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읽은 책 중 톱3 안에 단연 꼽히는 인생 책 중 하나가 “전략의 역사” 입니다. 전략이라는 개념이 형성되고 발전되가는 역사를 기술한 이 책에서 가장 압권인 부분이 클라우제비츠편이라고 생각합니다.
클라우제비츠는 군사학에서 코페르니쿠스와 같은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프로이센 군인인 그는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에 포로로 잡히고, 절치부심 프랑스를 이기기 위해 나폴레옹의 군대운용을 누구보다도 철저히 연구한 사람입니다. 이후 프로이센이 나폴레옹에게 굴복하자 러시아로 탈출해 나폴레옹의 몰락에 일조합니다. 그가 미처 완성하지 못한 전쟁론을 그의 부인이 정리해서 출판하는데, 이 전쟁론 내용 중 전략의 역사가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부분이 제목과 같은 “마찰”이라는 개념입니다.
나폴레옹은 당시에 막 개발된 열기구와 완목통신장치같은 첨단기술을 통해 최초로 대규모 병력의 정밀한 기동과 운용을 실현한 군사천재였습니다. 하지만, 그런 정교한 첨단장비와 나폴레옹의 천재성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나폴레옹의 계획대로만 될 수는 없었습니다.
모든 계획에는 현실과 우연의 벽에 부딫혀 조금씩 차질이 생길수 밖에 없는 법이고, 그 계획이 복잡하고 정교할수록 수많은 변수들은 그런 계획의 실행을 방해하게 마련입니다. 그러한 어려움들을 마찰이라 불렀습니다. 그러한 현실과의 마찰 때문에 전략은 재현 불가능한 것이고, 역사에서 무언가를 배우려는 태도는 항상 치명적인 위험요소를 내포할 수밖에 없습니다. 과거 역사에서 어떤 교훈을 얻어도, 같은 일이 이번에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나타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마찰의 위력을 충분히 의식하고 고려한다면, 정교하고 복잡한 계획을 수립하거나, 내가 잘 하기만 하면 모든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에 빠져서 무언가를 끊임없이 조작하려는 태도를 버리는게 가장 중요합니다. 계획을 수립하고 전략을 세울 때 가장 중요한 덕목은 단순함과 대담함입니다. 가장 간단하면서도 중요한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에 어려움이 축적될 때 강한 결의로 이를 이행하는 인내와 의지력이야 말로 전쟁에서 승리하는 중요한 열쇠라는게 전쟁론에서 말하는 그의 핵심교리입니다.
이런 생각은 군사영역 뿐 아니라 비지니스나 정책, 그리고, 우리에게 중요한 투자의 영역에서도 엄중하게 적용될 수 있습니다. 클라우제비츠는 마찰의 종류들로 날씨와 같은 자연재해나 우연 뿐 아니라, 잘못된 정보, 감정적-심리적 요소들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야말로 투자를 실행함에 있어서 우리 계획과 전망을 농락하고 시험하는 것들도 그런 것들입니다.
지금과 같이 변동성이 심한 시장에서 여러가지 화려한 기법들을 사용해서 정교하게 짜여진 계획을 마련하면 수익을 극대화하거나 손실을 줄일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 쉽습니다. 바로 그런 생각이 모든 실패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왜냐면, 복잡하고 정교한 계획만큼 지금처럼 변동성이 큰 현실세계에서 마모되고 좌절되기 쉬운게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정교하고 복잡한 계획을 실천해야 하는 투자자는 기계나 철인(플라톤이 말하던)이 아니라 마음 약한 인간입니다. 의지력과 대담함이 부족한 사람일수록 계획은 간결하게 세우고 간단한 아이디어를 강한 결의로 이행하는 것이 성공확률을 높이는 지름길입니다.
물론, 이런 어려운 상황들을 수없이 헤쳐나온 경험을 가지고 있는 전문가들이나 고수분들은 그러한 심리에너지의 고갈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만큼 경험과 숙련도를 확보한 상태이기 때문에 수익극대화를 위해 온갖 화려하고 정교한 계획을 세워도 아무런 지장이 없을겁니다. 왜냐하면, 어지간한 돌발상황에 대한 대응력도 충분하고, 잘못된 정보에 현혹되지 않을 정보력을 갖고 있을것이며, 자신의 심리나 감정적 마찰도 충분히 제어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저같은 초보투자자는 그런 경험도, 정보력도, 자기절제력도 없기 때문에 더 처절하게 간결한 계획에 모든 의지력을 집중해야 겨우 살아남거나 승리할 수 있겠죠.
그렇기 때문에 자산배분과 분산투자, 분할매수-매도와 같은 다소 뻔해보이지만 많은 대가들이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강조하고 있는 원칙들에 집중하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예전에 TVIX 거래를 하면서 느꼈던 위화감이 분명 돈은 버는데, 감정적으로 진이 빠지고 뭔가 일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듯한 느낌이 들었던 겁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런 복잡한 매매를 통해 무언가를 조작하는걸 통해 내가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는 자기위안을 얻기 위해 너무 많은 심리적, 체력적 에너지를 소진했고, 일상생활과 투자생활을 순조롭게 유지하는데 조금씩 삐걱거리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런 위화감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이제부터 시장이 오를지 내릴지 예측하려고 홀짝게임을 하거나, 민첩함이라 변명하지만 깊은 사색없이 섯부른 예측에 기대어 인버스나 레버리지를 들어갔다 나왔다 나름 정교하고 화려하게 움직이는 복잡한 움직임이 현실세계에서 결과적으로 내 수익을 극대화시키고 있는지, 아니면 잦은 거래로 내 열정과 심리에너지를 조금씩 고갈시키고, “내가 지금 무얼 하고 있는거지?” 하는 의문이 들게 하고 있는건 아닌지 고민이 들기 시작한다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들 중 가장 중요하고 기본에 해당하는 것이 무엇인지 점검하고, 다시한번 그것에 모든 에너지를 집중하는 것이 진짜 전략의 모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클라우제비츠가 밝혀낸 위대한 통찰인 마찰을 극복하는 지름길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