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주의 등급

필립 피셔의 “위대한 기업에 투자하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필립 피셔가 말하는 이른바 위대한 기업들의 공통점은 기술혁신을 통해 고성장을 구가하는 성장주라는 점입니다.

하지만, 필립 피셔가 활동하던 시기의 미국에서는 이른바 “위대한 기업”이라고 할만한 기업이 많았고, 또 그런 기업을 찾는게 어렵지 않았습니다. 굳이 그런 기업이 스포트라이트를 집중적으로 받기 전에 찾으려 하지만 않는다면 얼마든지 모토롤라나 TI, 베네통 같은 기업들에 투자하는게 가능했습니다.

우리는 미국에 살고 있지 않고, 미국의 주력 성장주들은 거품논란이 일정도로 주가가 크게 상승해있기에 투자가 꺼려지기에 자연스레 위대한 기업정도는 아니라도 크게 성장할 수 있는 새싹들에 관심을 기울이는것은 당연할겁니다. 그런 새싹들은 하나같이 첨단기술을 가지고 있는 기술주의 면모를 가지고 있는것도 이상할 게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첨단기술이나 특허를 가지고 있다는 점 만으로는 필립 피셔가 설파하고 있는 위대한 기업 비스무리한 기업에 다가가는게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위대한 기업은 이런 첨단기술이나 특허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경영진의 능력, 만들어내는 제품의 시장성, 영업-노사관계-경영 안정성-리더십 같은 다양한 역량이 어우러져서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어떤 기업이 특정한 첨단기술이나 특허,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있다고 다 성장주가 되는게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 기술주들도 등급이 있다고 봅니다. 어떤 기술을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그 기술을 가지고 “무얼 할 생각인가”가 더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1. 기술을 가지고 장사를 하겠다는 기업 – 예) 바이오기업들 중 라이센스를 제약회사에 팔아서 마일스톤계약으로 돈을 벌겠다는 사업모델
2. 기술을 가지고 해당 시장의 특정 포지션을 장악하겠다는 기업 – 예) 특허만료된 약을 복제해서 저가에 팔아서 수익을 남기겠다는 사업모델
3. 기술을 가지고 해당 시장 전체를 장악하겠다는 기업 – 경쟁상대를 고사시킬 수 있을만큼의 경쟁력을 가진 제품을 적절한 영업망을 통해 판매해서 시장점유율을 독과점에 가깝게 장악하고 유지할 계획을 가지고 있는 사업모델 – 예)삼성전자, 인텔
4. 기술을 가지고 세상을 바꿔보겠다 나서는데, 그 계획이 구체적이고 성공적으로 진행중인 기업 – 예)구글, 아마존

많은 분들이 1에 해당하는 기업들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딱 눈에 쉽게 뜨이는게 첨단기술이나 특허같은 재료들이니까요. 하지만, 이런 기업들은 정작 돈을 벌 기회가 제한되있습니다. “시장”에 전혀 연결되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중국 고사로 따지면 삼국지 오나라 시절에 물질을 오랫동안 해도 손이 트지 않는 연고를 개발한 아낙네가 그걸 가지고 본인이 열심히 빨래를 해서 생계를 유지하는 격입니다. 그 연고 만드는 법을 열냥 주고 사서 오나라 수군에 납품함과 동시에 이 공로로 제독이 되었던 젊은이와는 “성장”의 격이 다른겁니다.

1에 해당하는 기업들은 아무리 상장 이전 초기부터 장기간 주식을 보유해도 큰 돈을 벌 수 없을뿐 아니라, 제대로 사업을 영위하지 못한 채 기술 라이센스만 팔아넘기고 회사를 정리하게 되버릴 리스크가 생각보다 큽니다. 특히나 우리나라 같이 기업간 갑을관계가 불평등한 사회관행에서는 이렇게 되버릴 가능성이 훨씬 높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말로 성장을 기대하고서 리스크를 감수한 채 장기간 보유할 가치가 있는 주식을 고르려면, 1번은 되도록 고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2번의 경우는 그렇게 시장 내 특정포지션의 크기가 어느정도 크기인가에 따라 성패가 갈릴 수 있을뿐 아니라 후발주자가 금방 추격하기 쉽다는 리스크가 있습니다. 장기적으로 보유하면 할수록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는 겁니다.

바이오시밀라든, 복제약 제조사든, 정말로 유망한 기업은 우리나라에서 나오기가 어려운게 다름아닌 이 “시장의 크기” 때문입니다. 전세계의 어느 기업이라도 나서서 복제약을 만들 수 있게 된다면 어떤 나라라도 자국기업을 보호하려 하지, 외국 제약사들의 수출을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이런 사업방식을 통해 정말로 유망한 기업이 나온다면, 그건 우리나라보다는 중국에서 발굴될 확률이 매우 높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정말로 관심을 가지고 장기간 보유해야 할 성장기업은 3번 아니면 4번이겠죠. 결국, 기술이나 혁신 그 자체는 기업의 성장과 발전에 생각보다 중요한 변수가 되기는 어렵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나서서 바이오벤쳐를 육성하려고 노심초사하는 이유는 그런 기업들 중에 세계를 호령할 유니콘 기업이 나오기를 바래서 그러는게 아니라, 순전히 “고용”을 늘려보려는 의도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투자자의 입장에서는 같은 벤쳐기업을 바라보더라도 “기술수준”이 아니라 그런 기술을 가지고 어떤 “사업모델”과 비젼을 가지고 있는지, 또 그걸 실행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가 있는지를 보는게 훨씬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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