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화제가 되었던 래리 서머스와 폴 크루그먼의 대담을 보도한 기사입니다. 기사 본문 내용을 보면 94년 “채권대학살”이라는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간단히 당시의 전개과정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80년대 말 부동산 폭락과 주택대부조합 사태로 인해 발생한 경기침체를 극복하고자 그린스펀 연준의장은 당시 10%였던 기준금리를 3%까지 극적으로 낮추게 됩니다. 당연히 유동성이 풀리면서 서서히 경기는 과열되고 물가까지 오르는 조짐이 보이자, 이제 그린스펀 의장은 물가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올리는데 94년 1월부터 다음해 95년 2월까지 3%에서 6%까지 대폭 올려버리죠.
기준금리의 절대수준은 그렇게 높았던게 아닙니다. 경기침체가 일어나기 전에 기준금리가 10%였거든요. 그런데, 오르는 기울기와 추세전환이 시장에 충격을 줬습니다. 기준금리에 연동이 되는 단기물이야 그렇다 치고, 10년물 국채금리도 93년 5.45%였던 것이 7.9%로 가파르게 올랐거든요. 볼커가 기준금리를 20%가까이 올렸던 80년대 초반 이후 계속해서 떨어지기만 했던 장기물 금리가 처음으로 ”이러다간 채권금리의 추세 반전이 올수도 있다”는 의심을 일으키며 채권이 똥값이 되며 다른 자산시장들도 함께 망가졌던 게 이른바 채권대학살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잘 와닿지 않겠지만, 미국에서 벌어졌던 이 채권대학살의 여파가 점점 커지면서 결국 동아시아 외환위기, 우리나라의 IMF 외환위기가 발생한 것이니 그냥 무시하고 넘어갈 일이 아닙니다.
사실, 미국채10년물 장기그래프를 보면, 당시의 국채금리상승은 정말 별 거 없이 평범하고 일상적인 작은 파동 하나에 지나지 않아보입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맞이하고 있는 경제상황을 보면 당시의 상황이 벌어지기 직전과 상황이 많이 닮아있기에 폴 크루그먼이나 래리 서머스같은 저명한 인사들이 당시에 대해 깊게 논의를 하고 있는 것이죠. 큰 경기침체를 극복하자며 금리를 왕창 내려서 생긴 유동성 과잉, 그로 인해 커진 인플레이션 리스크, 이걸 제어하기 위해서 연준은 이제부터 금리를 대폭 올려야만 하는 상황,,, 지금이 바로 채권대학살이 벌어지기 직전에 당시 그린스펀 의장이 했었을 고민을 고스라니 파월 의장도 하고 있는 중이리라 짐작할 수 있을겁니다.
폴 크루그만 교수를 비롯한 Team Transitory들은 당시 채권대학살이 벌어진 책임을 그린스펀 의장이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이었다는 점을 간과한 채 폭력적으로 기준금리를 인상한 탓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반면, 래리 서머스 같은 Team Inflation들은 그린스펀이 지나친 저금리가 장기화되면서 유동성이 과하게 풀리고 인플레이션조짐이 본격화되었음에도 계속 기준금리를 올리지 않아 실기한 것이 잘못이라며 책임을 제 때 금리를 안올린 탓으로 돌립니다. 거기에 더해 당시 기준금리를 6%까지 올리고 채권가격이 폭락했음에도 불구하고 2년 후까지 인플레이션은 전혀 잡히지 않았다며, 지금같이 어중간한 태도로는 결코 인플레이션을 제어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상식적으로 당시같이 기준금리를 6%까지 올려대는 일은 당연히 불가능할겁니다. 하지만, 1년 중 5-6번 이상의 금리인상이나 한번에 50bp 인상같은 시나리오는 얼마든지 가능한 상황이고, 그런 식으로 기준금리를 올리는데도 여전히 10년물 채권금리가 지금 수준에서 안정적으로 유지될지는 미지수라는 점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겁니다.
그랬을 때 우리는 채권금리만 바라보면 안되겠지요. 94년 미국 연준의 결정으로 인해 벌어졌던 채권대학살이 일으켜던 풍파로 동아시아 외환위기가 전개되었던 걸 본능적으로 연상할수밖에 없으니까요. 지금 당장은 수출도 잘되고 외환보유고도 충분하기에 걱정할 게 없겠지만, 문제는 만약 연준이 당시 못지 않은 1년 동안 5번 이상의 금리인상과 QT까지 단행하면서 10년물 국채금리가 3%이상으로 올라가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면, 외환위기의 재림까진 아니겠지만, 막대한 양의 자원을 수입해야 하는 동아시아 국가들의 경제상황은 훨씬 더 보수적인 시각으로 전망해야 할수도 있는거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부터는 미국, 중국, EU등 주요국가들의 환율과 함께 미국 10년물 국채금리 추세를 평소보다 더 관심을 가지고 체크하는게 투자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