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레이션(서사, 이야기)의 함정

사람은 본능적으로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세상 모든 일들을 이야기가 흘러가는 형식에 맞춰서 기억하고 이해하는 것에 굉장히 익숙해있고, 두뇌는 이런 식의 활동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어떤 식으로든 앞뒤 맥락이 연결되는 구조의 정보를 기억하고 처리하는걸 더 선호하는게 일반적이고, 저 또한 그런 이야기구조에 맞추어서 말하고 생각하는 걸 선호하며, 투자도 이야기가 예쁘게 나와줄 때에 합니다.

그러한 이야기, 즉 서사구조에는 필수적인 요소가 시간의 흐름과 인과관계입니다. 원인이 있고 그에 따른 결과가 주어지는 인과론이 모든 이야기의 공통적인 구조일겁니다. 그렇게 원인이 있고, 원인에 따른 결과가 연결되면서 시간이 흘러가는 이야기의 가장 전형적인 형식이 역사일겁니다.

하지만, 세상 모든 현상에 그 원인이 존재한다는 생각은 현실에서는 “망상”에 불과한 경우가 생각보다 꽤 많습니다. 정말로 모든 현상에 원인이 존재하는지를 따져보기 이전에, 인간의 인지능력이나 경험을 가지고 정말로 그런지를 입증하거나 확인하는 것부터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철학적인 담론과 성찰 이전에 인간의 두뇌의 인지능력 자체가 굉장히 엉성하고 불완전하기 때문에 이런 인과관계의 완결성에 집착한다는 점입니다.

인간의 두뇌 안에는 특정한 현상을 인지할 때, 그 현상들을 한데 모아서 해석하고 엮어서 하나의 인과관계로 이해하려고 끊임없이 시도하는 이른바 “해석기관(interpreter)”이라는 회로가 존재합니다. 이러한 해석기관은 좌뇌와 우뇌가 서로 협동하며 기능을 조율하는 동안에는 비교적 정상적으로 작동하지만, 이러한 조율이 깨지면 폭주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해석기관이 폭주하기 시작하면, 어떤 정보에도 제멋대로 터무니없는 원인을 찾아내서 갖다붙히게 되기에 이 해석기관을 “헛소리 생성기(baloney-generator)” 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렇게 모든 일에 원인이 있다고 스스로를 믿게 만들어야만이 자기 자신이 어떤 일에 대해 통제가능한 영역이 있다는 확신을 제공하고, 그러한 확신이 있어야만이 사람은 노력을 할 수 있습니다. 진화론적으로는 인류의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해석기관은 충분한 조사와 검증을 거쳐야만 원인을 제대로 추론할 수 있는 영역에서는 그러한 검증과 조사를 방해하고, 인간을 잘못된 편견과 오류에 빠지게 할 수 있습니다. 제대로 원인을 파악할 수 없는 복잡하고 난해한 사안에서 엉터리 원인들을 제공하며 편견에 빠지게 할 수 있는거지요.

특히나, 인간이 진화하면서 얻게 된 “이야기를 만들고 빠져드는 능력”은 이러한 편견과 오해를 극대화하기 쉬운 함정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이야기, 즉 서사에는 언제나 “교훈”이라는 게 들어있기 마련입니다. 이야기에서 교훈이라는 건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하는 중요하고 의미있는 정보를 간단하게 요약해서 기억하게 만들지만, 그러한 교훈에는 “윤리”라는 사회적 가치가 지나치게 가중되어서 강조되기 쉽습니다. 또한, 그러한 스토리가 개인의 영역을 떠나 공동체 전체에 영향을 발휘하려면 누군가나 무엇인가에게 잘못된 일들의 책임을 지워야 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전염병이 돌면 이방인이나 하층민 중 누군가를 마녀로 몰아 불태워 죽이기도 하고, 특정 주식의 가격이 크게 하락하게 되면 사악한 공매도세력의 농간에 무고한(?) 투자자가 당하지 않게 똘똘 뭉쳐서 저들을 타도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크게 돌기도 합니다.

이야기가 너무 거창하게 나간것 같긴 한데, 어쨋던 주식투자를 하는 투자자들 입장에서도 이러한 선입견의 폐해를 막기 위해 부단하게 “이야기” 보다는 “통계”라는 숫자를 가지고 세상을 이해하려고 노력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통계니 숫자니 해도, 결국 편견과 주관을 배제한 끊임없는 검증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내가 알 수 없는 부분이 상당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러한 기반에서 그나마 재현이 가능한 경향성을 무질서해보이는 시장에서 뽑아내는 데 성공해야만이 잘못된 확신에 빠지지 않고 투자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어제(11월29일) 코스피가 유난히 크게 빠졌는데, 왜 빠졌을까요? 홍콩인권법에 트럼프가 싸인을 해서 미중갈등이 크게 악화되고 경제협상이 깨질까봐 빠졌다고 설명하는 건 가장 그럴듯한 설명이겠지만, 그렇다면 홍콩 다음으로 직접적인 당사자인 중국 증시는 왜 우리나라 하락폭의 절반도 안되는지 설명할 수 없습니다. 뭐, 이러저러한 여러가지 부연설명들을 추가로 갖다댈수 있겠죠. 하지만, 그런 부연설명이 많이 동원되면 될수록 “정말 홍콩인권법 싸인 때문이 맞는가”에 대한 의문과 혼란은 커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럴 때는 그냥 “잘 모른다”라고 정리하고 “그럼 이제부터 어떻게 할까”로 넘어가는 용기와 솔직함이 필요한 거겠죠.

그러고 보면, 외국인 투자자들이 벌써 16일째 순매도를 하는 동안 이를 설명하기 위해 수많은 이유들이 나왔습니다. 아람코 상장이니, msci 리밸런싱이니, 연기금의 추가 주식매수여력 실종이니,,,, 그런데, 이제는 더이상 원인이 될 수 없는 것들이 꽤 됩니다. 다음주에도 외국인 매도세가 계속 이어진다면 그때부터는 정말로 원인을 억지로 갖다붙히려다 섯부른 편견에 빠져 크게 데일수 있는 상황이 올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야 가치투자를 지향하면서 주식공부를 해보는 중이지만, 코스피나 세계 주식시장같은 큰 판은 “가치”를 가지고 움직이는 판이 전혀 아닙니다. 가치가 가격을 결정하는게 아니라, 가격이 가치를 정의하는 경우가 많죠. 그런 판에서 외국인 보유비중이 매우 미미한 종목이 아닌, 대형주들을 담아두고서 가치투자전략을 관철하는건 생각보다 큰 인내와 댓가를 필요로 하는걸지도 모릅니다. 물론, 이런 생각도 어디까지나 제 두뇌 속의 “해석기관”이 만들어내고 있는 헛소리 중 하나일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정말 그런가를 확인하려면, 외국인 투자자의 움직임과 주가의 상관관계를 통계로 내봐야 하는거겠지요.

어쨋던 혼란 가득한 주식시장에서 확신을 가지고 뚝심있게 자신의 투자전략을 관철해서 안정적으로 돈을 벌수 있으려면, 무엇보다도 필요한 게 확신 그 자체가 아닌 “검증”에 의해 다듬어져 재현성 높은 경향성의 발견, 그리고, 그러한 경향성을 활용한 전략과 대처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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