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갑자기 여기저기에서 경기침체를 이야기합니다. 어떤 기사는 “이미 경기침체가 왔다”는 이야기까지 합니다. 이른바 전문가라는 사람들도 하나같이 경기침체를 이야기하는데 근거도 참 다양합니다.
사실, 저도 예전부터 경기침체 가능성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에 최근까지 이 “경기침체”라는 레토릭이 어떻게 성장하는지를 비교적 자세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 경기침체라는 레토릭이 갑자기 힘을 얻기 시작한 건 필라델피아 연은 제조업지수가 발표된 날이었습니다.
https://kr.investing.com/economic-calendar/philadelphia-fed-manufacturing-index-236
저 때 나스닥이 빠질 이유가 없는데 이상하게 크게 빠지는거 같아서 tqqq를 매입한 후에 글을 올렸는데, 나스닥이 빠진 이유가 저 지표 때문이라고 생각하니 모든게 명확히 설명이 되더군요. 저 통계수치가 침체론이 힘을 얻기 시작한 첫번째 강력한 신호였을겁니다.
그렇게 신호가 나오니 그 다음부터는 돈이 움직입니다. 국제자본이 미국채 2년물부터 장기물까지 사들이면서 금리가 꾸준히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한 열흘정도 지나니까 미국채 시장금리가 3%를 깨고 내려가기 시작하면서 점점 언론이 떠들기 시작합니다. 이제는 언론기사의 주류가 물가가 아닌 침체가능성이 되었습니다. 때마침 이후로 발표되는 경기지표들이 모두 경기침체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어서 이런 분위기는 점점 강화되고 있습니다.
이제 남은 경기관련 지표는 고용지표이지만, 후행지표이기에 영향력이 떨어질 뿐 아니라, 이게 좋게 나온다고 해도 연준의 금리인상에 힘을 실어주기 때문에 경기침체론을 반박할 수 있는건 아닙니다. 결국 이런 식으로 분위기는 경기침체가 확실하게 온다는 쪽으로 강화되고 있는게 현재입니다.
하지만, 경기침체에 대한 컨센이 강화되고 있다는 것과 실제로 경기침체가 온다는 건 전혀 별개의 명제입니다. 실제로 아직 경기침체가 온 것도 아니고, 경기침체가 올게 그렇게까지 확실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관심을 쏟아야 하는건 “경기침체가 정말로 확실한것도 아닌데 시장이 왜 이렇게 격렬하게 반응하고 있는가?” 하는 데 있다고 봅니다.
그 이유는 다름아닌 연준의 신뢰상실에 있습니다.
작년에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이라는 거짓말(?)을 했을 때에 시장은 상당기간동안 연준의 그 거짓말을 믿어줬습니다. 이번에는 연준이 “단호하게 물가부터 잡겠다”고 공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예측이 완전히 빗나가고 국채금리가 3.5%까지 올라가며 채권시장이 박살나는 걸 본 시장참여자들은 연준의 다음번 주장인 “경기 연착륙 가능하다”는 멘트에 대해서는 의심을 하기 시작합니다. 연준이 인플레 일시적이라고 할 때 반대편에 섰다 욕과 조롱을 받았던 래리 서머스같은 이들도 경기연착륙이 불가능하다는 것에 힘을 실어줍니다. 이제 시장은 점점 더 연준과 파월의 발언이 틀릴 것이라는 데 더 많은 배팅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마침내 또 파월이 말을 뒤집습니다. 경기가 경착륙하더라도 물가를 잡는게 우선이다,,, 전에 했던 연착륙 주장을 완전히 뒤집는 발언인겁니다. 점점 연준의 말을 순진하게 믿는 사람이 바보가 되고, 연준을 따르면 돈을 잃고 망하기 딱 좋은 상황이 만들어집니다. 처음에는 경기침체론을 이야기하던 사람들도 그 시점이 내년 말이었던게, 점점 그 시기가 당겨지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올해 안에 경기침체가 올거라는 의견에도 거부감이 전혀 없습니다.
이게 심각한게 뭐냐면, 이제부터 시장의 컨센을 결정하는 건 연준이 아니라 돈 그 자체가 되버렸다는 점입니다. 이제부터 국채로 돈이 몰리면 그걸 보고 더 많은 돈이 국채로 몰려들어가는 쏠림현상이 더 심해질겁니다. 주식에서 돈이 빠져나가는게 보이면 그걸 보고 숏포지션을 잡는 트레이더들이 극성을 부리고, 그런식의 추세추종전략이 점점 더 높은 승률을 보이며 승승장구한다는 겁니다.
더이상 “충분히 싸졌다”는게 매수의 근거가 될 수 없는 현상이 한동안 지속된다는 건 그만큼 시장이 위험해지게 된다는 의미이겠죠. 반대로 아무리 잘나가는 자산군도 무슨 핑계로든지 한 번 추세가 꺽이면 추락하는 것에 날개가 없다는 걸 증명하듯 계속 떨어질 수 있습니다. 이렇게 중앙은행이 신뢰를 상실하게 된 결과 어떤 자산시장이던 훨씬 더 조심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국면에 들어갔다는게 지금의 제 생각입니다.
결국, 문제의 본질은 경기침체가 아니라 변동성의 극대화라고 봐야 하는게 아닌가 합니다. 앞으로 모든 자산들이 오를 때는 크고 급격하게 오르고, 내려갈 때에도 바닥을 알 수 없게 내려갈 수 있다는거지요. 주식도, 채권도, 원자재도 이런 추세에서 예외일 수 없으니 다들 조심하고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는 자세가 필요한 시국이 아닌가 합니다.