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E사태 단상

자본주의라는 시스템과 이데올로기가 없었어도 인간의 탐욕이라는 본능이 있는데 투기와 거품은 언제든 있었을겁니다. 하지만 그런 투기열풍이 지금처럼 전지구적이고 어마어마한 규모로 투사된지는 생각보다 얼마 지나지 않았습니다.

부동산 열풍도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부동산 거품이 인류역사가 시작되었을 때부터 있었을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주식이 아닌 사람이 사는 집에 투기열풍이 부는건 특정지역에서만 볼수 있던 매우 희귀한 현상이었습니다. 1990년 이전까지 “부동산 불패”, 또는 “부동산 불패신화” 라는 단어가 존재하던 나라는 전세계적으로 단 세나라,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 뿐이었고, 그 이전까지는 이들을 제외한 어느 나라 어떤 역사에서도 투기를 위해 주택을 사는 행위가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진 사례를 찾을수 없다는 사실을 지금 사람들이 알면 다들 깜작 놀라게 마련입니다.

1800년대에 철도나 운하 열풍이 불면서 특정 지역에 부동산 가격이 몇배씩이나 뛰었지만, 그건 해당 지역에 국한된 일이었고, 당시 사람들은 그런 부동산 가격상승을 “호황”이라 불렀지 주식시장에서 일찌기 회자되던 “거품”이라 부르지 않았습니다. 전세계적으로 주요 대도시의 주택가격이 거의 동조화되다시피 함께 상승하는 현상도 90년대 이후부터이고, 금리나 건축비, 인구성장 같은 경제요인들로는 도저히 주택가격을 설명할 수 없게된 것도 마찬가지로 90년 이후부터입니다.

주식시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본주의 종주국인 미국이나 주식시장이 일찌감치 발달했던 유럽이야 주식열풍의 연원이 깊지만, 전세계 거의 모든 나라에 주식거래소가 존재하고 매우 정교하게 설계된 주가지표가 실시간으로 발표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 이후이고, 미국의 주가지수가 진정한 의미의 “폭등”을 시작한 것도 1990년대 이후입니다.

이제 와서는 사람들이 흔히들 착각하는게 지금같은 부동산 투기열풍이나 주식투기열풍이 이전에도 늘상 존재했을거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이게 매우 이례적이고 1990년 이후라는 비교적 최근에야 본격화된 현상이라는 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투기열풍이나 거품 그 자체를 볼게 아니라 그렇게 거품이 일어난 배경을 보는게 중요합니다.

1990년 이전의 세계는 다양한 이데올로기와 체제로 나뉘어있었습니다. 그렇게 나뉘어있는 체제 안에서 인류 대다수는 자기 자신을 한 개인이 아닌 공동체의 일원으로 자신을 규정하며 자기 인생을 공동체나 조직에 바치며 살았습니다. 공산권에서는 당연히 “공산주의적 새 인간형”을 인간성의 표준으로 여기며 계급간의 연대 안에서 안전함과 안정감을 느끼며 살았습니다. 미국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조차 공동체와 연대라는 가치는 도덕률이자 삶의 방식이었죠. 노동조합, 협동조합이 매우 당연하고 필요한 공동체의 형태였고, 개발도상국은 전통적인 지역사회, 산업화된 중진국이나 일본 같은 나라는 직장에 충성하고 섬기는 것을 통해서 소속감과 안정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인간을 각각의 공동체의 일원으로 스스로 규정하며 살던 체제가 전지구적으로 무너지고 해체된 건 레이건 정부가 소련을 해체하고 “자본주의 시장경제”라는 이데올로기를 전세계의 단일원리로 투사하기 시작하면서부터입니다. 성공한 사업가의 능력과 용기가 존경받을만한 것으로 언론에 집중적으로 조명되기 시작한 것이 그 때부터이고, 시장시스템과 경쟁이 선한 도덕률로 선전되고, 한 개인을 평생 지켜주겠다 보장해주는 조직이나 공동체같은건 더이상 그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게 된 게 그때부터입니다.

이제부터는 직장에서 아무리 열심히 일하고 조직과 공동체에 충성을 바쳐도 그런 충성심이 응답받을거라는 기대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확보할 수 있는 안전이란 “자산” 밖에 없는거죠. 무슨 역사니 이데올로기니 공동체니 하는 거창한 이야기를 꺼내서 최근의 자산거품을 설명하느냐고 하실지 몰라도 이런 담론들은 전부 로버트 쉴러 교수의 책 “비이성적 과열”에 나오는 이야기들입니다. 전통적인 경제요소들인 경제성장이나 유동성(M1, M2같은), 금리, 인구증가율, 물가 같은걸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최근의 자산거품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기존 인류의 전통적인 정체성이 무너지고 재편된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를 생각해야만 한다는 쉴러교수의 통찰에 반박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겁니다.

이제 전세계 투자자들은 오늘도 자산이라는 안전판을 확보하기 위해 열심히 다른 투자자들과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그런 무한 시장경쟁 어디에도 과거와 같은 공동체나 연대의식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번에 GME사태가 이런 기존의 구도를 깨려는 시도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지만, 시장시스템 내에서 다수가 모여서 강력한 조직이나 강자, 또는 시장시스템 자체에 대항하기 위해 협력하는 행위는 전혀 새로운게 아닙니다. 우리는 그런 협력행위를 연대라고 부르지도 않습니다. 그건 “담합”이라고 부르는게 정상입니다.

담합과 연대는 본질적으로 자신들보다 강한 힘에 맞서는 협력이라는 점에 있어서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그 둘을 구분하는 요소는 행위에 있는게 아니라 정신에 있습니다. 그런 협력 행위 안에 “도덕”이라는 정신적 가치가 존재한다면 연대라 부르고, 도덕과 이타심이 존재하지 않는 협력이라면 담합이라 부를 뿐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GME사태에 참전한 개인투자자들을 바로보면서 우리가 답을 구해야 할 질문은 두가지입니다.

  1. GME 사태에 참전해 공매도와 대적한 투자자들은 담합을 한건가, 연대를 한건가
  2. 이들의 담합 또는 연대가 시장시스템 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1번의 질문을 답하는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정말로 도덕성과 진정성을 가지고 공매도라는 악의 세력에 맞서 개인 투자자들의 억눌린 한을 풀고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기꺼이 자기 돈을 내던진 사람들도 분명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손실을 전혀 개의치 않고 공매도세력을 악으로 규정하고 이들의 악행을 방치하는 금융당국과 세상에 목소리를 전달하고자 행동했던 사람이라면 자신의 행동이 연대를 향한 손짓이었다 당당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게 아니라 돈을 벌고 싶었거나 재미있을것 같아서 들어갔다면 그건 담합이겠죠.

부정적인 어감과는 달리 담합이라 행위 자체는 나쁜게 아닙니다. 시장의 무한경쟁에서 약한 개인이 살아남으려 서로 협력하는 행위는 전혀 문제될게 없습니다. 문제가 되는 시점은 그런 협력행위가 도를 지나쳐 현행법을 위반하거나, 더 많은 이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자신들의 협력행위에 도덕성과 가치가 들어있기라도 하는 양 포장하고 거짓말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입니다. 무한경쟁이 도덕률인 주식시장에서 연대나 도덕을 외치는건 대안이 아니라 위선입니다. 시장시스템 아래에선 연대가 담합보다 정당성이 떨어지는 행위가 될수 있다는겁니다.

결국 시장시스템 안에서는 그러한 협력행위가 담합이라는 걸 담백하게 인정하고, 그것에 위선적인 가치를 덧씌우거나 불법의 경계를 넘지 않도록 선을 지키며 조심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1번의 질문보다 2번의 질문에 더 집중해야 합니다. 지금과 같은 시장시스템 하에서 이런 식으로 수십만명이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서로 의사를 교환하며 협력하는 행위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에 대해 이제부터 고민을 해야 하는 것이죠. 시장이 시장참가자들 중 일부의 인위적인 협력에 의해 가격이 왜곡되거나 심지어 조작되는 일이 일반화 되기 시작하면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는 결코 가볍게 봐서는 안되는 사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공매도 헷지펀드들이 담합을 통해 시장을 조작해온건 왜 무시하고 GME건으로 뭉친 개미투자자들을 문제시하느냐 항의하실 분이 계시겠지만, 생각을 해보세요. 유통물량의 140%를 넘게 공매도를 친 게 단일 헷지 펀드였나요? 아니면, GME에 그렇게 공매도를 친 헷지펀드들이 특정 게시판이나 회의실에 모여서 작당을 하고 펀더멘털 우량한 회사에다 공매도를 친건가요? 단지 해당 종목의 주가가 펀더멘털 대비너무 고평가라는 컨센서스 때문에 공매도 잔량이 그렇게 늘어났던 겁니다.

이런 펀더멘털의 주식을 수십만명이 모여있는 게시판을 통해서 “저기를 공략하면 숏스퀴징으로 공매도 세력을 파산시킬 수 있다”라고 의견을 교환하며 서로 협력해서 공략한거죠. 이런 일이 이번 한번만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반복되고 확대된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렇게 되면 시장의 가격형성은 펀더멘털과는 아무 관계없이 게임에서 이기는 쪽이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게 될겁니다.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손해를 보기 시작하면 시장은 지금보다도 더 미쳐 돌아가다 결국 붕괴하게 될수밖에 없을겁니다. 물론, 그 전에 금융당국이 개입을 하게 될 가능성이 훨씬 더 크겠지만요.

어쨋던 이런 식으로 인터넷 커뮤니티 내의 협력행위의 강도가 커지고 있는 현상이 의미하는 건 작금의 시장이 펀더멘털과 괴리된 거품이라는 사실을 시장참여자들에게 알리는 경고음 중 하나라고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GME사태를 목격하면서 지금의 시장이 버블의 정점을 지나고 있다는 심증을 더욱 굳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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