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계과학에서 자주 언급하는 “전조”와 관련된 경험칙이 이른바 하인리히 법칙입니다.
큰 사고(격변)가 나기 전에는 300건의 경미한 돌발상황과 30건의 작은 사고가 발생한다는 경험칙은 주식을 비롯한 자산시장에서도 잘 들어맞는 원칙입니다. 대공황이나 2008년의 버블붕괴와 같은 초대형 금융위기에는 언제나 잦은 전조증상들이 빈번하게 반복되었습니다.
그런 전조증상들이 자주 반복되어도 시장에 참여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이 파국의 전조증상이라는 걸 깨닫지 못하는 이유가 뭐냐면, 주식이 그렇게 떨어져도 곧바로 회복이 되거나 오히려 고점을 갱신하며 더 오르거나, 신용스프레드나 기간스프레드등의 위험신호도 짧게 나왔다 곧바로 사라지고 전체적으로 보면 안정을 회복하는 양상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결국, 나중에 가서 버블이 터지거나 초대형 위기가 터지면서 주식이 폭락하고 금융시장이 패닉에 빠지고 나서 다시 돌아보면, 바로 그런 잦은 이벤트들이야 말로 파국의 전조증상이자, 미리 감지했어야 할 시장의 왜곡이었던 겁니다.
즉, 잦은 시장의 왜곡이 조만간 다가올 파국, 즉 패닉의 전조증상이 되줄수 있는겁니다. 따지고 보면, 언제일지는 모르나, 금융시장에 패닉과 파국을 불러일으킬 초대형 이벤트가 혹여라도 조만간 발발한다면 다름아닌 요즘과 같은 상황이야 말로 그 신호라 할 수 있는 시장의 왜곡들이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물론, 정책 당국자들이 바보가 아니기 때문에 그러한 위험요소들을 인지하는 시점에서 열심히 최선을 다해 대응을 할 것이고, 그러한 대응들 중 상당수는 매우 효과적으로 패닉의 발생을 뒤로 미루게 만들 수 있을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패닉은 그리 간단하게 예측할 수 없지만, 이를 미리 준비하고 현금을 마련해 두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야 말로 “올인”할 수 있는 타이밍을 잡을수도 있을겁니다.
이렇게 10년에 한번 올까말까 한 큰 기회가 될 수 있는 패닉은 언제 올 것인가를 짐작할 수 있는 전조증상들인 잦은 왜곡을 감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패닉이 어떤 형태로 올 것인가를 알아두는 것도 중요합니다. 외환트레이딩 경력을 가지고 “금리는 주식시장의 미래를 알고 있다”라는 책을 쓴 정웅지씨가 말하고 있는 패닉의 형태는 크게 세가지입니다.
첫째는 버블이 풍선처럼 부풀다 갑자기 한번에 터져버리는 형태의 패닉입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8년의 위기입니다.
2004년부터 시작해서 연준이 금리를 1%에서 5.25%까지 가파르게 올리는 기간에서도 미국의 주식은 거침없이 상승을 계속했지만, 그러한 상승기 동안에서도 짧게는 1,2일에서 길게는 15일 수준의 단기간 동안 진행되는 주가하락이나 금융시장의 혼란은 자주 발생했습니다. 그러한 “왜곡”이 1년에도 몇번씩 전조증상으로 반복되다 결국 단번에 모든게 무너지는 형태로 패닉이 발생한 겁니다.
아무리 시장 참여자들이 환상에 빠져 있어도, 그렇게 금리를 올리기 시작한다면 통화승수에 의해 만들어지는 신용이라는 환상은 터질수 밖에 없는데, 그 전까지 환상의 크기가 거대하게 지속되고 있었던 만큼 주가가 빠지는 속도는 가파르고 급격했던 겁니다. 이런 경우는 “이게 바로 패닉(올인할 타이밍)이구나” 하는 걸 쉽게 인지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문제는 그 상황에서 마인드를 부여잡고 거의 모든 사람들이 No를 외칠 때 Yes를 외칠 수 있는 용기와 모아놓은 현금의 크기가 훨씬 더 중요한 관건일겁니다.
두번째는 조금씩 바람이 빠지면서 풍선이 쪼그라드는 상황입니다. 97년 동아시아 외환위기 때의 미국 금융시장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3년 전인 94년부터 1년동안 무려 3%의 금리를 인상한 여파가 세계, 특히 동아시아 금융시장에 전파되어 나타난 위기는 버블이 한순간에 터진게 아니었기 때문에 훨씬 더 까다로운 상황입니다. 주가가 급격하게 폭락하는게 아니라 추세적으로 계속 내리막을 향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어디까지가 왜곡이고, 어디까지가 패닉인지를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순차적으로 저점을 갱신해나가기 때문에 언제부터가 진짜 바닥인지를 가늠하기 어려워 전문가들조차 바닥을 잡지 못해 손실을 보고 나가 떨어지기 쉽습니다. 이 때 중요한 게 간당간당 찔끔찔끔, 입질하듯 나오는 작은 신호들을 과감하게 무시하고 급격한 금리 변동에만 촉각을 곤두세우는 자세입니다. 아무리 주식시장이 쪼그라들며 저점을 새로 갱신해나가더라도, 진짜 패닉이 코앞에 다가오면 반드시 급격한 금리변동이 발생합니다.
시중에 유동성이 충분한 상태에서는 정말 심각한 패닉을 일으킬 정도로 급격한 금리변동이 나타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세번째는 잦은 왜곡 신호들이 반복됨에도 불구하고 패닉이 나오지 않는 경우입니다. 사실, 미국의 급격한 금리인상은 2015년부터 상당기간 지속되 왔었고, 이미 작년부터 미국 주식시장에 대한 좋지 않은 왜곡신호들은 자주 발생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패닉”이라고 부를만한 상황은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연준이 금리상승기조를 멈추었고, 이제 하락기조로 전환할거라는 전망 내지 희망을 시장 참여자들 대다수가 품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패닉이 늦어지거나, 아예 오지 않을수도 있는겁니다. 그렇더라도 괜찮습니다. 현금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다면, 굳이 패닉이라는 전인미답의 상황이 아니라도 다양한 형태의 투자기회는 언제든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지금 상황에서 중요한 건 금융시장의 패닉 상황을 마냥 공포스럽고 도망가야 하는 괴물로만 인식하느냐, 아니면 충분히 거기에 대비하고서 10년에 한번 올까말까한 올인 기회로 활용하느냐 하는 각자의 선택 문제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