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즈의 마법사라는 동화가 사실은 금은복본위제를 은근히 주장하는 우화라는 사실을 알고 계시는 분이 많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오즈의 마법사를 쓴 라이먼 프랭크 바움은 본업이 기자였고, 정치색이 짙었다고 합니다. 당시 면화가격이 폭락해서 농민들의 부채부담이 너무 심한 상황에서도 금본위제를 유지하고 있어서 디플레이션을 통제할 수 없어 경제난이 심했었거든요.
그런데, 은행가와 독점자본가(트러스트)의 이익을 대변하던 공화당이 민주당의 인기 정치인 윌리엄 브라이언에 연거푸 승리해 장기집권에 성공하고, 공화당이 내세우던 제국주의정책과 금본위제가 공고하게 자리잡은 현실에 윌리엄 브라이언을 겁많은 사자로 상징화 한 오즈의 마법사를 썼던 겁니다.
자세한 사연은 위키백과나 나무위키같은데 검색해보면 재미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어쨋던, 금본위제를 고수하면서 달러화가 금 보유량에 묶여있는 동안 디플레가 잡히지 않아 어마어마한 고통을 일으키다 보니 당연히 금본위제를 폐지하고 은본위제나 복본위제를 채택해야 한다는 정치적 요구는 1880년에서 1900년까지 약 20년동안 거세게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은본위제나 복본위제가 정확한 대안이었는지 어땠는지 우리는 확인할 수 없는데, 시간이 흐르자 금본위제 하에서도 경기가 돌아오고 화폐공급량이 엄청나게 늘어나는 기적(?)이 일어나서 디플레이션이 사라지고 호황이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거짓말처럼 미 대륙 내에 금광이 여기저기 발견되어서 채굴되었기 때문에 금 보유량이 엄청나게 늘어나서 통화량을 늘일 수 있었기에 금본위제 하에서도 디플레이션이 해결된 겁니다. 여기에 반독점법이 제정되어 트러스트들이 와해되고 부정부패가 크게 완화된 것도 경제에 활력을 찾게 된 원인이라고 합니다. 결국, 복본위제나 은본위제같은 허황된(?) 구호가 없어도 디플레이션은 말끔히 해소되고 경제호황이 찾아왔으므로 포퓰리스트들(실제 선거연대를 했었습니다)과 손잡고 은본위제를 외치던 윌리엄 브라이언이 나중에 어떤 취급을 받았으리란 건 쉽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정작 금본위제를 유지하려고 무리수를 뒀다가 결정적인 경제파탄을 일으킨 대공황 시기의 실수(에클스의 실수)와 이로 인해 실제로 금본위제가 폐지되버린 1930-40년동안에는 사람들 사이에서 은본위제나 복본위제에 대한 이야기가 별로 나오지 않았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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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그래프에서처럼 뉴스나 신문사설에 복본위제나 은본위제가 대공황 이후 언급되는 비율은 1880년대에 비하면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작습니다. 실제로 금본위제를 유지하려다 대공황 한복판에서 금리를 인상했고 이로 인해 실업률이 45%를 기록하는 상황에서 누구나 금본위제가 문제의 근원이라는 데 딴지를 걸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도 여기에 대해 사람들이 입에 오르내리는게 적었다는 겁니다.
결국, 복본위제라는 키워드는 실제 벌어지는 경제 현상의 대안으로서 대중에 오르내렸던 것이 아니라 정부와 기득권에 대한 저항, 내지 이들 기득권이 우리의 삶을 금본위제를 통해 초토화시키려 한다는 불안감의 상징으로서 크게 유포되었던 겁니다. 이러한 기득권에 대한 불신과 불안감, 저항의 키워드는 특정 시기에 엄청나게 커졌다가 어느 순간 불길이 확 꺼져버리는 패턴을 보여주는데, 이러한 패턴이 요즘 매우 유사하게 반복되고 있는 것이 다름아닌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 열풍입니다.
복본위제 열품이나 암호화폐 열풍 모두 아나키즘의 정신, 기득권에 대한 불신과 기술발전으로 인해 서민 대다수의 삶이 파괴되고 생존이 위협받게 될거라는 공포를 배경으로 급속하게 확산되고 있는 점은 판박이라고 해도 될 정도입니다. 위의 링크에 나와있는 그래프에서 바로 그런 유사점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복본위제와 암호화폐 사이에 역사적, 철학적 배경의 공통점, 확산 패턴의 유사점을 이해하는게 중요한 건 우리가 암호화폐라는 새로운 투자상품을 어떻게 바라보고 접근하는가를 고민할 때 꼭 필요한 배경지식이기 때문일겁니다. 비단 암호화폐 뿐 아니라 들불처럼 빠르게 대중 사이에 유포되며 대세를 이루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금새 잊혀지는 수많은 조류나 유행들, 투자 전략이나 기업 밸류에이션 방식의 유행 등을 바라보고 대응하는데 꼭 필요한 인문학적 배경지식이 될 것입니다.
로버트 쉴러 교수의 새 책 “내러티브 경제학”에 나오는 내용 중 일부를 제 관점에 맞추어서 이리저리 짜집기해서 풀어봤는데 어떤지 모르겠네요. 링크의 그래프는 해당 책에 나오는 그래프입니다. 지금 뜨는 핫한 주제들에 대해 인문학적인 접근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한번이라도 꼭 이 “내러티브 경제학” 책을 읽어보시는 걸 권합니다. 저도 푹 빠져서 열심히 읽고 있는데, 시간 가는줄 모르고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