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미사일위기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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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와 오해의 연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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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3월14일 – 미국의 쿠바에 대한 무기수출을 금지, 비행기를 수리할 수 없게 된 바티스타정권의 군사력은 치명적인 타격을 받음

1959년 2월 – 카스트로, 독재자인 바티스타를 몰아내고 혁명 완수

1959년 4월 – 카스트로, 워싱턴 방문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다”, 그러나  아이젠하워대통령의 문전박대로 성과없이 귀국

1959년 4월말 – 흐루시초프, 카스트로에게 비밀지원 및 비밀무기수출계약 체결 

1960년 6월 – 카스트로가 미국 정유회사를 몰수 후 국유화, 카스트로는 미국이 곧 침공할 것이라 확신 / 실제로는 당시 미국은 침공계획이 없었음

 이 때 흐루시초프가 “미국이 쿠바를 침공하면 핵공격을 하겠다”고 선언

1960년 10월 – CIA가 과테말라에서 쿠바난민을 군사훈련시키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남(실제 훈련수준은 침공과 거리가 멈)

 소련이 다시한번 핵공격 위협, 이후 침공이 없자 위협이 통했다고 믿음

1960년 11월 초 – 카스트로가 본격적으로 소련에 붙음 “나는 항상 마르크스주의자였다. 모스크바는 우리의 머리이자 위대한 지도자다. 우리는 항상 머리의 말에 귀기울여야 한다”

1961년 4월 – CIA가 훈련시킨 쿠바난민의 피그스만 침공(앞서와는 전혀 별개의 작전), 그러나 미국의 직접적인 지원과 개입은 포기, 피그스만 침공은 실패

1961년 11월 – 자해공갈과 쿠바내 반란획책을 주요 시나리오로 하는 “몽구스 작전” 입안 및 승인

1962년 2월 소련 스파이가 몽구스 작전에 대한 단서를 포착해 흐루시초프에 보고

1962년 4월 정작 케네디는 쿠바 난민 지도자들과 비밀리에 회동, “미군이 쿠바 내에서 벌어질 반란을 지원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당시에 케네디는 이미 몽구스작전을 기각했었음

1962년 4월12일 – 소련 군부가 쿠바 방어를 위해 재래식 군대를 파견하자는 쿠바 방어계획을 크렘린에 제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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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왜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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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늦여름 내내 – 소련이 병력과 대량의 무기를 쿠바에 배치, 명분은 쿠바의 보호, 미국의 관심은 그 안에 핵무기가 포함되었는가 아닌가 하나뿐이었음.

 – 주미 소련대사 아나톨리 도브리닌 : 방어무기만 지원하고 있다. 11월 초 중간선거 이전에 미소관계를 악화시킬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1962년 9월11일 – 

 소련 : 소련 영토 밖에 미사일을 배채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선언(장거리탄도탄이 있으므로)

 미국 : 쿠바에 공격용 무기를 배치하는 일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선언, 공격용 무기는 탄도미사일임을 명시

1962년 10월15일 – 쿠바 내에 핵미사일의 존재를 미국이 확인. 당시 백악관에서 케네디 “내가 지금껏 언론을 통해 밝힌 내용은 아주 분명한거 같은데, 우리가 이런 상황에서 다른 선택을 할 수 없고, 우리가 행동에 나설 상황이 어떤 것인지,,, 우리가 미사일을 찾아낼거란 걸 알았을텐데.”,,, “거참, 빌어먹을 미스터리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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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이 당시 쿠바에 왜 핵미사일을 배치했을까 하는건 지금까지도 미스터리입니다. 아무리 합리적으로 살펴봐도 전략적으로 소련이 쿠바에 핵미사일을 배치하는게 아무런 실익이 없을뿐 아니라, 소련 내부의 의사결정 과정 중 어디에서도 이런 비이성적인 결단에 대해 검토한 사료가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첫째, 쿠바를 미국이 전면전으로 침공하는 시나리오를 가정하고 이를 억지하려 했다면, 구태여 탄도미사일을 배치하지 않고 약간의 지상군만 파견해도 침공억지라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굳이 지상군을 주둔시키지 않더라고 상호방위조약을 공개적으로 체경해도 억지력은 발생하는데, 정작 체 게바라가 조약 체결을 마무리하기 위해 1962년 8월 모스크바를 방문했을 때 흐루시초프는 방위조약 체결을 거부했습니다. 

둘쨰, 어떤 이유에서든지 핵무기를 배치해야 했다면, 구태여 숨기기 어려운 전략핵이 아니라 작고 숨기기 쉬운 전술핵을 배치하는게 훨씬 합리적이었을텐데, 흐루시초프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세째, 전술핵이 아니라 굳이 전략핵을 배치해야 했다면, 미국 동부를 초토화시키는데는 사정거리 1,100 마일의 MRBM이면 충분했을텐데, 굳이 더 비싸고 크기도 더 커서 발각될 게 뻔한 IRBM을 배치했습니다. 여기에 더해 SLBM을 탑재한 잠수함기지까지 건설하고 있었죠. 이건 더더욱 들킬수밖에 없었는데도요.

네째, 정작 쿠바의 안전을 보장받으려고 배치했음에도 불구하고 카스트로가 요청한 것은 재래식무기와 지대공 미사일이었지 핵무기가 아니었습니다. 사실 카스트로 입장에서는 자국에 핵미사일을 들이는 것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이고, 동조할 이유가 전혀 없는 자충수였습니다. 실제로 어떤 외교문서에서도 카스트로나 쿠바 핵심부가 소련에게 핵무기를 요청한 사실이 없었고, 핵무기배치는 소련측의 일방적인 행위였습니다.

다섯째, 모든 군사작전을 계획하고 실천해야 할 소련 군부는 쿠바 방어를 위한 계획이라고는 62년 4월에 입안한 원안 밖에 없었습니다. 군부 인사들조차 핵무기를 쿠바에 배치하라는 흐루시초프의 계획을 듣고 “마른 하늘에 날벼락과 같았다”고 회고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1962년 세계가 종말로 귀결될수도 있었을 열흘 남짓동안의 대치국면은 미국과 카스트로, 그리고 소련 사이에 무지와 오해가 점점 더 깊어지면서 서로 잘못된 신호를 교환하며 잘못된 확신이 강화되어가다, 한 나라의 중대한 결정을 일임받은 지도자의 성격이 “충동적”이었기 때문에 마침내 일어난 매우 돌발적이고 우연적인 해프닝이었던 겁니다.

이렇듯 외교라는 건 “내가 이런 입장이라는 걸 충분히 신호를 줬으니 저쪽도 내 의도를 이해하고 합리적으로 대응하겠지?” 하는 기대가 언제나 100% 작동하는게 아닐 수 있다는 거죠. 그리고, 그런 기대가 깨질 때 충동적으로 대응하고 행동하는 리더를 가지고 있는 국가는 더더욱 비이성적이고 불합리하게 행동할 확률이 커지는 거구요.

요즘 미국과 중국의 대치 국면을 보면, 뭔가 합리적이고 상호 신호의 교환에서 지켜지길 기대하는 규칙성에서 일탈해 충동적으로 행동하는듯 보이는 그런 지도자가 자꾸 눈에 밟히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서 지켜보는 우리가 더 불안한 거고, 저도 현금비중을 섯불리 못 줄이는 거겠죠. 여하튼, 지금은 비상한 관심 가지고 지켜봐야 할게 많은 국면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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