 예측할 수 있는것처럼 오해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콘드라티예프라는 학자에 주목하게 된 이유도, 그런 식의 일반화를 하지 않고, 오직 경험적 연구에 집중해서 딱 내릴 수 있는 정도의 결론만 도출하는 금도를 지켰기 때문입니다.

반면, 정확성이나 엄밀성은 조금 떨어지지라도 전체적인 움직임을 도식화하거나 수학적으로 표현해서 이론화하는 데 집중하는 계량경제 같은 방향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정부가 경제정책을 결정하거나 경제학을 전공하지 않은 보통 사람들이 경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알아듣기 쉽게 이론화 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대공황과 주가 대폭락으로 인해 주류의 자리에서 밀려났던 고전경제학자들이 시간이 지나 다시 재기할 수 있었던건 그들의 주장이 100% 맞았기 때문이 아니라, 정부가 미처 대응하지 못했던 새로운 상황들(이를테면 스테그플레이션 같은,,)을 해결하거나, 대응하는 데 유용한 도구를 제공해 주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이론으로서의 경제학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준 말이 있는데, 밀턴 프리드먼이 대공황 이후 한때 주목받다 사라진 대안경제학자들을 두고

“미첼(제도주의 경제학자)은 경험주의 과학자(empirical scientist)이지 이론가(theorist)가 아니었다”

라는 말을 합니다. 이론화를 거치지 않고, 경험과 데이터에만 집착해서 무한히 비판과 검증만 하는걸 학문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는 지적입니다.

하지만, 저나 대다수 투자자들은 정책결정자나 경제학자와는 다른 입장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한 이론화가 주는 유용함이 필요한 상황 보다는, 오히려 현실적인 태도와 데이터 해석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게 절실한 상황이 훨씬 많은게 투자하는 사람들이 처한 입장입니다. 그러한 입장의 차이를 깨닫지 못했던 어빙 피셔는 희대의 망언으로 평생을 고통받았을 뿐 아니라 최악의 투자자가 되어 파산하게 됩니다.

결국은 경험주의든 이론화든 어느 한 극단으로 쏠리거나 변화없이 고착된 인식은 투자자에게 좋을게 없다는게 이 글의 결론이 될 것 같습니다. 마크 파버의 책 “내일의 금맥”에서 소개하고 있는 자료들을 볼 때, 콘드라티예프 이후에 그의 장기파동론을 계승해서 경기의 움직임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대략 2009년 이후를 상승국면의 시작점으로 보고 있는 듯 합니다.

그렇다면, 지금은 상승 장기파동의 초반으로서 정치사회적인 갈등과 전쟁, 혁명같은 이벤트가 늘어나기 시작해야 하고, 원자재나 일차산물의 가격은 크게 오를 가능성이 있으며, 지난 2000-2008년 동안 일어났던 IT 혁명, 모바일 기술의 개화가 시장에 본격적으로 보급되고 새로운 산업이 발흥하는 한 가운데에 서있을 확률이 있다고 보는 것이 투자하는 사람들에게 유용한 관점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식의 주기론이 정말로 정확하게 들어맞는지 검증해보면 언제나 커다란 오차가 있었기 때문에 시기를 특정해서 예측하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 또한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어야겠죠.

덧붙혀서 과도한 자기 확신의 끝이 어떻다는 걸 보여준 불세출의 천재 경제학자 어빙 피셔의 사례를 되새기다 보면 투자자들에게 “역사”만큼 유용한 도구도 드물지 않은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도 이런저런 책을 통해 경제의 역사, 투자의 역사를 공부하게 되는건가 봅니다. 오늘 보니 전반적으로 주가가 많이 떨어지고 있는거 같은데, 이것도 다 되풀이되는 역사의 한 장면에 불과한 거라 생각합니다. 투자 하시는 분들은 침착함을 잃지 마시기를 바라며, 다들 오늘도 성공투자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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