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터 대령 게임

게임이론을 다루는 학자들 사이에서 “죄수의 딜레마”와 함께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게임이 블로토 대령 게임이라고 합니다. 게임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1. 2명에 참가자가 여러명의 병사를 가지고 있다. 병사의 수는 서로 다를 수 있다.

2. 참가자는 복수의(2곳 이상) 전장에서 전투를 치루게 된다. 각각의 전장에 보내게 될 병사의 수는 참가자가 임의로 정한다

3. 각각의 전장에서 치루는 전투는 무조건 병사가 한명이라도 더 많은 쪽이 이긴다. 같은 수의 병사라면 무승부

4. 게임의 승패는 몇 군데의 전장에서 승리했는가를 가지고 정한다. 특정 전장에서 아무리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어도 승리한 전장이 적으면 패한다.

장기나 바둑같이 경쟁을 하는 플레이어가 서로 동등한 자원을 가지고 하는 게임보다는, 실제 국가간 전쟁이나 기업간 경쟁같이 우열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고안된 이 게임에서 더 많은 병사를 가지고 있는 쪽은 언제나 훨씬 더 유리한 조건에서 경쟁을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전투가 벌어지는 전장이 단 한 곳 뿐이라면, 애초에 게임이라고 할 수도 없이 무조건 병사 한 명이라도 많은 쪽, 즉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이 조금이라도 더 많은 쪽이 무조건 승리할겁니다.

하지만, 전장의 수가 많으면 많으수록 약자가 강자를 이기게 될 확률은 비약적으로 올라가게 됩니다. 수학적으로 계산을 해봐도, 전장의 수가 9곳인 게임보다 15곳인 게임에서 약자의 승률이 거의 3배나 상승한다고 합니다.

이 블로토 대령 게임이 시사하는 전략적 함의는 “약자는 최대한 전장을 늘리고, 경쟁양상을 복잡하게 만들어야만 강자에 대항해 승리할 확률이 높아진다” 라는 겁니다.

그러한 원리를 십분 활용할 줄 아는 전략가가 이끄는 스포츠 팀은 최고의 선수를 영입한 막강한 팀을 농락하며 높은 승률을 기록하기도 하고, 유능한 경영진과 압도적인 자원을 가진 거대기업이 싸구려 열등한 제품을 만드는 기업에 밀려서 파산하기도 합니다.

강자, 즉 자원을 많이 가지고 있는 플레이어가 바보 멍청이만 있는게 아닌데, 왜 이런 일이 번번이 발생하게 되는 걸까요? 이미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대부분의 선도기업들은 수익성이 높은 상위시장에 집중하고, 수익성이 낮은 하위시장에는 관심을 두지 않으려는 속성이 있습니다. 제국을 형성한 거대한 대국 또한,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에 맞게 국가조직을 변화시키고 전략을 유연하게 바꾸기 보다는 기존의 전략을 그대로 고수하려는 속성을 가지게 된다고 합니다.

훨씬 더 많은 자원을 동원할 수 있는 강자의 입장을 생각해보면 왜 강자가 이런 바보짓(?)을 할 수 밖에 없는 측면이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강자에게는 단지 하나의 약자나 도전자만을 상대하는게 아니라 규모가 작지만 다수의 도전자들을 연이어서 상대해야 하는 상황에서 전략과 조직을 바꾸고 변화시킨다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큰 비용과 위험을 초래하는 모험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근본적인 변화와 개혁을 위해 막대한 부담과 위험을 감수하느니, 차라리 이번 전장에서 질수도 있다는 위험을 감수하는게 더 나은 선택이라고 판단할 수도 있는게 강자의 입장인 겁니다. 이러한 입장차이로 인해 수많은 기업들이 파괴적 혁신을 감행한 후발주자들에 의해 저가시장, 하위시장을 내주기 시작하다 결국 경쟁에서 참패해 무너졌습니다. 

이러한 양상은 국가간의 전쟁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보스턴대 이반 아레귄-토프트 교수가 1800년에서 2003년 까지 약소국과 강대국 사이에서 벌어졌던 약 200개의 전쟁을 분석했다고 합니다. 동원가능한 자원의 차이가 10배 이상 벌어지는 강대국 대 약소국의 전쟁들에서 강대국이 이겼던 전쟁은 72%에 불과했습니다. 덧붙혀, 이 약소국이 강대국을 상대로 전쟁에 이기는 확률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증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1800-1849년 사이에서 약소국의 승리확률은 12%였는데, 1950-1999년 사이에서는 약소국이 50% 이상 승전했습니다. 강대국이 힘의 우위를 누릴 수 있는 전장을 회피하고 전쟁양상을 훨씬 복잡하게 만드는 법을 역사를 통해 모방하고 학습하고 있는겁니다.

이런 강자와 약자의 비대칭적인 경쟁양상은 비단 국가나 기업같은 거대조직에서만 벌어지는게 아닙니다. 다름아닌 우리들 한사람 한사람의 개인차원에서의 경쟁도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고 생각합니다.

부모가 돈이 많고, 내가 머리가 좋고, 그게 아니라도 뭔가 재능이 넘쳐나는 사람들은 언제나 그런 것들을 부여받지 못한 이들의 부러움과 질투를 불러일으키게 마련입니다. 사실, 신은 (있다면)불공평합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현실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강자들이 언제나 약자보다 무조건 더 성공하고 승리하는 게 아닙니다. 심지어는 지금 우리사회처럼 약자에게 비정한 무한경쟁사회에서조차 그렇습니다. 재능이 없어도 그 없는 재능을 쥐어짜고 개발해서 적절하게 효율적으로 사용해서 가진 자들이 싸움을 걸지 않는 틈새시장에서 자기 영역을 개척해서 승리하는 약자들도 찾아보면 넘쳐나는게 세상입니다. 그리고, 그들 승리자들은 어느새인가 원래부터 주어진 재능이나 특별한 무언가가 있었던 사람이라고 포장되고는 하지요. 

결국, 동원 가능한 자원이 열악한 약자라고 해서 경쟁에서 밀려나는 게 무조건 세상 탓, 시스템 탓이라고만 변명하기에는 돌아보았어야 할 부분들이 분명히 존재했다는 걸 부인할 수 없는겁니다. 적어도, 약자가 전적으로 자신의 약함 때문에 패배했다는 분석 보다는, 자신이 약자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무지함과 약자임에도 불구하고 전장의 수를 늘리고 경쟁양상을 복잡다양하게 변화시키는 시도를 하지 않은 “게으름” 때문에 패배할 확률을 줄이지 못했다는 분석이 훨씬 더 합리적이고 교훈적일 수 있다고 봅니다.

반면, 강자는 자신에게 유리한 경쟁구도에 안주하기 때문에 패배하는거죠. 변화에의 두려움, 실제로 도전을 거듭하면 생기게 될 위험성과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어찌 보면 필연적으로 틈이 생길수 밖에 없기에 언제나 절대 질것같지 않은 강자가 항상 쓰러져 왔던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가 발전하려면 약자도 강자를 이길 수 있는 확률이 최대한 보장되는 구도로 다양한 전장, 즉 다양한 영역에서 반칙 없이 치열한 경쟁이 보장되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경쟁 자체를 억누르는 사회도, 1등부터 꼴찌까지 줄을 세워 한두개의 잣대로 서열화 시켜서 “전장의 수가 제한된” 서열사회도 정체하고 퇴화되기 쉽다고 생각합니다.

“약자에 대한 따뜻한 배려” 라든지, “강자의 겸손” 이라든지, “서로 경쟁 없이 평등하고 화합하자” 라든지 이런 도덕적이거나 당위적인 명제 없이 수학적인 게임이론만 가지고도 약자가 강자에게 도전하고, 적절한 노력과 자기인식을 한다면 그나마, 납득할 수 있는 확률로 강자에 역전승리할 수 있는,,,  ” 좀 더 나은” 시스템의 가능성을 보여주는게 이른바 블로토 대령 게임의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꿈도 없고, 공부하기 싫어하는 제 두 아들들을 포함해 가진 것 많지 않은 대다수의 우리나라 젊은 분들이 맞이할 미래가 적어도 제가 젊었을 때보다 훨씬 어둡다는 건 정말 안타깝고 우울한 현실이지만, 그럼에도 아주 길이 없는건 아니고 치열한 자기성찰과 다양한 도전을 그치지 않는 것이 성공에 이르는 가장 확률이 높고 효과적인 방법이 아닐까 하는게 (꼰대라고 욕먹을게 틀림없지만) 젊은 분들께 전하고 싶은 제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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